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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자기에서 선비 정신을 보다

이성낙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필자가 독일에서 1960년대에 쾰른(Köln) 시내를 지나는데 포스터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거기에 담긴 작품은 한눈에도 고려청자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검붉은 바탕에 우아한 자태의 청자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할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포스터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의 도자기 전시회를 알리는 내용이었습니다. 필자는 곧장 전시회가 열리는 동양미술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동양 삼국의 도자기 중에서도 우리의 고려자기를 대표 주자로 선정해 홍보하는 전시회라는 사실에 흥분되어 절로 걸음이 빨라졌습니다.
 
전시실에 입장하자 때마침 <한국, 중국, 일본 도자기 특별전>을 찾은 관람객 10여 명이 박물관 전속 큐레이터의 안내를 받고 있었습니다. 필자는 조용히 그 무리 후미에 합류했습니다. 중국관에 전시된 다양하고 화려한 도자기에 깊은 인상을 받으며 일본관에 이르니 중국 못지않게 많은 작품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어깨 너머로 한국관이 보이기에 슬쩍 눈길을 돌린 필자는 적잖이 실망했습니다. 중국관이나 일본관에 비해 너무나 초라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실망스럽다 못해 부끄러운 생각마저 들어 잠시 자리를 피할까 머뭇거리고 있는데, 문득 큐레이터의 환성(歡聲)이 들렸습니다. “와우~ 저는 이 전시실에 들어오면 하루의 스트레스가 확 풀립니다!” 순간, 필자는 큐레이터 쪽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큐레이터는 사뭇 감동적인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조선 시대 도자기, 그중에서도 16세기의 한국 도자기를 보면, 예술품으로서 어쩌면 이렇게도 푸근함을 강하게 뿜어내는지 너무나 신비합니다. 이것이 다른 나라 도자기에서는 볼 수 없는 조선 자기만의 특징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큐레이터는 관람객들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실로 감격스런 얼굴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시 필자는 도자기(陶瓷器)와 옹기(甕器)를 겨우 구별하고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유산이라는 정도의 식견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기가 중국이나 일본의 것과 어떤 점에서 다르고, 또 우월한지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랬던 터라 큐레이터가 조선 도자기의 예술성에 감탄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왠지 실감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더 놀라움을 숨길 수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무렵 필자는 의과대학을 막 졸업하고 인턴 과정을 밟고 있었기 때문에 전공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그런 한편, 시간이 날 때면 유럽 문화를 섭렵(涉獵)하느라 열중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동양 문화권, 더 나아가 우리 문화와도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지내던 시기였습니다. 그랬기에 우리 도자기에 대한 큐레이터의 찬사는 필자의 뇌리(腦裏)에 벼락과도 같은 깨우침으로 다가왔습니다.
 
이후 필자는 우리 문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자연스레 중국이나 일본 문화와 비교평가하는 접근 방식을 택했습니다. 때론 유럽 문화와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일 삼국이 문화적으로 같은 뿌리를 공유하면서도 작품으로 표현되는 결과물은 달라도 참으로 다르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곤 했습니다. 아울러 그런 점이 삼국의 문화에 대한 흥미를 더욱 자아냈습니다.
 
건축이나 서화(書畫) 예술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 중에서도 도자기를 보면 삼국의 차이점이 한층 잘 드러납니다. 이를 부드럽고도 분명하게 지적한 사람이 일본의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입니다. 그는 조선 도자기에 대해 특히 많은 글을 남겼는데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조선 도자기의 특징을 짚었습니다.
 
