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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 열심히 일한만큼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사회,
우리가 추구하는 “바른사회”입니다.

중국 ( 中國 )을 이기는 길

정진태 바른사회운동연합 회원

정진태 바른사회운동연합 회원

오늘은 중국을 이기는 길에 대해 같이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선 중국의 개방화 초기 시절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90 년대 초 제가 몸담고 있던 회사의 주력 사업이 가격 경쟁력을 잃어 중국으로 공장 이전을 추진하였습니다.
 
91 년 중국과의 수교 전이라 홍콩에 사무실을 개설하고 중국을 드나들기 시작 하였습니다. 주로 중국 남부 지역 광동 성 ( 廣東 省 )의 주요 도시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곳이 등소평의 남순 강화 ( 南巡 講話 )로 중국 내에서 제일 먼저 개방화 됐기 때문입니다.
 
남순 강화란 1992 년 1 월 말부터 2 월 초까지 등소평이 천안문 사태 후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보수, 수구적 회귀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심천, 주해 등 남방 경제 특구 ( 經濟 特區 )를 순시 하면서 개혁 개방 확대를 주장한 담화 ( 談話 )로서 80 년대부터 주창한 그의 유명한 흑묘 백묘 론 ( 黑猫 白猫 論 )을 통해 중국 특유의 사회주의 시장 경제론을 설파한 사건 입니다.
 
당시 울산 공장의 생산 설비를 중국으로 이전하여 생산 할 곳을 찾기 위해 광동 성 내 중산 ( 中山 ) , 순덕 ( 順徳 ) , 주해 ( 珠海 )  동관  (東冠 ) , 강문 ( 江門 ) 등 주요 도시를 방문 할 때마다 겪은 경험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홍콩에서 배를 타고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한 시간 반을 달려 지방 도시에 닿으면 시장 ( 市長 )을 비롯 고위 공무원들이 마중을 나옵니다. 그리고는 경호 차를 앞세워 사이렌을 요란하게 울리며 호텔로 향 합니다. 호텔 체크 인이 끝나면 식당으로 우르르 몰려가 술 판이 벌어 집니다. 52 도 짜리 빠이주 ( 白酒 )를 권하며 여기 저기 친구라는 의미의 ‘ 팡요 ( 朋友 )’를 외쳐 댑니다. 대 낮부터 두어 시간 넘는 거나한 점심을 끝내고 나면 오느라 피곤 할 터이니 쉬고 저녁에 만나자 하고들 사라 집니다.
 
저녁 5 시가 조금 지나면 외사 판공 처 ( 外事 辦公 處, ; 외국 업무를 담당하는 정부 기구 ) 주임이 호텔로 찾아와 잘 쉬었느냐 인사를 하며 차에 태워 어디론가 데리고 갑니다. 때론 시 (市) 정부에서 운영하는 식당일 때도 있고, 때론 그 지방의 제일 크고 멋진 식당으로 데리고 갑니다.
 
식당에는 벌써 두 테이블 20 여명의 사람들이 이미 도착하여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 당서기가 자리를 권하고 앉으면 점심에 이어 두 번째 만남이니 이번에는 호칭이 바뀌어 오랜 친구라는 뜻의 ‘ 라오 팡요 ‘ ( 老 朋友 )로 부릅니다.
 
요란한 저녁 식사가 끝나면 오늘은 피곤 할 터이니 푹 쉬고 내일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는 헤어집니다. 첫 날은 으레 그런 식으로 끝이 납니다.
 
다음 날 10 시 경 되면 외사 판공처 직원이 호텔로 와 저를 데리고 시 정부 청사로 향 합니다. 시청 회의실에는 고위 간부 20 여명이 미리 와 기다리다 회의를 시작 합니다. 대부분 시장 ( 市長 )이 중앙 정부의 고위 관료가 왔을 때 쓰는 브리핑 차트를 가지고 소개를 하기 시작 합니다. 소개할 때 서두 ( 序頭 )에는 예외 없이 ‘ 등소평 동지께서 남순 강화를 통해 개혁 개방을 강조 하셨는바 우리 시에서도 등 소평 동지의 뜻에 따라………’  판에 박힌 이야기를 서두로 이곳 행정 구역은 어떠하고, 면적이 얼마이며, 인구는 얼마고, 앞으로 이곳에는 고속도로가 뚫리고 이곳에는 철도가 생긴다는 등 도시 개발 계획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브리핑은 끝이 납니다.
 
