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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

자유기고 게시판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 열심히 일한만큼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사회,
우리가 추구하는 “바른사회”입니다.

소설: 귀국열차 풍경

이건영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건영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베트남 북쪽 국경지역에 있는 동당역.

  출발할 채비를 하고 있는 열차 주변에 깃발을 든 환송객들이 가득하다. 이윽고 열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창유리를 통해 북조선의 김정인수령이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인다. 열차는 서서히 속도를 내며 역을 빠져 나간다.

  하노이에서 북미정상회담을 마치고 가는 북한의 귀국열차다. 열차 안에는 수령을 중심으로 참모들이 둘러 앉아있다. 부위원장 김용철, 외상 리영호 그리고 누이동생 김유정, 그 옆에 부부상 최순희도 다소곳이 앉아있다. 모두들 무겁고 굳은 표정인데 리영호만은 가끔 웃음을 흘린다. 이것은 그의 습관이다. 공식석상에서는 포커페이스지만 조금만 긴장이 풀리면 그는 실실 웃는다.

  “이번회담 결과가 영 맘에 안 드누만. 그 누무 미국놈들 농간에!”

  수령동지가 담배연기를 푸 내뿜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아닙니다, 각하. 원래 각본에서 살짝 비켜났지만 이 정도면 성공입네다. 외신에서는 우리가 한방 먹었다고 난리지요. 확실한 것은 우리가 미국의 제안을 브러핑한 겁네다.”

  리영호가 수령동지의 눈치를 보며 조곤조곤 말한다. 리영호는 지략가다. 한발 나가다가도 필요하면 반 발쯤 물러날 줄을 안다.

  사전 각본도 비슷하기는 했다. 이번 회담에서 스몰딜 정도 예상하고, 살라미 한쪽 떼어줘서, 드럼대통령이 애타게 하는 선에서 끝내기로 되어 있었다. 물론 제재완화란 선물을 주면 받겠지만 비핵화문제는 계속 안개만 피울 작정이었다. 지금 그들이 빈 손으로 귀국열차에 올랐지만 양보한 것은 하나도 없다.

  어제까지 울적한 기분을 참고 베트남측과의 공식일정을 마쳤다. 그리고 리영호를 불렀다. 리영호는 이번 회담의 성과를 두 가지로 요약했다. 이제부터 우린 당당히 핵국이다. 비핵화회담이란 핵국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령은 미국대통령과 어깨를 겨누는 頂上국가의 頂上이다. 젊은 수령이 늙다리 미국대통령과 나란히 악수하는 모습이 실린 여러나라 신문들을 탁자 위에 펼쳐놓았다.

  회담에서 불티보좌관이 불쑥 내민 사진을 보고 챙피스러울 정도로 당황해서 잠시 숨이 막혔던 것이며, 드럼대통령이 미리 짜고 온 듯 그만하자며 자리에서 일어서던 모습을 생각하면, 내가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와야 했지 않나 하고 후회스럽고 짜증나고 울화통이 터져있던 참인데, 리영호의 별난 해몽을 듣고 보니 조금 위안이 되었다. 왕복 180시간을 기차로 달려온 가치는 있다고 리영호는 조곤거렸다. 그래?

 

  모두들 술잔을 앞에 놓고 리영호의 말을 들었다.

  열차소리가 직직 들려오고 차체가 흔들려서 들고 있던 담배의 재가 바닥에 떨어졌다. 김유정이 재치있게 재떨이를 손에 받쳐 들고 왔다.

  “근데 미국애들 기술은 대단하구먼. 걔들이 내민 사진에 우리 시설이 다 노출되어 있잖아?”

  “우린 그 사진을 찍은 인공위성의 궤도와 촬영각도 다 알고 있습니다. 일부러 찍어가라고 내놓고 있었죠. 진짜 숨겨 놓은 곳은 그들이 알 리가 없죠.”

  이번에는 최순희가 나섰다.

  “근데 남쪽에선 왜 미리 미국이 내 놓을 카드를 우리한테 귀뜸도 해주지 않았지?”

  사실 정권이 바뀐 이후 미국측 정보는 거의 실시간으로 중계되지 않았던가.

  “이번엔 걔들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모양입네다.”

  “알고도 우릴 함정에 빠뜨린 건 아니고-?”

  “아닙네다, 각하. 이제 우리의 弱者 코스프레가 먹혀서, 남쪽에선 양키눔덜 우리 형님한테 이러기야하는 분위기가 퍼질 겁니다. 남쪽정부도 당연히 미국과 부딪칠 겁네다.”

  “그럼! 그래야지.”

  수령이 탁자를 내리치며 큰 소리로 말했다.

  “남쪽에서 조만간 특사를 평양으로 보낼 겁니다. 그리고 금강산과 개성공단을 아마 시험삼아 건드리고, 민노총이나 시민단체한테 사인을 보낼 겁니다. 그러면 반미 회오리가 불죠.”

