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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주인은 나다

바른사회운동연합 입법감시위원장 박종흡

박종흡 바른사회운동연합 입법감시위원장

  우리는 살아가면서 삶에 대하여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 중의 하나가 성공이 행복의 조건인가, 반대로 행복이 성공의 조건인가 하는 문제다.  성공을 하면 행복해지는 것일까 아니면 행복하다고 느끼면 그게 바로 성공한 것일까?

  내 나이 세대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부모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었던 말이 있다. 공부 잘하여 명문대학에 들어가고 졸업 후에는 고시를 합격하여 판검사나 관리가 되든지 아니면 의사와 같은 전문직이 되거나 그것도 아니면 대기업에 취직하라는 것이다. 혹여 이러한 꿈이 성사되면 부모는 친지나 이웃으로부터 ‘허, 그 집 아들놈 참 잘 되었어.’라고 칭찬을 들으면서 흐뭇해했었다.
  어렸을 때 동네 어른이나 학교 선생님들이 ‘너 커서 무엇이 될래?’ 라고 물으면 애들의 답은 가지각색이었다. 선생님이 된다는 아이도 있고 과학자가 된다는 아이도 있고 변호사가 된다는 아이도 흔히 볼 수 있었다. 간혹 대통령이 된다는 애도 있기도 했는데 그때는 하나도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 때에는 요새 애들처럼 가수나 개그맨이 되겠다느니 요리사가 되겠다 혹은 청소부가 되겠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애는 별로 없었다. 한 마디로 그 때는 삶의 주인은 자기가 아니라 부모이고 가정이었다. 오래 전 일이 생각난다. 고향 출신 한 분이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되었는데 그 취임 일성이 ‘가문의 영광입니다.’였다. 그런데 그 사람은 비리에 연관되어 일주일 만에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이러한 성공관은 X세대로 불리는 4-50대 까지도 이어졌다. 성공하려면, 아니 좀 세속적으로 표현하여 출세하려면, 내가 남들보다 무엇이 달라도 달라야 했었고 남들보다 달라지려면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이나 딸)가 되어야 했다. 평범함을 가지고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X세대로부터 태어난 신세대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사회의 변화가 행복이나 성공에 대한 관념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으로 보인다. 며칠 전 동아일보가 취업정보사이트인 ‘개치’와 공동조사한 설문조사(2019. 4. 1-3)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의 성공이 이웃, 지역사회, 공동체의 이익과 함께 이루어져야 하나?’라는 질문에 전국청년 452명 중 63.1%가 그렇다고 대답하고 있다. 혼자서 재미없게 사는 것보다 남과 어울려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의사표시다. 나 혼자 유아독존으로 사는 것보다 더불어 사는 인생이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스스로 인싸(인사이더:내부자)’라고 여기거나 인싸를 지향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는 61.3%가 그렇다고 대답하고 있다.  무리에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아싸(아웃사이더:외부자)’가 되기보다는 평범한 ‘무나니스트(평범함을 추구하는 사람)’가 더 좋다는 표시다. 한마디로 튀는 삶을 사는 것은 힘들다는 뜻이다.
  기성세대와 달라진 이러한 젊은이들의 성공법칙은 나이든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 우리 같은 기성세대들은 과거 가난했던 경험 때문에 재산, 명성, 지위 등에 성공이나 행복의 기준을  두었던 데 비하여 요즘 세대들은  ‘더불어 사는 공정사회’에 편입되는 것을 행복의 기준으로 더 선호하는 것이다. 기성세대 보다 무척 실용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더 이상 삶의 기준을 타인에게 맞추지 않겠다는 보이지 않는 깃발이다. 내 삶의 주인은 나이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며 살겠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이 점에 관하여는 요사이 참 재미있는 인식풀이가 등장하고 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사람들의 의식구조가 변화하고 있다. 나처럼 나이 든 사람들 즉 옛날 사람들은 ‘성공하면 행복하다.’ 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젊은 사람들은 ‘행복하면 성공이다.’ 라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인식의 변화다.
  요새 젊은이들의 성공관이나 행복관이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그 변화의 이유는  우리세대처럼 빈곤의 경험이 없고 의식주가 안정된 환경 속에서 자라난 영향이 클 것으로 본다. 아니면 고령화, 저성장의 시대적 흐름 속에서 높은 실업률을 눈으로 체험하면서 느끼는 젊은 친구들의 현실적 선택인 지도 모르겠다.
  행복이나 성공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기준이나 조건은 있기는 있는 것일까? 언뜻 생각하면 많을 성도 싶다. 돈, 권력, 지위, 직장이나 학벌, 자식, 배우자, 건강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과연 객관적인 기준이 될까? 곰곰이 머리를 굴려볼 일이다.
  인생이라는 미궁 속을 헤매면서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이 두 가지 명제, 행복과 성공의 관계는 우리의 머리를 혼미하게 만든다. 수학의 원리를 빌리자면, 행복과 성공이라는 두 요인은 서로 관련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함수관계에 있는 연관변수일까. 아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할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행복과 성공 중 어느 것이 영향변수이고 어느 것이 종속변수일까?
  내가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가 생각난다. 시험 때면 늘 겪던 일이 있다. 시험문제를 주관식으로 할까, 객관식으로 할까가 항상 고민거리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과목에 따라 절대평가와 상대평가가 미리 정해져 있어 더 고민이었다.
  이러한 지식의 평가에도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는데 하물며 객관적 기준도 없는 인간의 삶의 질이라고 할 수 있는 행복이나 성공을 평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생각해 본다.
  요사이 행복지수니 성공지수니 하는 것들을 개발하여 사람의 내면을 수리적으로 혹은 통계적으로 서열을 매겨 비교평가하고는 있다. 이것들 역시 불합리하기는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인간의 행복이나 성공은 누가 뭐래도 주관적이고 절대적인 평가밖에 있을 수 없다. 더구나 상대평가는 사람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 뿐이다. 나의 행복과 성공은 내가 느끼는 그대로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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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흡 이사(바른사회운동연합 입법감시위원장)
 
성균관대 행정학박사
국회입법차장(前)
공주대 객원교수(前)
現 수필가 시인


등록일 : 2019-06-10 13:48     조회: 1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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