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 의한 통치’로 법치 유린… 尹, 검찰·사법 독립으로 ‘법의 지배’ 회복해야
‘법에 의한 통치’로 법치 유린… 尹, 검찰·사법 독립으로 ‘법의 지배’ 회복해야
(2022.03.24. 문화일보 게재)
■ 김종민의 Deep Read - 새 정부와 개혁 ④ 법치의 회복
법치는 권력분립과 함께 자유민주주의 구성 요소… ‘법이 통치자를 통제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전제
‘적법절차’에 따른 권력행사, 투명한 검찰 인사, 공수처 우월적 지위 폐지… 재판 공정성 확보위한 개혁도 시급
문재인 정권 5년이 보여준 국정의 총체적 난맥상은 심각하게 훼손된 법치주의를 빼고 말할 수 없다. 통치자가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아닌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를 신봉할 때 법치는 훼손된다.
윤석열 차기 정부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는 손상된 법치주의의 회복이다. 새 정부는 ‘적법절차(due process of law)’를 기본정신으로 진정한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일궈내 법치를 정상화해야 할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법치, 법의 지배, 적법절차
법치주의는 권력분립주의와 함께 자유민주주의의 구성요소로 인정된다. 법치주의는 헌법과 법률에 의한 국가권력의 제한을 의미하며 법의 구속, 권력분립, 권력통제, 권리의 사법적 보장, 법치행정의 원칙 등을 요소로 한다.
법치주의는 ‘법의 지배’의 다른 말이다. ‘법의 지배’는 곧 ‘우리의 법은 정당하다. 그것은 통치자에 앞서며 그의 행동을 적시에 통제할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한다. ‘법의 지배’는 그런 점에서 통치자가 법 밖에서 혹은 법 위에서 법을 이용해 통치하는 ‘법에 의한 지배’와 다르다. ‘통치자=주권자’가 아니라 ‘법=주권자’이며, 통치자는 법에 따라 정당하게 권력을 확보한 상태에서만 정당성을 갖는 것, 이게 법치다.
법의 지배는 ‘적법절차’를 생명으로 한다. 미국 연방헌법 수정 제14조에서 유래한 ‘적법절차’는 대한민국 헌법 제12조 제3항에도 명문화해 있다. 적법절차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의 보장을 위해 절차의 공정성이 중요하다는 역사적 경험을 담고 있다. 영장제도, 미란다원칙, 불법적으로 수집한 증거의 사용 배제 등이 여기서 나왔다.
통치자가 ‘법에 의한 지배’에 중독될 때 ‘통치에 의한 법치 유린’ 사태가 나타난다.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공작 의혹’ 등은 문 정권에서 자행된 대표적인 법치 파괴 사례다. 법치의 훼손은 대개 검찰과 사법부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제대로 확보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검찰의 독립과 중립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전 제시한 사법개혁 공약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역시 검찰의 독립성·정치적 중립성 강화다. 투명한 검찰 인사, 법무부 장관의 구체적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 폐지, 검찰총장에 독자적 예산 편성권 부여가 핵심이다.
새 정부는 무엇보다 검찰에 대한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의 인사권을 객관화하고 투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검사인사위원회의 실질화 또는 독립기구인 국가검찰위원회의 설립 등을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민정수석실 폐지는 의미 있는 조치이지만, 범정부적 반부패정책이나 형사정책 추진에 있어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왔던 긍정적 역할을 대신할 보완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은 추미애 전 장관의 무차별적 지휘권 발동 사례에서 나타난 것처럼, 정치권력이 수사에 개입해 수사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도구가 됐다는 우려가 있다. 제한된 범위에서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인정하던 프랑스도 2013년 이를 전면 폐지한 만큼, 한국에서도 이와 관련한 공론화를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검찰총장의 독자적 예산 편성권 부여는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검찰총장이 예결산과 관련해 국회에 출석해야 한다는 문제가 검토돼야 한다.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국회 질의가 빗발칠 것이 예상되고 이로 인한 수사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미칠 영향을 간과하면 안 되므로 신중하게 처리돼야 한다.
