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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 열심히 일한만큼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사회,
우리가 추구하는 “바른사회”입니다.

불신의 시대

박종흡

참조: 아래 글은 바른사회운동연합의 취지에 공감하여 이사로서 활동하게 될 박종흡님께서 작성하신 것입니다 
 
 
 
 
 
 
 
불신의 시대
 
舒川 박 종 흡
 
지난 1월 어느날 토요일 오후였다. 나는 지인의 딸 결혼식에 참석 차 광화문 프레스센터에 갔었다. 전철역을 막 나와 동아일보사 앞에 이르자 탄핵반대를 외치는 태극기를 든 무리들이 그 일대를 꽉 메우고 있었다.
식이 끝난 후 그곳에서 만난 친구 H군과 나는 텔레비전에서만 지켜보았던 촛불집회가 어떤지도 볼 겸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걸었다. 아까의 그 자리는 이미 붉은 종이 카드를 든 무리들로 바뀌어 있었다. 몇몇 노년의 남자들이 그 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야 이 빨갱이들아를 외치고 있었다.
우리는 세종문화회관 지하 커피숍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변 테이블에는 드문드문 빨간 카드를 든 사람들이 추위를 피해 앉아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우리는 자연히 시국문제에 대화가 모아졌다.
이야기 끝에 우리는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때 그리고 가까이는 조선 말 일제 강압 시 나라의 흥망이 눈앞에 닥쳐서도 국론이 분열되었던 역사를 돌이켜 보면서 도대체 우리 민족에는 어떤 유전자가 숨어 있기에 그럴까 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아주 먼 엣날 우리 선조들이 우랄산맥을 넘고 바이칼호수를 지나 이주하면서 생성된 유목민족의 피가 남아 있어서 그럴까? 항상 외부세력의 눈치를 봐야만 했던 반도국가의 지정학적 특성이 우릴 이렇게 만들었을까? 아니면 근래의 동란이 남긴 상흔일까? 여하튼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나는 집에 볼 일이 생겼다는 핑계를 대고 먼저 자리를 떴다. 실은 촛불집회가 끝나기 전에 그 실상을 잠시나마 엿보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어서였다. 나는 파커 모자를 뒤집어쓰고 광화문 앞 무대가 있는 곳까지 걸었다. 아까의 태극기 무리와는 달리 청장년층이 많이 눈에 띄었다,
간혹 중고생 정도로 보이는 앳된 여자아이들이 내 옆을 뛰어가면서 박근혜 구속을 외치면서 지나갔다. 세종문화회관 앞 도로에는 트럭 뒤에 설치한 창살감옥 속에 밧줄로 포승한 박 대통령 사진을 세워놓고 행진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건 그렇다 해도 어린아이들을 손에 끌며 그 추위에 걷고 있는 젊은 부부들의 모습은 좀 안쓰러워 보였다.
세종대왕 동상 밑 지하철로 통하는 입구에 다다르자 중고생이나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핏기 없는 박 대통령의 대형 입체 사진과 박근혜 탄핵, 박근혜 구속이라는 플레카드를 걸어 놓고 그 옆에서 인증 샷을 하고 있었다. 나는 순진하게 웃어대는 그 젊은 친구들이 이 엄청난 국가의 위기에 처하여 과연 어떠한 신념과 가치관을 가지고 저럴까 생각을 해 보면서 나 또한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혹시 저들의 눈에는 이 사태가 월드컵 경기를 응원하는 이벤트처럼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도 느껴졌다.
무거운 마음으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여기서 또다시 기이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종로 3가역에 이르자 내 옆 사람이 내리고 7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할머니 두 분이 탔다. 한 사람은 내 옆 자리에 앉았으나 다른 한 여자는 자리가 없어서 섰다.
그러자 내 옆에 앉은 할머니가 맞은편 여자들이 들으라고 큰 소리로 투덜대기 시작했다. ‘나이도 적은 것들이 자리를 비껴줘야지 뭐 하는 것들이야.’ 앞 여인들은 못 들었는지 계속 자기들끼리 얘기를 하고 있었다. 화가 났는지 내 옆 여인은 더 큰 소리로 연거푸 투덜댔다. 내가 한 마디 거들었다. “아주머니 내 보기엔 저 여자 분들도 아주머니만큼이나 나이가 들어 보이는데 그만하시지요무엇이 그리 불만인지 그녀는 눈을 부릅뜨면서 중얼댔다.
나는 또다시 말했다. “아주머니, 당신 위주로 상대방을 보지 마세요라고 대꾸했다. 한참 후에야 사태는 진정되었다. 일행인 다른 여자가 이 장면을 지켜보다가 창피했던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나는 한없는 우울증에 빠졌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처럼 삭막하게 되었을까?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을까? 그날 하루는 불신의 광장 한 가운데를 배회하다 돌아온 느낌이었다.
그간의 빠른 성장과 발전의 그늘에서 독버섯처럼 자란 부작용들, 예컨대 부정부패, 정경유착, 빈부격차, 청년실업, 인구의 고령화 등 수많은 현상들이 그 원인으로 자랐을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사회의 건전성과 공정성을 갉아먹는 병충으로 자라나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
불의에 대한 고발과 항거는 눈 먼 돈과 고삐 풀린 망아지같이 무책임한 권력을 해소하고 맑고 투명한 선진사회로 가는 촉발제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따지고 보면 이번의 국정농단 사태의 발단도 내부고발에 의해 촉발되지 않았던가. 그러나 내 가까이 누군가 항상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감시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이 또한 숨이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나는 지금 이 사태를 둘러싼 논쟁에서 그 누가 잘한 것이고 그 누가 더 잘못한 것인지를 나의 잣대로 재단하고 싶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내가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그 누구, 그 무엇의 잘잘못을 넘어 사회가 편가르기 그리고 그럴싸한 분식(粉飾)의 늪으로 자꾸만 빠져드는 것이 슬퍼서다. 그중에서도 만성적인 불신의 자락으로 빠져드는 것이 제일 두려운 일이다.
한국 사람은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가? OECD의 조사에 의하면 26.6%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조사대상국 35개국 중 23위이다. 평균 36.0%에도 못 미치고 1위인 덴마크(74.9%)3분의 1 수준이다. 한국 사람은 내가 필요할 때 의지할 사람이 있을까? 77.5%가 그렇다고 답했다. 최하위권인 34위다. 우리가 얼마나 불신의 사회에 살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람과의 소통과 협력, 보편적인 규범 등을 사회적 자산이라 한다. 보이지 않는 국가적 자산이라는 뜻이다. 이중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이 사회적 신뢰도다. 신뢰가 무너진 곳에 소통도, 공유도, 협력도 아니 그 무엇도 있을 수 없다. 선진국으로 가는 길은 달나라 가는 것만큼이나 더욱 멀어질 게 뻔하다. 신뢰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힘줄이기 때문이다.
 
등록일 : 2017-02-27 17:27     조회: 1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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