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로그인 바로가기
문서 자료실 바로가기

바른소리쓴소리

바른소리쓴소리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 열심히 일한만큼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사회,
우리가 추구하는 “바른사회”입니다.

[이건영의도시산책] 자동차가 도시를 지배한다

이건영 *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 미국 노스웨스턴대 도시공학 박사 * 前 국토개발연구원 원장/ 건설부차관

[이건영의도시산책] 자동차가 도시를 지배한다

 

(2022.10.17_세계일보게재)

 

 

 

 

 교통난은 도시의 숙명이다. 선진국이건 후진국이건, 도시 구조가 어떻게 되었건 정도의 차이일 뿐, 오늘날의 대도시는 모두 교통 혼잡에 시달린다. 교통 전쟁 또는 교통 지옥이다. 하루 중 얼마나 많은 시간을 우리는 숨 막히는 초만원 지하철 속에서 또는 느릿느릿 기어가는 자동차 행렬을 따라가며 길에서 보내는가? 블랙핑크나 BTS의 노래를 들으며 짜증을 달래지만 지치게 마련이다.

 

 경제 사정이 살 만해지고 도시가 커질수록 출퇴근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통근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이렇게 우리의 바쁜 하루가 시작되고, 해가 저물면 또 전쟁을 치른다. 현대 도시의 일상이다.

 

 자동차가 이제 도시를 지배하고 있다. 도시 사람들은 자동차를 저주하면서도 자동차에 대한 사랑은 커지기만 했다. 승용차는 가장 흥미를 끄는 어른들의 기호품이 되었다. 모터쇼만큼 관객들이 몰리는 쇼도 없다. 승용차만큼 경품으로 인기 있는 상품이 없다. 사람들은 점점 더 큰 차, 고급차를 선호한다. 자동차 과소비로 가계 부담도 점점 늘어난다. 도시는 자동차에 맞게 덩치를 키우고, 도로도 자동차 달리기 편하도록 설계된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 교수는 이를 도시인의 ‘자동차병’이라고 규정하였다. 마셜 매클루언은 ‘미디어의 이해’에서 “자동차는 도시 생활의 옷과 같은 것이 되었다. 젊은이들은 커서 선거권을 얻는 것보다 운전면허 따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적고 있다.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인 우리나라, 자동차 보유대수는 2500만대. 이 중 318만대가 서울에 있고, 이들은 매일 평균 33㎞를 주행한다. 러시아워 때면 차량이 홍수를 이루는데 내비게이션을 켠들 무슨 묘수가 있나? 도로만 몸살을 앓는다.

 

 차가 막혀서 길에 버리는 기름과 시간이 얼마나 될까? 도시의 열섬 현상, 미세먼지, 간간 철따라 나타나는 스모그는 주범이 자동차 매연이다. 교통 체증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을 교통연구원에서 계산한 바, 연간 67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3.6%(2021년 기준)에 이른다고 한다. 실로 어마어마한 손실이 도로에서 새고 있다.

 

 서울 도심지의 자동차 주행 속도는 하루 평균 시속 16.7㎞에 불과하다. 해마다 주행 속도는 떨어지고, 교통 체증은 심해지고 있다. 자동차 수요가 늘어나고 도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1966년 자료를 보면 서울의 도로율은 고작 7.3%에 불과하였다. 서울은 원래 골목길 도시였다. 서양의 많은 도시들이 자동차가 등장하기 이전 역마차 시대를 거쳤다. 역마차가 달리려면 우선 길이 넓어야 하고 고르게 포장되어야 했다. 미국 수도 워싱턴을 설계한 피에르 랑팡은 넓은 가로가 신생국의 위엄을 과시한다고 보았다. 유럽의 도시들도 자동차 시대를 맞을 때까지 ‘미국식을 따라’ 또는 역마차 주행을 위해 지속적으로 도로를 넓혀왔다.

 

 여기에 비하면 서울에는 달구지는 있어도 역마차는 없었다. 고종 때 외국 상인이 역마차를 들여와 사업을 하려다가 길이 너무 좁아 고종에게 헌납하고 물러났다는 일화가 있다.

 

 지금은 달라졌다. 자동차 시대에 맞게 좁은 길을 넓히고 터널을 뚫고 한강에 수많은 다리를 놓았다. 시내 도로율이 23%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도쿄와 비슷한 수준이다.


 도로를 넓힌다고 교통 체증이 사라질까? 어떤 전문가는 뉴욕 맨해튼의 교통 체증을 연구한 결과 맨해튼을 전부 도로로 하여야 한다는 아이로니컬한 결과를 도출하였다. 뉴욕의 도로율은 35%에 이른다. ‘오토피아’(autopia)로 알려진 로스앤젤레스(LA)는 시가지 면적의 반 이상을 자동차 용도(도로, 주차장 등)로 쓰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자동차 속에서 보내고 통근에 소비하고 있다. 도로를 넓히거나 새 길을 만들면 그때뿐,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정체된다.

 

 그렇다면 반대로 자동차를 몰아내면 어떨까? 싱가포르는 자동차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아예 자동차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틀어막는 것이다. 자동차를 사려면 차량취득 권리증이 필요하다. 유효기간이 10년인 이 권리증은 보통 1억원에 거래된다. 시내에 차량은 65만대 정도로 제한된다. 그런데도 도로가 혼잡하여 도심 곳곳 차량이 밀리는 곳에서 혹독한 혼잡통행료를 물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남산터널에서 혼잡통행료를 부과하고 있지만 교통 혼잡에 효과가 있다는 증거는 없다. 싱가포르도 교통 체증을 줄이기는 했지만 마땅한 해법이 아니다.

 

 미국의 도시계획가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자동차를 ‘도시의 적(敵)’이라고 하였다. 오늘날 자동차의 편리함과 기동성은 도시 생활의 활력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 편안함은 매혹적이고 낭비적이고 파괴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시내 교통 체증은 필요악이다. 만약 교통 체증이 없다면 모든 시민이 자동차에 중독되고, 도시는 낭비적인 도시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자동차를 몰고 갈 때의 짜증지수와 대중교통에 시달릴 때의 고통지수를 비교하여 행동한다. 따라서 교통 혼잡과 이에 따른 사회 비용을 줄이는 길은 대중교통의 서비스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도시에서 자동차를 다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물론 도로 신설이나 확장이 필요한 구간을 개선하고, 도로 시스템도 좀 더 교통 흐름이 원활하도록 개선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자동차 중심의 교통 시스템을 사람 중심으로 바꾸고, 자동차 과소비 문화를 절제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등록일 : 2022-10-18 13:57     조회: 473
Copyright ⓒ 바른사회운동연합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