◇공수처 우월적 지위 폐지
문재인 정권의 검찰개혁을 상징한다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경우 문제점이 한둘이 아니다. 공수처 출범 자체에 대한 위헌 논란이 있었고, 당시 여당은 ‘야당의 공수처장 추천 비토권’을 배제한 법 개정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지난 1년간의 성과가 보여주듯 공수처 폐지는 불가피해졌다.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에도 불구하고 위헌 소지가 큰 데다 고위공직자 부패 수사라는 당초 설립 목적과 달리 정치적 사찰수사기구로 변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가 수사체계의 대혼란을 가져왔고 상설특검 등과 혼재돼 이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우선 공수처의 우월적·독점적 지위를 규정한 공수처법 제24조를 폐지해야 한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지난 1년간 일선 수사현장에서 나타난 혼란과 난맥상은 심각한 지경이다. 수사권 조정의 취지를 살리되 국민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막힌 하수구를 뚫는’ 책임수사체제 확립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문 정권이 야심 차게 추진했던 법무부 탈검찰화는 ‘법무부의 민변화’로 변질했다. 법무부는 정부업무평가에서 2018년부터 2021년까지 4년 연속 최하위 C등급을 받아 전면 개혁이 불가피하다. 외부 전문가를 적절히 충원하되 정책기획 분야 검사의 전문화와 인사정책을 통해 법무부를 정상화하는 것이 바람직한 해법이다.
◇사법개혁의 과제
사법부 독립은 입헌민주주의 법치국가의 초석이며 시민적 법치국가의 중요한 조직적 징표다.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사법부 독립은 빨간 불이 켜졌고 정의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와 법관의 권위는 심각하게 훼손됐다.
새 정부는 사법부의 진정한 독립, 재판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개혁에 힘을 쏟아야 한다. 첫 출발은 인사다. 대법원장 후보 인사추천위원회 설치 방안 외에 법관 인사의 공정성과 객관성 확보를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 헌법상 독립기구인 ‘최고사법평의회’가 법관 인사를 관장하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사례를 참고해 법관 인사위원회를 독립기구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사건의 신속 처리와 법관 업무부담 경감을 위한 대책도 시급하다. 지난 1월 사법정책연구원은 법관 680∼980명의 증원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와 더불어 형사재판의 신속·간이 절차 확대, ‘협상 사법절차’ 도입 등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급증하는 금융경제범죄 전담 재판부 설치 등 전문화의 강화도 시급한 과제다. 중앙과 지방에 설치된 행정심판기관을 통합한 행정심판원 설치는 국민의 권리 구제와 전문성 제고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이 경우 행정심판과 반부패 업무를 담당하는 국민권익위원회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독립적 반부패기구 설립과 관련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 세줄 요약
법치, 법의 지배, 적법절차 : 통치자가 ‘법의 지배’ 아닌 ‘법에 의한 지배’를 신봉할 때 법치는 유린당함. 법치는 권력행위의 적법절차를 요구하며, ‘법이 통치자를 적시에 통제할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성립.
검찰의 독립과 중립 : 검찰개혁의 핵심은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 확보. 이를 위해 검찰에 대한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의 인사권을 투명하게 해야 함. 숱한 문제가 드러난 공수처의 우월적·독점적 지위는 폐지돼야 함.
사법개혁의 과제 : 사법부의 독립은 시민적 법치국가의 중요한 조직적 징표임. 윤석열 정부는 사법부의 독립, 재판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개혁에 힘 쏟아야. 첫 출발은 법관 인사의 공정성과 객관성 확보를 위한 조치.
■ 용어 설명
민주주의에서 ‘법의 지배’란 국민과 마찬가지로 통치자 역시 법에 복속하고 통제되는 민주적 통치를 의미. ‘법에 의한 지배’는 통치자가 법을 앞세워 법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는 문민독재를 뜻함.
미국 ‘수정헌법 제14조’는 ‘적법절차 없이 개인의 생명, 자유 또는 재산을 빼앗아서는 안 되며, 개인에 대한 법의 동등한 보호를 거부하지 못한다’고 명시. 적법절차의 마그나카르타로 불림.
김종민 *변호사 *바른사회운동연합 공동대표 | 2022-03-24 | 조회 8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