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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의료계의 ‘트럼프’를 보며

이성낙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지난 미국 대선 때 이야기입니다. 국내에서는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무게 있게 예측할 무렵입니다. 때마침 미국 거주 지인은 그곳 상황을 전하며 트럼프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점쳤습니다. 그간 미국 사회의 ‘주인’이라고 생각해온 유권자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참을 만큼 참아온 유권자가 반기를 들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근래 국내 의료계에서 ‘트럼프 증후군’이 돌출했습니다. 비교적 보수 성향이 짙은 의료계가 의사협회의 새로운 회장으로 전례 없이 젊은 후보(1972 년생)를 높은 지지율로 뽑은 것입니다. 특히 신임 의협 회장은 정부가 주도하는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국내 의료계는 예상치 않게 ‘트럼프’가 나타난 현상을 보며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정부는 공중파를 통해 환자의 부담을 줄였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의사의 몫을 줄이면서 시행하겠다는 데 있습니다. 시민 단체는 더 큰소리로 ‘지지입장’을 밝히며 의료계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하고 있습니다. 국내 의료계를 몸부림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1977 년 도입한 의료보험제도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시작하였습니다. 정부 당국은 일찌감치 의료보험제도를 시행한 서유럽이나 일본 같은 나라의 제도를 참작하면서도 의료수가(醫療酬價)는 일방적 ‘후려치기’식으로 턱없이 낮게 책정하며 몰아붙였습니다. 지난 40 여 년간 바뀐 게 없다는 생각이 의료계에 팽배합니다. 여타 노동계의 집단행동을 부러워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 대형 병원이 어떻게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느냐”는 질타성 질문이 들려오는 듯싶습니다. 여기서 세세히 언급할 수는 없지만, 그래서 국내의 그럴싸한 병원들이 외형에 비해 부끄러울 정도로 ‘속이 비었다’고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이대목동병원 미숙아집중치료실 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 예로, ‘문재인 케어’는 대형 병원의 특진 제도를 없앴습니다. 의료 소비자인 환자들이 환영하고 나설 주장입니다. 그래서 이제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대형 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이 지금보다 더욱 가속화할 것입니다. 현재 전국의 중소병원(400 병상 이하)에 있는 67 만여 개 병상 중 30%인 무려 20 만 병상이 유휴병상인데 말입니다.
 
이와 관련해 웃어넘기기엔 서글픈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필자는 20 여 년 전 핵가족화 현상에 따른 심각한 문제로, 입원 환자 곁에서 돌봐줄 보호자가 없는 병동을 운영하겠다고 정부에 건의한 적이 있습니다. 그 조건으로 입원 수가를 조금만 올려줄 것을 요구했더니, 당시 책임 당국이 내놓은 거절의 변이 ‘일품’이었습니다. “위화감이 조성될까 우려된다.” 그래서 거절당했습니다.
 
그런데 국내 대형 병원 입원실의 병상당 간호사(면허간호사, Registered Nurse) 수가 OECD 통계에 의하면 선진국의 50%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거기다 의료수가 또한 상대적으로 비할 바 없이 낮습니다. 평균적으로 미국 의료수가의 1/10~1/2 수준입니다. 그러니 보호자가 환자의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유사 의료 행위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입니다. 저개발국의 의료 환경이 따로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인턴이나 레지던트 같은 값싼 인력에 의존하는 병원 경영도 문제입니다. ‘실컷 잠자고 싶다’는 게 젊은 의사들의 가장 큰 희망 사항이 된 지 오래입니다. 그렇게 젊은 의료 인력이 혹사당하니 ‘덜 힘든’ 진료과로 몰리는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거기다 의사가 진료 중 환자나 그 가족에게 멱살을 잡히고 폭언·폭행을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사정이 이런데 어느 부모가 살벌한 진료 과목의 전문의가 되길 바라겠습니까? 이런 암담한 현실을 사법 당국은 ‘눈 한번’ 깜박하지 않은 채 외면해왔습니다. 여기에 시민 단체는 의사의 불친절을 외쳐댑니다.
 
그 결과 내과, 외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를 비롯한 주요 임상 분야 전문의 과정에 지망생을 선발 못 하는 ‘공황(恐慌) 사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는 선진 외국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현상입니다.
 
모든 의학의 모태(母胎)는 ‘내과학’입니다. 그 내과학을 지망하는 젊은 의사가 부족해진 지 여러 해인데, 경고음치고는 위험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또한 이번 이화대학병원 소아집중치료실 사고의 처리 과정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특히 집중치료실 근무 의료진을 꼭 집단적으로 구속해야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임상 기록은 완벽하게 전산화되어 있습니다. 검찰이 말하는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해당 의사들은 주거지가 확실해 도주의 위험도 없습니다. 이는 대중의 화풀이 차원에서 국내 의료계를 망가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의료계에서는 벌써부터 앞으로 누가 ‘집중치료실’에서 근무하겠냐고 걱정하는 소리가 높습니다. 부끄럽고 암담합니다. 소신을 가진 자가 더 두렵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무능한 정책 탓에 ‘출생아 절벽’이라는 전대미문의 현상이 생각보다 빠르게 우리 곁에 온 것처럼, 자칫 잘못하면 고난도 시술을 할 전문의가 없어 적절한 수술이나 진료를 받지 못하는 험악한 상황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 몫이라는 게 문제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열악한 의료 환경에서도 국내 의료진이 세계 최고의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임상 의료 수준 역시 여러 분야에서 국제적 명성을 구가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비스럽기만 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살려낸 이국종 교수 같은 의료인이 한둘이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나 환자를 생각하는 의사 말입니다. 그래서 더욱더 의료계의 ‘트럼프 현상’을 예의 주시하는 요즘입니다.
 
 
<이 칼럼은 자유칼럼그룹 4월18일자에 실린 것과 같은 내용입니다>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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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낙 교수(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 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가천대 명예총장, 한국의약사평론가회 회장,
()현대미술관회 회장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등록일 : 2018-04-20 10:34     조회: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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