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일부 경찰 썩었다… 권한에 맞는 책임 묻겠다” 인식 확고
(2022.11.08_문화일보게재)
■ 허민의 정치카페 - 이태원 참사와 경찰 미스터리
이태원 참사 때 관할 서장을 포함한 일부 경찰 간부들은 “죽을 것 같다. 살려달라” “경찰력을 증원해 달라”는 사고 현장과 일선 경찰의 목소리를 외면했고 윗선 보고를 지연했다. 경찰청장 등 수뇌부는 속수무책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경찰 112상황실에 쏟아졌던 참사 직전의 위급 상황 신고 내역 전격 공개를 지시하면서 진상 규명을 위한 수사의 물꼬가 터졌다. 윤 대통령은 7일 회의에서 “엄정한 책임을 묻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령실과 여권은 ‘정치적 책임론’ 등으로 두루뭉술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지금은 ‘구체적 책임’을 밝히는 게 더 시급한 과제라는 것이다.
◇경찰의 미스터리 행태
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 A 씨는 “이태원 참사는 정무적·도의적 책임 운운하며 두루뭉술 넘어갈 일이 아니다. 경찰 대응의 문제가 드러난 만큼 구체적으로 누가, 어느 대목에서, 어떻게 잘못했는지 철저히 수사해 권한에 맞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밤 참사 4시간 전부터 서울경찰청 112상황실에는 신고가 쏟아졌다. 이태원 치안 책임자였던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은 당일 대통령실 부근 집회·시위가 오후 8시 30분쯤 끝난 후 적어도 9시부터는 시간도, 유휴 경찰병력도 있었다. 이 전 서장이 최초 보고를 받은 오후 9시 30분부터 참사가 발생하기 시작한 오후 10시 15분까지 45분이면 서장이 상황을 판단하고 경찰력을 보내 핼러윈 인파를 통제·유도·안내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이게 첫 번째 미스터리다.
두 번째 미스터리는 서장의 이동 경로와 행태다. 그는 첫 보고를 받고 1시간 35분 만인 오후 11시 5분에야 현장 부근에 도착했다. 도보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차 안에서 1시간이나 허비했고, 뒷짐 진 채 천천히 걸어 다녔다. 이태원파출소 옥상에서 젊은 생명이 멸(滅)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 과정에서 직속상관인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보고는 해태했다.
서울경찰청 112상황실 책임자였던 류미진 총경의 처신도 미스터리다. 분초를 다투는 상황실이 아닌 어딘가에 있다가 참사 1시간 24분이 지나서야 첫 보고를 받았다. 이 때문에 112시스템을 매개로 한 보고·전달체계는 ‘먹통’이 됐다. 제때 상황을 상부에 보고하고 조치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치안 총책임자인 윤희근 경찰청장은 보고를 받지 못한 채 당일 오후 11시쯤 잠이 들었다. 대통령실 A 씨는 “일부 경찰이 썩었다”고 말했다.
◇‘오판’이냐 ‘회피’냐
일부 경찰 간부들의 참사 당일 미스터리 행태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오판’, 둘은 ‘적극적 조치의 회피’. 고검장 출신 B 변호사는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첫째라면 과실치사상, 둘째라면 살인방조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 전 서장은 경찰대 9기로 전남 함평 출신이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총리실 공직복무관실에 파견 근무를 했다. 경찰 고위간부 출신 C 씨는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 이낙연 초대 총리 시절 이 전 서장은 ‘이 총리와 가까운 사이’라며 친분을 과시하고 다녔다”고 말했다. 이 전 서장은 2018년 초 총경으로 승진했는데, 동기에 비해 2년가량 빨랐다고 한다. 이후 전남 구례서장을 지내다 대선 한 달여 전인 지난 2월 경찰 보직 중 요직으로 통하는 용산서장으로 발령받아 문 정부에 ‘빚’을 많이 진 상황이었다.