제가 출장 간 목적은 한국의 공장을 이전하기 위해 공장 부지를 찾고 있으니 그 지역에서 추천할 만한 곳을 가지고 전력 사정, 용수 설비, 인력 수급이나 물류 상황들 그리고 중요한 세제 ( 稅制 ) 혜택 등 인센티브 ( Incentives )를 파악하고 협의해야 하는데 그런 필요한 내용은 없이 그저 시 ( 市 )  현황만 듣고 끝난 것 입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그 지방 명소 ( 名所 )라는 곳을 소개합니다.  둘째 날도 그렇게 끝이 나고 맙니다.  3 일 째 되는 날 부 시장 ( 副 市長 ) 과 외사 판공 처 주임이 지도 ( 地圖 ) 한 장을 들고 호텔로 와 저를 태우고 시 ( 市 ) 곳 곳을 다니며 여기에 도로가 생기며 여기에는 향촌 ( 鄕村 ) 기업이 들어 설 것이며, 이 곳에는 철도가 생긴다고 허허벌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장황하게 설명을 하며 누비고 다닙니다.
 
예정 된 3 일 간의 출장 일정이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나고 돌아와 본사에 보고를 하려니 보고할 내용이 없습니다.
 
다른 도시에 가도 위에 설명한 일정과 별 차이 없이 두어 달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본사에서도 인내 ( 忍耐 )의 한계를 느꼈는지 짜증을 내기 시작 합니다. 일의 진전이 없으니 그럴 만도 하죠.
 
중국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아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 없었습니다. 중앙 정부에서 외자 유치를 최 우선 정책으로 추진하다 보니 외국인 투자 유치는 해야겠고, 외자 유치 실적이 인사 고과에 반영이 되니 열심히 할 수 밖에……. 지방 정부 공무원들이 외국인만 오면 경호 차를 앞세워 시내를 요란하게 다니는 것도 주민들에게 당 서기, 시장이 외자 유치를 위해 열심히 일 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요란을 떤 것이며, 그 지방 제일 큰 식당에서 왁자지껄하게 식사를 한 것도 주민들에게 소문을 내는데 최적의 장소를 택했다는 것임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껏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중앙 정부에서 내려온 지시나 열심히 실행하고 그 결과만 보고 하던 사람들이, 그리고 정부에서 할당해준 물자나 분배해 주던 사람들이 비즈니스 상담을 해 본적이 없으니 외국 손님이 오면 요란하게 소란을 피우면서 자기네 인민들에게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선전할 준 알아도 정작 외국인과 상담하는 것은 두려워한 것입니다. 그러니 술판이나 벌리고 팡요 팡요만 외칠 수 밖에 없었던 것 입니다.
 
한 참이 지나서야 중국도 토지 공 ( 公 ) 개념의 국가로서 공장을 설립 하려면 정부로부터 30 년이든 50 년이든 토지 사용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본사에서는 ‘왜 땅을 돈을 주고 사야지 30-50 년 사용 허가만 받으면 그 후에는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 부터 시작하여 이곳 저곳에서 사회주의 제도와 법 그리고 본사 경영층의 자본주의적 사고 방식 틈 바구니에서 진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이 문제는 모든 토지의 최종 소유권은 왕실 ( The Crown )이 가지고 있는 영국도 토지를 임차 ( Leasehold )해서 쓰는 나라로 아편 전쟁 후 홍콩 땅, 정확히 말하면 신계 ( 新界 New Territory ) 지역을 99 년 ( 75 년 + 24 년 ) 간 조차 ( 租借 )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 하였다고 남의 나라 역사까지 들추어 설명을 해가며 겨우 이해를 시켰습니다.
 
지금까지 장황하게 중국의 개방화 초기 상황을 설명한 것은 불과 30 년 전의 중국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30 년이 지난 지금 중국의 상황은 어떠한가요 ? 제조업 전 분야에서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며 싼 가격에 물건을 쏟아내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국 제조 2025” 라는 구호를 내걸고 2025 년에는 중국이 첨단 산업을 비롯 제조업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워 놓고 있습니다.
 
그렇지 그들이 누구입니까 ? 유명한 화상 ( 華商 )의 후예들 아닌가요 ? 잠자던 장사 꾼의 DNA 가 살아난 것입니다.
 
삼성 휴대폰이 중국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 1 % 이하로 추락하는 수모를 당하고, 현대 차는 그 정도 수준의 차는 30 % 이상 싼 가격에 생산할 중국 토종 기업들이 수두룩하다며 가격을 낮추라고 윽박지르니 위에 설명한 30 년 전 중국 개방화 초기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의 대표 선수 급 기업인 삼성과 현대 차가 그러할 진대 다른 중소 기업들은 불문 가지 ( 不問 可知 ) 입니다.
 
그렇다고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고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중국의 덩치가 워낙 커져 미국과도 맞장기를 두려 하는 거인 ( 巨人 )이 되었으니 이 또한 난망 ( 難望 ) 입니다.
 
하지만 뜻이 있으면 길은 있기 마련입니다. 운동 시합에서 상대를 이기려면 상대의 약한 부분을 집중 공략해야 하듯이 중국의 약점을 찾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야 우리에게 승산 ( 勝算 )이 있습니다. 이 방법으로 중국 사람들이 자랑하는 고서 삼국지( 三國志 )에 나오는 허허 실실 ( 虛虛 實實 ) 전법을 쓰자 이겁니다.
 
