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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일 공동대표, 농민신문 기사 - 돈 앞에 장사 없다
  • 글쓴이관리자
  • 등록일2019-09-16
  • 조회수951

돈 앞에 장사 없다

조용헌의 주유천하 (130)

돈 없는 무재(無財)팔자인 안동 도산서원 김병일 원장
재경부·조달청·기획예산처 등 한평생 돈 있는 곳만 다녔으나 본인 몸에는 돈 한 푼 붙지 않아
청렴하려면 ‘무재팔자’여야 

얼마 전에 신문사 간부를 지내고 퇴직한 원로 언론인과 점심을 같이하다가 아주 인상적인 대화를 주고받았다. 난다 긴다 하는 서울의 논객, 문필가들과 수십년간 밥과 술을 먹으면서 그들의 행태를 관찰해온 분이기도 하다. 필자에게 일종의 점괘를 날렸다. 필자도 남들의 팔자를 예측해보는 팔자학(八字學)을 연구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어느 분야에 30~40년간 종사해본 사람들에게는 겸허하게 자신의 점괘를 물어보기도 한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조 선생(필자)은 문필가로서 계속 글을 쓸 사람이야.” “무얼 보고 그걸 아십니까?” “푼돈에 민감하고 큰돈에는 무관심한 사람이 타고난 문필가요.” “푼돈이라는 게 무엇인가요?” “원고료·강연료요. 여기에는 민감하지만 큰돈에는 무관심하지 않소!”

그 말을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신문·잡지 등 매체에다가 글을 쓸 때 원고료를 얼마 줄 것인지 필자는 반드시 물어본다. 아니 만나자마자 바로 원고료부터 물어본다. 강연료도 마찬가지다. 돈은 더럽기도 하지만 공기와 물처럼 잠시도 없으면 안 되는 물건 아닌가. 처음에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맨 나중에 돈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그러뜨러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래서 눈 딱 감고 돈 이야기를 제일 먼저 해야 한다. 돈이 아주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목돈을 만들 수 있는 재테크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주식투자 같은 것에도 관심이 없다. 큰돈에 관심이 생기면 원고를 못 쓴다. ‘이거 푼돈 받아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 펜을 잡을 수 없다고 본다.

돈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다보니 다른 사람들 팔자도 유심히 살펴본다. 남자 팔자 중에서 제일 재미없는 팔자가 무재팔자(無財八字)라고 생각해왔다. 팔자에 돈이 없는 팔자는 고생길이 훤한 것 아닌가. 그래서 딸 시집보낼 때 사윗감이 될 사람의 팔자를 볼 때는 돈이 들어 있는가를 먼저 본다. 무재팔자는 바로 탈락이다.

가장 한심한 남자의 팔자가 무재팔자라고 여기던 고정관념에 일대 타격을 준 인물이 하나 있다. 경북 안동의 도산서원(陶山書院) 원장을 맡고 있는 김병일(75) 원장이다. 이 양반의 팔자를 보니까 돈이 하나도 없는 무재팔자였다. 근데 이 양반이 그동안 살아왔던 인생행보를 보면 돈 있는 데만 골라 다녔다. 고시 합격하고 재정경제부에 근무하면서 조달청장도 지내고 마지막으로는 기획예산처(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던 것이다.

조달청이 어떤 곳인가. 여기에다가 납품하려고 온갖 업체들이 기를 쓰고 로비하는 기관이 아니었던가. 물론 지금은 예전처럼 그렇게 로비를 하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김병일 조달청장은 이 돈판 속에 살면서도 뇌물비리, 또는 금전 스캔들이 하나도 없었던 인물로 유명하다. 돈 먹고 스캔들이 있었으면 기획예산처 장관을 어떻게 하겠는가. 기획예산처도 돈바닥이다. 한국의 예산을 여기에서 다룬다. 공무원들도 기획예산처에 와서 예산 좀더 달라고 로비하는 기관 아닌가. 우리나라 1년 예산이 470조원 가량 되는데, 이 470조원을 주무르는 기관장이 기획예산처 장관이다.

필자는 예전에 생각할 때는 이런 돈 주무르는 기관의 장 자리는 팔자에 돈도 많고 벼슬운도 좋은 인물들이 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김 전 장관은 돈이 하나도 없는 무재팔자였다는 점이 충격을 주었다. 청렴하려면 무재팔자여야 하는 것이다. ‘무재(無財)라야 만이 국재(國財)를 감당한다’는 이치를 깨닫게 된 셈이다. 무재팔자니까 눈앞에서 아무리 큰돈이 왔다 갔다 해도 본인 몸에는 한푼도 안 붙는다고나 할까. 무재팔자는 돈이 달라붙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방탄복을 착용한 것과 같다.

“생활은 어떻게 했어요?” “집사람이 약국 해서 먹고살았지”라는 대답이다. 김병일은 무재팔자니까 장관 퇴임하고도 돈 과는 거리가 있는 자리로 왔다. 20대 시절부터 안동 일대의 선비들 문화와 퇴계 선생을 흠모했다. 아마 장관 그만두고 서울의 로펌에 갔었더라면 억대 연봉은 받았지 않았나 싶다. 로펌으로 가지 않고 안동의 산골짜기로 내려와 도산서원장을 맡고 있는 것이 무재팔자의 인생행보다. 최근에는 서울에서 안동 도산서원까지 걸어왔던 퇴계 선생의 길을 따라가는 귀향길 행사를 주관하고, 그 소회를 담은 <퇴계의 길을 따라>라는 책도 냈다. 필자는 돈에 흔들릴 때마다 김병일 선생을 쳐다본다.

출처 : [농민신문]
https://www.nongmin.com/opinion/OPP/SWE/ESY/314995/view

조용헌은… 
▲강호동양학자, 불교학자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석좌교수 ▲저서 <조용헌의 동양학 강의>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조용헌의 휴휴명당>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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