국민의힘 중진 D 의원은 “일부 경찰 간부들이 윤석열 정부 들어 이상할 정도로 집단적인 직무 태만 상태에 빠졌다”고 말했다. 온라인상에서는 더 흉흉한 말도 나돈다. 지난 7월 총경들에 의한 ‘제복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 제대로 처벌하지 않은 후과(後果)가 이번 참사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권에서는 ‘일부 경찰이 정치화됐다’는 인식이 형성된 지 오래다. ‘직업=소명’인데 ‘정치경찰’은 소명의식은 없고, 줄 타고 파벌 짓고 배지 다는 것에만 혈안이 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관기 경찰직장협의회장의 행태도 눈길을 끈다. 그는 지난 7월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 과정에서 삭발농성을 했던 인물이다. 그가 지난 2일 윤 경찰청장과 면담한 후 ‘윤 청장이 곧 사퇴한다’는 글이 SNS상에 퍼졌다. 민 회장은 자신이 작성한 글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그가 언론 플레이를 했다는 말이 돌았다.
◇尹 “책임 있는 사람에게 책임을”
참사 수사가 본격화한 것은 누구보다 먼저 참사 상황을 파악한 윤 대통령의 체질화한 감각 때문이었다. 윤 대통령은 참사 46분 만에 보고를 받았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보다 19분, 김광호 서울경찰청장보다 35분, 치안 총수인 윤희근 경찰청장보다 73분 빨랐다.
윤 대통령이 참사 전 압사 위기에 몰린 시민들의 112신고 녹취록을 공개하게 한 것은 수사 본격화의 ‘트리거’가 됐다. 당초 경찰 수뇌부는 녹취록 공개를 놓고 전전긍긍했지만, 관련 보고를 받은 윤 대통령이 “한 점 의혹이 없도록 공개해 철저히 진상을 밝히라”고 지시하면서 수사가 급진전했다. 이상민 장관에게 시민의 절박했던 호소가 담긴 112신고 녹취록이 사전 보고됐더라면 “경찰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라는 경솔한 말로 비난을 자초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무엇보다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지배하고 있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있어 한 치의 허술함도, 인정의 이끌림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그런 맥락에서 7일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져라, 그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다… 책임 있는 사람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A 씨는 “‘구조적 원인’도 찾아야겠지만 ‘구체적 책임’도 가려야 한다”고 했다.
다만 윤 대통령은 경찰 수뇌부나 이 장관의 사퇴 문제는 수사 진행 과정을 지켜보면서 시기를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 상설특검 발동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소모적인 검경 갈등이나 정치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재난의 정치화’
한국 정치에서 ‘재난의 정치화’는 반복된다. 일부 정치권은 재난을 대할 때 타인의 아픔을 치유하는 지혜로 삼는 게 아니라 타인을 찌르는 무기로 삼는다. 윤 대통령의 112 녹취록 공개 지시와 몇 차례에 걸친 사과, 특별수사본부의 본격적인 수사 착수에도 불구하고 “국민을 내팽개친 1분 1초까지 밝히겠다”면서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야권의 태도가 그렇다.
■ 용어설명
‘미필적 고의’는 특정 행동의 결과가 반드시 발생하는 건 아니지만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하면서 ‘그 결과가 발생해도 상관없다’는 심리로 행동하는 것. 고의범과 과실범을 나누는 기준.
'제복의 반란'은 7월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을 둘러싼 현직 경찰들의 집단 반발. 당시 총경을 중심으로 경찰국 신설이 경찰 독립성을 해칠 것이라며 피케팅 등을 동반한 철회 투쟁을 벌임.
■ 세줄 요약
경찰의 미스터리 행태 : 대통령실, 참사 관련 “권한에 맞는 책임 밝히는 게 급선무” 입장. 관할 경찰서와 112상황실 책임자들의 대응 미비, 민원 무시, 보고 해태 등 미스터리 행태 난무. 대통령실 “일부 경찰 썩었다.”
‘오판’이냐 ‘회피’냐 : 일부 경찰 간부들의 미스터리 행태는 ‘오판’과 ‘회피’ 둘 중 하나. 법조계 “첫째라면 과실치사상, 둘째라면 살인방조 내지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 될 수도” 지적. 경찰의 정치화 문제도 커.
尹 “책임 있는 사람에게 책임을” : 尹 “한 점 의혹 없게 철저히 진상 밝히라” 지시 후 경찰이 112 녹취록을 공개한 게 수사 본격화의 ‘트리거’로. 정치권이 재난을 타인을 찌르는 무기로 삼는 ‘재난의 정치화’는 사라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