중국 후스 ( 胡適 ) 라는 작가의 ‘차부 뚜어 선생’ (差不多 先生  ) 이라는 단편 소설이 있습니다. 차부 뚜어란 ‘차이가 별로 없다’ 라는 의미로 그게 그거다 하는 적당주의 ( 適當 主義 )를 의미 합니다.
 
소설 속 내용에 주인공인 차부 뚜어 선생은 따지기를 싫어합니다. 세상 만사가 그게 그거인데 따지면서 살아갈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합니다. 백(白) 설탕을 사오라면 황(黃) 설탕을 사와 설탕이 단 것이면 되지 구태여 희고 누른 것을 가릴 필요가 있느냐 반문하고, 또한 회계 장부에 십 ( 十 )을 천 ( 千 )으로 천 ( 千 )을 십 ( 十 )으로 바꾸어 적어 놓고 십이나 천이나 획 하나 차이인데 뭘 그리 까다롭게 구느냐는 것입니다. 마침내 차부 뚜어 선생이 중병에 걸려 하인에게 의사를 불러오라 하니 하인은 수의사 ( 獸醫師 )를 불러 왔습니다. 수의사도 의사이니 그게 그거 아니냐는 것이죠. 차부 뚜어 선생은 결국 죽으면서 ‘죽는 것과 사는 것도 차부 뚜어 아닌가’ 하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이는 중국인들의 적당 주의를 비판한 소설로서 루쉰 ( 魯迅 )의 아Q 정전 (阿Q 正傳)과 더불어 계몽주의 대표적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중국의 단편 소설을 이야기 한 이유는 우리나라도 소설 속 적당주의 ( 適當 主義 )가 현실 속에서 판을 치고 있어 중국과 차뿌 뚜어이기 때문입니다.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대형 사고도 결국은 적당 주의의 산물 ( 産物 )  입니다. 괜찮겠지 하는 안일주의 ( 安逸 主義 ), 전문성 없이 그저 아마추어 식 일 처리, 좋은 게 좋다는 무 원칙 ( 無 原則 ) 주의 등이 중국과 빼 닮은 모습입니다.
 
우리가 중국을 이기려면 중국이 부족한 부분을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이길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중국과 우리가 같이 가지고 있는 적당 주의 즉 차뿌 뚜어 정신을 우리가 먼저 버리고 원칙 주의, 전문성, 정확성 등 기본에 충실하는 일 입니다.
 
중국은 화상 ( 華商 ) 이라 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대 상인, 아랍 상인과 더불어 3 대 상인 ( 商人 ) 중 하나 입니다. 우리는 지금 30 년 전 개방화 초기의 사회 주의에 물든 중국인들은 물러가고 옛 화상의 DNA를 찾은 젊은 중국인 들과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화상 못지 않은 개성 상인의 후예들 입니다. 송상 ( 松商 ) 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며 중국, 일본을 포함 멀리 아라비아와의 국제 상 거래에도 이름을 떨치며 복식 부기 ( 複式 簿記 )를 창안해 사용할 정도로 계산이 바르고 시변제 ( 時邊制 )라 하는 신용을 바탕으로 한 금융 거래를 한 개성 상인들 말입니다.
 
우리가 중국을 이기려면 차뿌 뚜어 식 적당주의를 버리고 계산이 바르고 신용을 으뜸 삼는 개성 상인의 정신을 살릴 때 중국을 이길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비장의 카드가 있습니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분들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이 있습니다. " 꽌시 "라는 말 입니다. " 꽌시" 란 관계 ( 關係 )를 뜻하는 말로 중국에서 사업에 성공 하려면 인간 관계를 활용하라는 이야기 입니다.
 
외국인, 내국인, 친구, 고향 사람 등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 같은 물건이라도 값을 달리 부르는 중국인들이니 틀린 말은 아닙니다. 꽌시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고 의사 결정이 달라지는 인치 ( 人治 )의 세상이 중국 입니다. 시장이 왜곡된 곳 입니다. 이러한 상 ( 商 ) 관습은 국제 표준에도 맞지 않고 옛날 비단 장사 왕 서방이 장사하던 시절 때나 가능했던 일 입니다. 이런 중국을 이기는 길은 우리는 공정한 시장을 만들고 정의로운 법치로 대항을 하면 국제 경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제가 중국의 약점 ( 弱點 )을 알려 드렸으니 허허 실실 전법으로 꼭 이기시길 바랍니다.
 
" 네 ? 그게 되겠느냐고요 ? "
 
" 이봐, 해 봤어 ? 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야 하고, 찾아도 없으면 길을 닦아야지. "
 
옛 현대 그룹 고 정 주영 명예회장의 말 입니다.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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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태 (바른사회운동연합 회원)
 
() 독일 ZF Lemfoeder GmbH 한국 사장
() 현대자동차그룹 중국 지주회사 총경리
저서: 금지(禁止)된 고백(告白)
등록일 : 2018-10-31 13:53     조회: 1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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