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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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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 열심히 일한만큼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사회,
우리가 추구하는 “바른사회”입니다.

추천서와 신용사회

이성낙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성낙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직장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뜬금없이 퇴사를 통보하기 일쑤라며 개탄하는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요컨대 미련 없이 헌신짝버리듯이 직장을 떠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결별은 많은 경우 상대방이 있는 현상이기도 해서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 근간에 흐르는 도리와는 분명 거리감이 있는 일입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정서가 그런 거친 행동을 방관하고, 모르는 척 눈을 돌리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헌신짝버리듯 직장을 떠난 사람이 다른 직장으로 스스럼없이 옮겨가도 흔히 있을 수 있는현상으로 받아들이며 묵인 또는 외면해온 사회적 산물인 것입니다.
 
기업의 책임자는 새 일꾼을 구했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입니다. 이는 다른 회사의 유능한 인재를 탐내서 빼오기일쑤인 직업 시장이 윤리보다 결과를 정당화하는 데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능력우선주의를 당연시하는 사회 현상의 한 단면일 수도 있습니다. 근래 많이 회자되는 갑을(甲乙)’ 관계에서 에 대한 맹목적 편들기가 횡행하는 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일이 서구 사회에서 일어난다면 어떨까요? ‘헌신짝 버리듯직장을 떠난 사람은 만만치 않은 어려움에 직면할 것입니다. 새로 취직할 기관이나 회사에서 예외 없이 예전 직장의 추천서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구에서는 추천서 없이 직장을 옮기는 전직(轉職)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추천서 없는 지망자는 일단 ()범죄자로 분류하기 마련입니다. 그를 채용할 기관이나 회사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직장 분위기를 파괴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우려 때문에 일차 경계할 것입니다.
 
그런데 끝이 좋지 않게 떠난 당사자가 예전 직장의 담당 부서장이나 선임자에게 추천서가 필요하니 써달라고 머리 숙여 요청한다면, 법이 이를 보장합니다. 즉 해당 회사나 기관은 신청자에게 추천서를 발급해야 합니다. 그리고 발급하는 추천서에는 어떤 부정적인 사항도 언급해서는 안 됩니다. 부정적인 내용을 쓰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추천서를 감정·관리하는 사람은 그 내용의 행간을 읽고 판단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가) “추천 대상자는 00년에 입사해 00년에 퇴사했다. 근무하는 동안 형사상의 문제는 없었음을 확인한다와 나) “추천 대상자는 00년 입사해 00년 퇴사할 때까지 모든 면에서 모범적이었으며, 함께한 동료들과의 관계도 참으로 훌륭했다라는 두 추천서의 품질은 달라도 확연히 다른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 정서와 풍습을 흔들림 없이 지켜오는 사회에서 욱하고 화를 내는 것은 절대 금물(禁物)입니다. ‘헌신짝버리듯 함부로 욱 질을 못 한다는 뜻입니다. 사회가 욱 질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생생하게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필자가 한 제자를 미국 보스턴의 저명한 연구소 연구원으로 보내기 위해 지인인 현지 주임교수에게 간곡한 추천의 글을 보냈을 때의 일입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 주임교수는 제자를 보스턴으로 보내면 인터뷰를 하고 결정하겠다는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그네들의 정서를 익히 알고 있기에 오해할 사항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왠지 조금은 섭섭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1990년대만 해도 인터뷰만을 위해 보스턴을 왕복하는 데는 재정적 부담이 상당했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다행히 제자는 보스턴까지 가서 인터뷰를 했고, 합격이라는 긍정적인 결과를 갖고 돌아왔습니다. 그때 지도교수와는 별도로 식사를 겸한 단독 인터뷰를 하고, 연구실에서 함께 일할 여러 연구원과 대화를 나누며 커피를 즐겼다고 했습니다. 고작 1~2년 있을 임시직 연구원을 뽑으면서 그처럼 까다롭게 인터뷰를 한 것입니다.
 
얼마 후 지인인 그 주임교수를 만나 대화를 나누던 중 필자가 추천해준 그 연구원이 뛰어나게 명석하고, 성실하고, 끈기 있게 연구에 임하고 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교수는 그런 유능한 제자를 보내줘서 고맙다는 인사까지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필자는 교수에게 인터뷰 때 어떤 점을 가장 유의해서 살펴보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장차 함께할 조직원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 여러 각도로 살펴본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조직 내의 인화(人和)’를 가장 중시한다는 뜻입니다.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만약 추천서가 없다면 어떨까요? 정말이지 새 직장을 찾기가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저명한 외국 교수를 찾아가 인터뷰를 하고 연구원이 되었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그 연구실을 떠난 후 다음 지도교수를 찾지 못해 결국 학위를 받지 못한 사람을 여럿 보았습니다. 이는 분명 추천서가 걸림돌로 작용한 경우일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서구에서는 한 단체의 조직원으로서 함부로 처신하면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습니다. 요컨대 주변을 의식하고 배려하는 정서가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장에서 어느 날 갑자기 욱해서직장과 동료를 헌신짝버리듯 떠나는 게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아마도 추천서 관행이 이런 사회적 억제 기능을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추천서 관행이 없는 우리나라는 과연 어떤 등급의 신용 사회일까요? 무거운 마음으로 우리를 되돌아보는 요즘입니다.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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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낙 교수(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 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가천대 명예총장, 한국의약사평론가회 회장,
()현대미술관회 회장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등록일 : 2018-07-26 15:54     조회: 1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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