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신이 만들고 도시는 사람이 만들었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자연의 오묘함은 신의 작품이다. 여기에 비해 도시는 어수룩하고 산만하다.
구태여 풍수설을 들먹이지 않아도 서울지역은 외사산(북한산, 용마산, 덕양산,관악산), 내사산(인왕산, 낙산, 남산, 북악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가운데를 한강이 굽이쳐 흐르는 산수가 잘 조화된 지역이다. 이 서울이 지금 아파트밀림으로 바뀌고 있다.
길을 가다 보면 양 옆으로 고층 아파트가 가로수처럼 즐비하다. 그리고 큰 길 귀퉁이에는 오피스텔이란 원룸빌딩이 거대한 벽을 이루고 있는 곳도 있다. 그 사이 그늘진 담벼락 밑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고개를 들면 하늘이 빠끔히 보인다. 환경심리학자들은 고밀도환경에서 성장한 동물은 자기영역을 지키기 위해 공격적으로 변한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은 어떨까?
서울에 70년대부터 아파트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처음엔 5층 정도 단지들이었다. 그 이후 저밀도지구와 고밀도지구로 적절히 나뉘어 10층을 넘어 15층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여의도, 강남 그리고 교외지역으로 아파트단지들이 퍼져갔다.
건축연도에 따라 적용기준이 달랐다. 점점 밀도가 높아지고 고층화되었다. 23여층, 35층 아파트 단지로 변해간다. 용적률도 대폭 늘어났고, 사선제한도 완화되었고,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의 인동간격도 슬금슬금 반으로 줄었다. 그래서 밀도 높은 빽빽한 아파트촌이 되었다. 도시의 모든 공간이 벽속에 갇힌 형상이다. 상상해 보라. 5층짜리 아파트촌이 35층짜리 건물 군으로 바뀐 모습을. 건물밀도도 4배 가까이 늘었다.
서울 변두리를 감싸고 있던 그린벨트도 하나하나 풀어서 아파트 밀림으로 변하였다. 그만큼 도시공간이 삭막해졌다.
지금 강남에선 재건축이란 이름의 돈 잔치가 한창이다. 개발연대 초기에 지은 아파트들이 낡았다. 연탄 때던 아파트들이다. 낡았으니 다시 지어야 한다. 그런데 과거처럼 도시계획적으로 저밀도로 개발할 곳이나 고밀도로 개발할 곳 또는 단독주택지나 빌라로 개발할 곳을 구분치 않고 거의 모두 고밀도 아파트촌으로 추진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가령 5층 주거단지의 30평 아파트 땅 지분은 30평이다. 그러나 용적률을 3배 높여주면 90평을 지을 수 있다. 30평짜리 두 채가 남는다. 15층 주거단지라면 땅지분이 대강 15평이고 여기에 45평을 지을 수 있다. 15평을 팔 수 있다. 정부가 용적률을 올려준 탓이다. 이래서 강남지역의 재건축은 돈잔치다. 마술이 아니다. 정부가 하나하나 베풀어준 특혜만큼 집값은 올라간다. 그래서 아파트가 낡을수록 집값은 올라간다.
이 재건축의 혜택은 서울에 집중되었다. 지방은 재건축을 추진하려해도 채산이 맞지 않는다. 반면 강남은 아파트가 낡아서 녹물이 나오고 매일 주차전쟁을 치러도 집값은 치솟고, 젊은이들은 강남몽을 꾼다. 그리고 아파트주민들은 이윤극대화를 위해 정부를 상대로 용적률을 높이고 층수를 높이려고 시위를 한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결과는 똑같은 모양의 획일적인 고층아파트가 가로수처럼 늘어선 모습이다. 하늘이 가리고 산이 가리고 우리의 마음이 가린다. 십여 년 전, 프랑스의 신도시를 견학 갔을 때 안내인은 내게 똑같은 두 개의 디자인은 절대로 허락되지 않는다고 했었다. 그런데 우리 아파트는 붕어빵이다.
지금 압구정동, 반포, 대치동, 개포동, 잠실, 가락동, 둔촌동, 고덕동 등등 대규모 아파트단지들이 모두 35층 이상의 고밀도 촌으로 추진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표퓰리즘에 따라 달콤한 특혜를 던져 주었다. 전 정권은 임대주택 강제규정을 해제해 주었고, 집값을 때려잡겠고 호언하는 현 정부는 잠실지역에 50층 높이를 허용해 주었다. 당연히 그 만큼 집값이 뛰었다.
눈을 감고 이 지역에 획일적인 초고층아파트가 들어선 모습을 상상해 보라. 똑같은 높이로 똑같은 모양새로 하늘을 찌르도록 높이 솟은 회색의 콘크리트. 도시를 두른 벽이다. 자연과 하늘과 산과 오픈스페이스를 막고 사방을 벽으로 두르는 것이다. 올려다보면 현기증이 난다. 차차 서울 전체가 아파트밀림이 될 것이다.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이런 경관을 볼 수 없다. 파리도, 도쿄도, 뉴욕도, 런던도 이 지경은 아니다.
90년대 초까지도 서울은 오피스빌딩도 22층 이상은 허가해 주지 않았기에 남산과 어울려 서울의 스카이라인은 고즈녁했다. 남산의 경관을 가린다고 남산아파트를 폭파할 정도의 낭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젠 강을 가리건, 산을 가리건, 고지대건 낮은 지대건 가리지 않고 아파트들이 기어오른다. 옥수동이나 아현동 등 고지대에도 어김없이 초고층아파트가 산보다 더 높고 우람한 자태로 오르고 있다. 흉물스럽고 삭막하다.
다시 30년 후에는 어찌될까? 이 같은 초고층아파트들이 다시 낡아서 또 한 번 재재건축을 할 것인가? 이미 초고밀도인데 용적률을 500, 600%로 올려 줄 것인가?
서울의 도시계획은 다시 짜야한다. 다양한 주거형태가 다양한 형태로 디자인되고 배치되고 그 틀 안에서 낡은 집이나 아파트들이 재생되어야 한다. 전체적으로 용적률을 대폭 낮춰야 한다. 아파트의 고층화, 대단지화도 규제되어야 한다. 고밀도지역이 있는 것처럼 저밀도지구도 필요하고 오픈 스페이스도 있어야 한다.
나는 서울이 아파트 밀림지역이 되는 것이 싫다.
필자소개
이건영 박사(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미국 노스웨스턴대 도시계획학 박사
건설부차관
국토연구원장
교통연구원장
중부대 총장
단국대 교수
건설부차관
국토연구원장
교통연구원장
중부대 총장
단국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