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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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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 열심히 일한만큼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사회,
우리가 추구하는 “바른사회”입니다.

태영호의 수기를 읽고

이건영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건영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K형, 벌써 반년이 지났군요, 이제는 낯선 이민생활에 익숙해졌겠지요?
  작년 가을, 가족들까지 모두 데리고 캐나다로 떠날 때 난 정말 섭섭했다오. 왜 조국을 떠나요? 월남전 참전경험이 있는 형이 우리나라가 월남처럼 되어가는 꼴을 어떻게 보느냐고, 보트피플 되는 악몽을 떨쳐버릴 수 없노라며 훌쩍 떠났지요.
  떠나기 전 형이 한동안 정신과 상담을 받은 것도 저는 이해합니다.  
  우린 평생 만나면 투닥거리고 으르렁거려서 사실 죽이 맞지 않았어요. 따지고 보면 우린 불알친구면서도 비슷한 점이 없었어요. 가난한 농군의 아들인 형은 학생 때 운동권 리더였죠. 괜찮은 집 아들인 나는 방관자였죠. 형은 마르크슨가 뭔가 하는 아슬아슬한 이념서적을 끼고 다니며 나에게도 일독을 권했었지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는 산업화의 전사가 되더군요. 사우디 공사장에서 고생할 때 보내준 사진은 깜둥이 같았어요. 그 후 돌아온 형은 왕보수였고, 난 늘 회색이었죠.
  왜 달라졌느냐고 물으면, ‘젊을 때 사회주의 타령 한번 안 해 본 놈이 어딨어“하고 씩 웃곤 했지요.
 
  요즘 롤러코스터처럼 들썩이는 우리나라 정세를 보고 형은 어떤 생각일지 궁급합니다. 만나면 치맥을 앞에 놓고 밤새 투닥거릴텐데. 요즘은 모두 입 닫고 산다오.
  최근에 난 태영호의 증언 ‘3층 서기실의 암호’를 읽었어요. 감동으로 가슴이 한동안 멍하더군요. 젊은 시절 수령님 사상에 감염되어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도 열성적으로 조국의 외교를 위해 혼신하는 모습이 선합니다. 당시 조국 조선은 국제사회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었지만 태영호에게는 전부였지요. 그렇게 교육을 받았고, 또 믿었지요. 대다수의 북한사람들처럼.
  외교관으로 선진국을 돌아다니면서도, 가난한 조국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이 넘쳤습니다. 그러자 차차 미몽에서 벗어났고, 새로운 눈으로 세계를 보면서 조국에 대한 생각을 바꿉니다.
 
  K형,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나서 지금 우리나라 전체가 들떠 있습니다. 곧 평화가 온다고 합니다. 한반도에서 핵이 없어지고 남과 북이 공존하는 세상이 온다고 합니다. 청와대에 들어앉은, 과거 위수김동을 외치던 사람들이 마침내 큰 일을 해냈다고 생각했지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태영호는 증언합니다. 김정은이 2017년까지 핵실험, 미사일시험을 모두 끝내고 2018년 동계올림픽부터 평화공세를 펴며 핵보유국지위를 확보한다는 것이 북한의 당초 계획이라고. 그러니 북의  평화공세는 계획된 것이라네요.
  핵은 곧 북한의 생명줄입니다. 따라서 북한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핵을 포기하는 순간, 개방정책을 채택하는 순간 북한은 무너진다는 논리입니다. 동독이 망한 것도 순간입니다. 동독시민들에게 자유여행을 허락한다는 잘못된 뉴스 하나로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것이지요.
  북핵의 당사자는 바로 우리지요. 북한은 절대 우리를 향해 핵을 쏘지 않을 것이라고들 말합니다. 또 비핵화가 선대의 유훈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쏘지도 않고, 폐기하기 위해 핵 개발하는 정신 나간 나라가 있습니까? 걸핏하면 서울불바다 위협 때문에 밤잠을 설치곤 했는데, 코  앞에 핵을 둔 우리가 왜 북핵문제에서 비켜섭니까? 왜 핵이 북미간의(대통령 표현에 따르면 조미간의) 문제라며, 트럼프와 김정은을 모시고 운전수노릇만 합니까? 미국과 북한이 적당히 타협해도 좋다는 겁니까?
  트럼프도, 김정은도, 우리대통령도 모두 ‘한바탕 쇼’에 능한 꾼들입니다.
  핵 불감증에 걸린 우리 국민들은 김정은의 포옹과 김여정의 미소에 녹아버렸습니다.
  모두에게 당장 편한 일은 적당히 덮는 거지요. 역사가 어떻게 기록하든 당분간은 ‘평화’입니다. 나중 적당한 때 북한은 숨겨두었던 핵을 슬그머니 내비치면 그냥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이지요.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말입니다.
  CVID라는 난해한 말들이 쏟아지지만 누구도 이게 가능하다고 믿지 않죠. 그저 레토릭에 불과합니다. 지금과 판박이였던 2005년 북핵 해빙기 때, 형과 대판 싸웠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이제 ‘평화’가 왔다고 깐죽거렸고, 형은 위장에 불과하다고 성질을 부리며 내 턱을 후려쳤었죠. 덕분에 나는 이빨 두 개를 뱉어냈고, 이듬해 10월 북의 핵실험으로 형의 예측이 들어맞았어요.
 
