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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 열심히 일한만큼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사회,
우리가 추구하는 “바른사회”입니다.

법보다 우선시해야 할 윤리의식

이성낙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성낙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필자는 ‘윤리’, ‘도덕’, ‘법정신’을 논할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 말은 필자의 윤리나 도덕에 대한 생각이 필자가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사회에서 직간접적으로 보고 느낀 수준을 넘지 못하는 그야말로 상식적인 수준이라 뜻입니다.

그런데 요사이 우리 사회에는 상식을 뒤흔드는 일들이 광풍처럼 몰아치고 있습니다. 그러한 광경을 지켜보는 ‘보통 사람’의 마음은 짓밟힐 대로 짓밟혀 이젠 비상식적인 일이 상식이 되고 일상화된 것은 아닌가 싶어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래서 필자가 혹시 상식(常識)이란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싶어 다시 한번 짚어보았습니다.

상식을 영어권에서는 ‘Common sense(공통적인 느낌, 감각)’, 프랑스에서는 ‘Bon sens(좋은 느낌)’, 독일에서는 ‘Der gesunde Verstand(건전한 이해)’라고 표현합니다. 즉 나에게도 좋고, 상대방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은 ‘좋은 공통분모’를 둔 표현으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로 필자는 프랑스인들의 ‘좋은 느낌을 주는 것이 상식’이라는 ‘Bon sens’에 애착이 갑니다.

상식의 의미가 ‘공통적인 느낌’이나 ‘건전한 이해’라는 데 크게 반대할 사람은 없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회가 가진 상식의 기준이 몹시 흔들리고 있다는 생각을 숨길 수 없습니다.
평소에는 수면 아래에 잠복해 있던 ‘표절’, ‘위장 전입’, ‘탈세’, ‘짧은 기간의 부(富)의 축적’, ‘전에 내뱉은 독설이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문제’들이 선거 때나, 공직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다 보니 이젠 어느덧 익숙해져 별것 아닌 일처럼 ‘착각’하게 되고 가치판단의 ‘혼돈’을 일으킵니다.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특별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마음은 불편하기만 합니다. 게다가 늘 생각해온 상식의 눈높이가 흔들리는 상황들이 혼란스럽기까지 합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런 일들의 반복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윤리 면에서 크게 ‘무뎌지고 있다’라는 사실입니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공직 후보자의 박사학위 표절 문제가 거론되면 당사자가 스스로 사퇴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고 사회적 · 상식적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공직 후보자의 국회 인준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이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하며 국회 인준 시한을 넘겼습니다. 그런데도 임명권자인 대통령은 후보자를 교육 문제의 최정점인 ‘교육사회부총리’에 임명을 강행했습니다. 상식, 그래서 서로가 ‘좋아하는 수준’을 훨씬 넘긴 ‘부적절한 부총리’를 우리는 한동안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 같은 사례를 통해 필자는 우리 사회의 참으로 어두운 민낯을 보았습니다.

그런 예는 차고도 넘칩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의대생 몇이 함께 공부하던 동료 여학생을 성추행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성추행범들은 재판 결과에 따라 형기를 마치고 국내 의과대학 입학시험에 응시하여 ‘당당’하게 합격했습니다. 그때 해당 학교 담당자는 빗발치는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그 학생의 입학을 막을 법적 근거”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참으로 황당한 답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학생이 의과대학 졸업을 앞두고 나라가 주관하는 ’의사 자격 국가고시‘에 응시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그는 ‘당당’하게 합격할 가능성이 큽니다. 즉 의사 자격을 취득하고, 의사가 될 것입니다.

이번에도 그의 의사 자격 국가고시를 막을 법적 근거, 즉 ‘법적 규정’이 없다고 담당자는 먼 산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정말 답답할 노릇입니다.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윤리는 곧 사회 일원이 지켜야 할 규칙이며 규정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은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윤리는 법규보다 상위의 개념이기에 물어볼 필요조차도 없다는 뜻의 ‘불문율(不問律)’이 아닐까요? 윤리보다 법을 앞세우는 이 같은 분위기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필자가 반세기 전에 독일에서 의사 자격 국가시험에 응시하려고 했을 때의 일입니다. 담당자가 난생처음 들어보는 ‘신원증명서(Fuehrungszeugnis)’라는 서류를 제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가 알려준 대로 경찰청에 가서 ‘서류’를 받아와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즉 경찰청에서 필자가 형사법에 저촉된 바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확인서를 제출하고 나서야 비로소 필자는 의사고시에 응시할 수 있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얼마 전 독일 친구에게 아직도 의사고시 응시자가 신원 증명서를 제출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역시나 지금도 그 제도는 변한 것이 없다면서, 개원의가 진료 장소를 옮겨 새로 등록절차를 밟을 때도 다시 ‘신상 조사서’를 제출한다고 하기에, “왜 그렇게 까다로워…?” 하고 물으니 경찰청이 그 기회에 의사로서 마약 관련 범죄에 연루되어 있는지를 감시하는 기능이 있기에 불평할 사항이 아니라는 대답을 듣고 ‘머쓱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미국의 저명한 앵커 출신이 유엔 미국대사 후보가 되었는데 ‘취업허가 없는 보모 고용문제’가 알려지면서 자진해서 사퇴하였다는 외신((2019. 02. 18)을 접하면서 필자는 더욱더 안타까운 우리네 현실이 떠올랐습니다.

근래 각종 선거에서 너무도 다양한 범법행위로 인하여 민망하기만 한 여러 ‘후보자’들의 윤리의식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봐야 하는 우리 보통 사람들의 고통을 당사자들은 알고는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아울러 “무형의 윤리적 규범이 문서로 만들어진 법규나 규정보다 상위개념이라는 것”을 인지하여 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예부터 동양 문화권은 ‘공자 왈’, ‘맹자 왈’ 하며 유교적 윤리관이 정신세계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생활 문화에서 왜 우리네 윤리관이 서양 문화권과 비교하면 그 깊이와 폭이 크게 못 미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지 안타까운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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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낙 교수(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 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가천대 명예총장, 한국의약사평론가회 회장,
()현대미술관회 회장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등록일 : 2019-03-27 15:54    조회: 1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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