         “그래서 중국 도자기는 멀리서 감상하고 싶어지고, 일본 도자기는 곁에 놓고
          사용하고 싶어지는데 한국 도자기는 손으로 어루만져 보고 싶다.”
          (유홍준의 우리문화유산답사기8, ‘남한강편에서 인용)
 
 
여기서 언급하는 한국 도자기는 분명 고려청자가 아닐 것입니다. 고려청자가 발()하는 아름다움은 단아함과 우아함의 극치인지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감상해야 할 대상이지 손으로 어루만지기에는 너무나 고매(高邁)하기 때문입니다. 고려청자에는 실로 차가운 느낌마저 감도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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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6세기 조선 중기에 탄생한분청자기(粉靑瓷器)는 고려청자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줍니다. 청자에 비해 투박하지만 과감하면서도 자유분방해서 서민적인 친근함이 느껴집니다.(자료 사진)
 
1962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국고예술품전시회>에서 분청자기를 처음 본 파리지앵들은 한국에는 500년 전에 이미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있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그가 있었기에최순우를 그리면서, 진의진, 2017). 몇 년 전, 이와 맥을 같이하는 논평을 접한 필자는 다시 한 번 어깨가 더욱 으쓱해졌습니다. 2011년 삼성미술관 리움(LEEUM)이 주관해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전시한 <분청자기전>을 본 한 미술평론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세기 전의 오래된 자기가 현대성을 말한다Vessels of Clay, Centuries Old, That Speaks to Modernity”(The New York Times, April 7, 2011).” 그 역시 조선 시대 분청자기에서 분명 현대 예술의 미적 감각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필자는 조선 시대 분청자기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는 편입니다. 조선 시대 도자기는 분명 일상 생활용품이 아닙니다. 특히 16세기 도자기는 말할 나위 없이 고가의 상품이었을 것입니다. 자연히 도기(陶器)의 소비자는 부유층인 양반 계급이었을 테고요.
 
필자는 도공(陶工)이 자기 공방에서 빚고 가마에서 구운 분청자기를 소비 계층인 선비들에게 내놓는 장면을 떠올려 봅니다. 그 시대의 정서와는 사뭇 거리가 먼 엉뚱한도기를 양반인 선비가 손바닥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살펴보는 장면을 말입니다. 선비는 도기를 살피다가 고개를 갸웃합니다. ‘이것 아무래도 이상한데?’ 하지만 선비는 이를 마다하지 않고 그것 참 재미있다.’는 듯 손으로 자기를 어루만집니다. 바로 이런 선비의 안목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분청자기를 볼 수 있는 것이겠지요.
 
문화는 소비자가 만듭니다.”(유홍준, 한국문화유산답사기7, 제주편)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놀라운 것은 그 옛날의 선비들이 오늘날의 현대 회화에서나 볼 수 있는 낯선 붓 터치를 이미 수용했다는 점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안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가 가고시마(鹿児島)에서 활약한 조선 도공의 후손인 도예가 14대 심수관(沈壽官, 1926~)이 오래전 필자에게 들려준 이야기 또한 이를 뒷받침합니다. 그는 조선 도자기에는 도공의 욕심이 묻어 있지 않아, 즉 무심(無心)이 서려 있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아마 그래서 조선 자기가 파리지앵과 뉴요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나 봅니다.
 
필자는 분청자기의 수용이 올곧은 정신을 지향한 조선 선비들의 마음가짐과 궤를 같이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다름을 받아들이는조선 선비들의 관용을 볼 수 있습니다. 요컨대 우리는 조선 자기를 통해 당시 소비자층인 선비들의 높은 식견을 보게 됩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정말이지 각박하기만 합니다. 엘리트들조차 인문학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팽배해서 이른바 문화 사막화 현상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검소하면서도 누추하지 아니하며, 화려하면서도 사치하지 아니하다.儉而不陋, 華而不侈[김부식(《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15년(기원전 4년)) ”로 대변되었던 선비 정신을 우리가 잊고 지내는 것은 아닌가, 우려가 깊어집니다.
 
그래서 정상(正常)에서 벗어난 다름의 분청자기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인 조선의 선비 정신이 더욱더 생각나는 요즈음입니다.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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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낙 교수(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 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가천대 명예총장, 한국의약사평론가회 회장,
()현대미술관회 회장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등록일 : 2017-12-08 09:23     조회: 1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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