  K형, 남한에 정착한 태영호는 남은 인생을 노예생활을 하는 북한사람들을 해방시키는데 바치겠다는 결기를 보이더군요. 이것은 ‘통일’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몇 년 전 류우익 전 통일부장관을 만났더니 통일항아리운동 책자를 주더군요. 왜 우리는 통일을 지향해야 하는가 하는 내용인데 ‘통일은 곧 북한사람들을 구제’하는 길이라고 기억합니다. 태영호는 북한사람들은 압제 밑에서도 통일을 꿈꾸며 사는데 남한사람들은 무관심하다고 한탄하더군요.
  우리 대통령은 서로 체제 보장해 주고 서로 간섭하지 말고 싸우지 말고 평화롭게 살자고 합니다. 전쟁만 피할 수 있다면 된다는 이 같은 반통일적 사고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팽배하고 있습니다. 탈북인사들은 배신자로 몰리고, 북한의 인권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통일은 그저 구호일 뿐입니다. 
  우리는 북한이 한반도비핵화를 약속하면 김정은 체제를 완전하게 보장한다고 합니다. CVIG라네요. 우리나 미국이 어떻게, 왜 남의 나라 체제와 그 권력을, 영구집권을 보장합니까? 
 
  평화란 좋은 것입니다. 이제 사드도 필요 없겠지요. 작년만 해도 동해바다에 미사일 터지는 소리가 요란했고 지축을 흔드는 수소탄 실험도 있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남북 정상이 이웃집 사람 만나듯 한 달에 두 번씩이나 얼굴을 맞대었지요. 적폐집단인 야당 사람들과는 한 자리에 앉는 것도 싫지만, 북한과는 다릅니다. 남한과 미국의 체제보장을 받으면 김정은의 독재체제는 더욱 공고해 지는 것이죠.
 
  K형, 태영호마저 북한 주민들이 계속 압제와 가난 속에 지내게 둘 수 없다는 절박감을 호소하는데, 우리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는가요? 환상 같은 평화의 달콤함 때문에 통일은 점점 멀어지고, 북한 인민들은 영원히 압제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겁니까? 김정은은 고모부를 고사포로 살해하고 친형을 독살한 독재자이지 평화의 사도가 아닙니다. 독일 통일도 결국은 에리히 호네커, 에곤 크렌츠 등 동독의 고위간부들을 감옥에 넣으면서 완성되었지요. 그런데 우리는 북한주민들의 인권보다 김정은의 독재 영속화에 몰두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왜 독재정권의 들러리를 섭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설마란 게 있지 않습니까? 갑자기 김정은이 정말로 핵을 폐기하고, 문호를 개방하여 기업 활동을 장려하고, 3세대 세습의 폐해를 인정하고 물러나, 새로운 지도자를 자유선거로 뽑고, 남과 북은 서로 이웃집처럼 오가고, 올림픽 때마다 단일팀을 만들어 통일이 된 것인지 아닌지 뭐 그런 세상, 이런 판타지가 펼쳐질지도 모르지요.
  우리 대통령은 노벨상도 타고 벨노상도 타고 말입니다.
  그래서 미국 중간선거가 끝나고 건국 100주년(대통령이 1919년부터 따지라기에)이 되는 내년에는 정말 다른 세상이 될까요? K형, 그러면 죽어서 재가 되어도 이 땅에 묻히세요.
PS 태영호의 책을 한권 우송합니다. 저자가 지금 적폐대상이 되어서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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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영 박사(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미국 노스웨스턴대 도시계획학 박사
건설부차관
국토연구원장
교통연구원장
중부대 총장
단국대 교수

등록일 : 2018-06-04 13:56     조회: 3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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