  노회한 김용철이 나름 자신있게 앞날을 점치고 있다.

  “거긴 왜 우파도 있잖아?”

  “그동안 적폐청산이름으로 숙청작업을 해서 지금 우파는 빈 껍데기 뿐입네다. 각하, 남쪽 좌파의 능력은 짱입네다. 시위는 세계 최곱니다. 수십만 인파가 촛불들고 나와 양키 고 홈을 외치며 열흘만 미대사관 둘러싸면 미국애들은 결국 도망칠 겁니다.”

  이번에는 다시 리영호가 거들었다.

  “걔들은 학생 때부터 철저히 반미교육을 받아왔어요. 지금 남쪽 지배층의 정신적 고향은 주체사상입니다. 장군님께 충성맹세한 애들도 지금 국회, 내각에 포진해 있고. 숫적으론 친미가 많지만 투쟁력으론 단연 종북이죠. 이번 회담이 결렬되어서 서울바닥은 남남갈등이 지글지글 끓어오를 겁 겁니다.”

  “근데 제재 때문에 앞으로 우리 인민들이 너무 고달프잖소.”

  수령이 근심스런 표정으로 엇박자를 놓았다.

  “요즘은 남쪽 비밀루트로 오는 게 꽤 됩니다. 게다가 중국과 러시아 쪽에도 구멍 뚫어주면 일단은 충분합니다. 어차피 우린 큰 무역은 못 합니다. 그저 남쪽이 빨갛게 익어서 저절로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면 됩니다.”

  “그래? 기대해 보자구. 껄껄

  수령은 김용철의 마지막 말이 맘에 들었는지 맞장구를 치며 헛헛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긴장해 있던 참모들도 제마다 건조한 웃음을 터뜨렸다. 분위기가 어색하게 엉겼다.

  남쪽이 빨갛게 익어서 떨어져? 생각만 해도 수령은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남은 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모들에게 수고했다고 인사를 하고 수령은 침실로 들어섰다. 벽에는 군사퍼레이드장면이 길게 그려져 있다. 이불에는 원자탄이 터지는 구름무늬가 그려져 있고, 벼개는 미사일처럼 디자인이 되어있다. 한잔 한 탓에 몸을 슬슬 풀려온다. 벌렁 누워서 벼개를 끌어 안았다.

  그러나 가슴이 답답해 온다. 젠장, 앞으로 4,50년 더 통치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미국과 피곤한 게임을 계속할 수 있을까? 물려받은 유산이 핵과 가난한 인민들이라니.

  처음 수령이 되었을 때는 멋지게 통치를 해서 가난한 북조선을 스위스나 유럽 국가들 수준으로 발전시켜야겠다는 열의에 불탔었다. 드럼대통령은 핵을 포기하면 엄청난 경제발전이 있을 거라는데 솔직히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계산을 해보아도 핵을 포기하는 순간 자기는 끝난다는 걸 그는 안다.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았으나 정신은 더 또렷해진다. 다시 가슴이 답답해 온다.

  젠장. 이게 다 문재은대통령 탓이다. 남측 특사란 자가 와서 소곤거리지 않았던가. 그저 비핵화 시늉만 하라고. 그러면 남측은 북조선의 대변인이 되어 미국을 설득해서 제재 풀고, 경제 도와주고, 이렇게 차근차근 연방제 준비하자는 사탕발림.

  사실 작년 싱가폴 회담때는 남측의 코치가 주효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드럼에게 적당히 맞장구 쳐주면 북조선을 핵국으로 대접하고 제재도 풀고 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리영호의 계산은 또 달랐다. 이번 회담이 스몰딜로 결말이 나면 계속 비핵화과정으로 질질 끌려갈 수 밖에 없는데, 결렬이 되어서, 한국과 미국을 갈라놓고, 남한을 확실하게 수하에 붙잡아 둘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리영호 녀석, 물건이야. 꾀주머니란 말야. 수령은 무패라며 억망이 된 회담결과를 멋지게 재해석해서 아부 떠는 모양새라니. 꿈보다 해몽이지


  어느새 그는 잠이 들었다. 그리고 잠결에 무서운 폭격기소리를 들었다. 그는 엉겹결에 침대 밑으로 떨어지며, ‘안돼, 안돼하며 발버둥쳐 대었다. 그러다 잠이 깨었다. 깨어보니 핵벼개를 꽉 부여안고 있는 것이었다. 온몸에 진땀이 흘러내렸다.

  열차는 계속 직직 소리대며 중국영토를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이 글은 허구를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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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영 박사(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미국 노스웨스턴대 도시계획학 박사
건설부차관
국토연구원장
교통연구원장
중부대 총장
단국대 교수

등록일 : 2019-03-08 12:52     조회: 2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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