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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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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 열심히 일한만큼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사회,
우리가 추구하는 “바른사회”입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건영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건영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김형석교수. 그는 오늘을 사는 노인세대의 멘토다. 2년3개월 후면 100세인데 그는 지금도 건강하게 전국으로 강연을 다니고 저술활동을 한다고 한다. TV에 나와 인터뷰하는 모습은 젊은이들과 다를 바가 없다.
  나는 그의 수필집 ‘영원과 사랑의 대화’를 고3 때 읽었다. 베스트셀러였던 이 책에서 그는 ‘나는 오래 살기보다 많이 살고 싶다’고 했다. 많이 산다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의 족적을 보면 참 ‘많이’ 산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기대수명은 81세(2015년). 65세 이상인구가 전체의 7%를 넘으면 고령화사회라 하고 14%를 넘으면 고령사회라 한다. 우리나라는 금년 14%를 넘어섰다. 그만큼 노인인구가 늘어났다. 출산율은 떨어지고 평균 수명은 늘어나고 있으니 고령사회는 더 심화될 것이다.
 
  이제 백세시대다. 의학의 발달로 병을 고치고 생명은 연장시킬지언정, 나이가 듦에 따라 신진대사가 느려지고 근육이 늘어지고 눈이 흐려지는 등 노화현상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속도감 있게 살아온 젊은 날에 비해 생활의 속도가 늦어지게 마련이다. 먹는 것도 느려지고 걷는 것도 느려지고 읽는 것도 느려진다. 노인의 정체성은 느림이다. 
  인간수명이 길어졌다는 것이 ‘삶다운 삶’이 보태진 것이 아니라 군더더기가 늘어난 것이라면 끔찍한 재앙일 수 있다. 사회의 제도나 인간의 생물학적 체질과 조화되지 않는다. 과거에는 60세 전후까지 열심히 일하고, 그 이후 체력이 쇠퇴하면서 병사하는 것이 생체리듬이었고 여기에 맞게 사회생활의 틀이 짜여졌다.
   그런데 이제는 대학을 나오고 전문분야를 찾아 30년 정도 일하고(우리나라는 사회진출 연령이 너무 늦다), 그 후 40년을 덤으로 살아야 한다. 은퇴한 후 40년을 백수로 보내는 것이다. 직업에 따라 정년이나 은퇴시기가 다를 것이다.
  내 친구 K교수. 전자공학 교수인데 정년을 5년이나 남겨놓고 학교를 떠났다. 공학계의 학문이 하도 빨리 발전하여 부지런히 논문을 읽고 학문흐름에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50이 넘으면서부터는 너무 힘들고, 더 이상 자리를 지키는 것이 후배나 학생들에게 면목이 없다고 사표를 낸 것이다.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으로 다시 배우는 자세로 학문 앞에 섰다가 나름 깨달음이 온다면 한 두 강좌 더 해보고 싶다는 미련을 말하기는 했다.
  나이 들면 체력, 시력, 활력도 떨어지고 판단력이나 주의력, 기억력, 순발력, 적응력 등등이 떨어지는데 고도의 지적 활동이 필요한 직장에서는 견딜 수 없다. 그런데도 늙은이들이 계속 직장자리를 틀어쥐고 있다면 그만큼 사회의 활력이 떨어질 것이다. 세기적인 발명이나 예술작품은 거의 젊은 시절에 완성된 것이다.
  은퇴 뒤에 아무리 화려한 백수라도 화려할 수가 없다. 취미생활에도 한계가 있고, 자기계발에 시간을 바쳐 무엇 하나. 인생 2모작, 3모작이라며 아예 다른 길을 찾아 나선 사람들도 있다. 그림을 배우고 색소폰을 불고한다 해도 군더더기 같은 40년의 삶이 지나온 30년의 일하는 희열, 보람, 때로는 가족까지 등한하며 빠졌던 시간과 같이 알차고 값진 그런 삶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도 은퇴한 후 다시 소설을 쓰기로 하였다. ‘마지막 인사’를 비롯하여 장편소설을 네 편을 썼다. 나름 정성도 들였고, 괜찮다고 여겼지만 결국 나는 다시 소설가가 되지 못했다. 환갑이 지나고 나서 다른 세계에 나선다는 것이 참으로 힘든 현실이다. 세상이 흘러가서 변했는데 옛날의 물을 찾은 것이다. 노인에게 맞는 일자리 찾기가 너무 힘들다.
 
  고령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부양문제다. 일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노인보다 많아야 사회적 부양이 되는데 출생률은 계속 떨어지고 노인인구가 늘어나니 부양이 가능하지 않다. 이자율이 낮은 세상에서 30년 번 돈으로 40년을 버틸 수는 없다.
  연금으로 버틸 수 있는 계층은 공무원, 교직자와 군인출신 뿐이다. 모든 국민이 젊은 시절 똑같이 내어 저축하고 노인이 되어 똑같이 받을 수 있도록 연금제도를 고쳐야 한다. 몇 년 전인가, 정부가 연금개혁한다고 나서더니 공무원노조 위세에 눌려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나.
  나이가 들면서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다. 의학의 발달로 여러 가지 형태의 생명연장이 가능해졌다. 온갖 튜브를 코, 입, 목구멍과 아래에 달고 숨을 쉬고 있다고 사는 것이 아니다. 생로병사가 자연의 법칙이다.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시간이 되면 저세상으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의학의 발달로 웬만한 병은 다 건너뛰고, 과잉의료서비스가 넘치고 있다.
  영국의 조조 모예스가 쓴 소설 ‘Me Before You’(영화화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상영함)에 보면 사지마비환자가 된 젊은 주인공이 존엄사를 위해 스위스의 디그니타스병원으로 향한다. 디그니타스는 자살조력을 통한 안락사를 시행하는 병원이다. 얼마 전 영국의 유명한 작곡가부부가 불치병으로 고생하다 나란히 그 병원을 찾아가 손잡고 저 세상으로 갔다는 기사를 보았다. 영국, 독일에서 환자들이 오고 우리나라사람도 18명이나 그 병원을 거쳤다. 내가 최근에 쓴 소설 ‘엄마의 목각인형’에서 나는 여주인공을 스스로 스위스로 떠나보냈다. 
  우리 부부는 서랍 안에 사전의료의향서란 걸 써서 보관하고 있다. 갈 때가 되면 가야지, 가려는 사람 붙드는 것도 고통이다. 정부가 재작년 ‘존엄사법’을 만들어 금년부터 시행한다. 안락사를 허용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인데 아직 우리나라는 너무 엄격하다. 스위스나 네덜란드, 벨기에, 미국의 일부 주는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고, 프랑스에서는 의사가 ‘영원히 편안하게 잠들게 할 수 있는 권리’를 법으로 부여하고 있다.
 
  노인은 늘어나고 있는데 노인에 대한 대비가 너무 허술하다.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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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영 박사(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미국 노스웨스턴대 도시계획학 박사
건설부차관
국토연구원장
교통연구원장
중부대 총장
단국대 교수

 
등록일 : 2018-04-06 13:55     조회: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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