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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개혁’하면 머리에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내가 35년 동안 기업변호사 및 금융인으로 일하면서 불필요한 규제를 풀어보려고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또는 기획재정부의 담당자를 수차례 만났다. 그들은 나와 또 다른 업계 관계자의 얘기를 듣고 나면 많은 경우에 공감한다고 말씀을 하신다. 더 나가서 바로 그런 ‘낡은 규제’와 ‘숨은 규제’를 혁파하라는 것이 대통령의 지시라는 것이다. 그러나 회의 끝 무렵에는 톤이 조금 달라진다. 본인은 그 규제를 꼭 풀고 싶지만 관련 법 조문을 개정해야 하는데 그 부분은 본인이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은 한번 문서화 되고 나면 고치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의미 있는 규제개혁을 하려면 포지티브 시스템(원천적으로 제한·열거한 경우 가능)에서 네거티브 시스템(원천적으로 가능·열거한 경우 제한)으로 대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에 토머스 프리드먼의 <늦어서 고마워: 가속의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낙관주의자의 안내서>를 읽었다. 저자는 어떤 조직이나 국가가 미래에 강자가 될 수 있느냐를 판단할 때 그 조직이나 국가가 개방된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폐쇄적인지를 보면 된다고 한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배제하지 않고 호기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시도해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의 포지티브 시스템 하에서는 점점 더 폐쇄적으로 되기 쉽다.
현재 우리 사회와 같이 극도로 신뢰가 떨어진 경우에는 진정한 대화 대신 ‘법대로 하자’라는 일방적인 발언이 흔하다. 이런 사회에서는 계속 법안이 늘어나게 되어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법령, 행정규칙이 20,000여 개를 넘었다. 평생 법전을 옆에 두고 생활하는 법조인도 어떤 법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미래다. 현재 국회에 쌓여있는 법안이 10,000여 건이다. 물론 이 모든 법안의 의도는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보겠다. 2013년 5월에 자본시장법 제190조(수익자총회)가 개정되었다. 목적은 소액 수익자(주주)의 권리를 강화하는 것이다. 개정 전에는 수익자(주주)총회에서 발행주식 총수의 1/5로 결의하고, 결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에는 연기 수익자(주주)총회를 개최하고 출석한 수익자(주주)의 의결권의 과반수로 결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정 후에는 연기 수익자(주주)총회에서도 발행주식 총수의 1/10이 있어야만 결의할 수 있게 요건이 강화되었다. 이 개정안 때문에 많은 수익증권 및 뮤추얼펀드는 감독이사 교체 및 다른 정상적인 안건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필요한 법은 있어야 하고 불필요한 법은 없어야 한다. 지금같이 A.I.를 비롯한 많은 분야의 변화가 가속되는 상황에서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법조문에 담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설적인 회사 하나가 있었다. 그 회사는 모든 업무 처리를 매뉴얼로 정리하고 싶었다. 어느 날 드디어 전사적인 노력의 결과로 매뉴얼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그다음 날 회사는 영업 부진으로 파산하고 말았다.
새 국회에 바란다. 새로운 법안의 내용을 검토하기 전에 그 내용과 비슷한 법이 없는지 확인하고, 있으면 왜 그 법이 지켜지지 않는데 새 법안은 지켜질 것으로 생각하는지 고민하기 바란다. 꼭 필요한 법이면 물론 통과시켜야 한다. 그러나 현행법의 유연한 해석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 새 법을 누더기처럼 붙이면 결국은 그 법은 입법하자마자 규제 완화 대상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민법 제1조에도 ‘민사에 관하여 법률에 규정이 없으면 관습법에 의하고 관습법이 없으면 조리에 의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규제개혁에 앞서서 절제된 입법이 우선이다.
필자소개
곽태선 위원(바른사회운동연합 입법감시위원)
1958년 서울 출생
Columbia College 졸업 (BA)
Harvard Law School 졸업 (JD)
Coudert Brothers 법무법인 변호사
Columbia College 졸업 (BA)
Harvard Law School 졸업 (JD)
Coudert Brothers 법무법인 변호사
베어링자산운용 대표이사
S&L Partners 외국선임변호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