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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민주주의의 시행착오는 계속되고 있는가?

김충남(대통령학 전문가)

왜 민주주의의 시행착오는 계속되고 있는가?
김충남(대통령학 전문가)
 
 
도덕적 데카당스가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
 
한국인의 특성을 냄비기질로 불리기도 한다.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식는다는 뜻이다. 최순실 사건이 사태로 확대되고 그것이 커져서 행정부가 무력화되고 국가적으로 총체적 난국에 빠지면서 대다수 국민이 분노와 좌절과 허탈감에 빠져 생업조차 손에 안 잡힐 지경이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이런 사건이 터지면 손가락질은 몇 사람에게로 집중된다. 그들만 없어지면 된다는 식이다. 이 같은 패턴은 계속 되풀이되어 왔다. 선진국 진입을 앞둔 나라에 결코 어울리지 않은 현상이다.
 
이 같이 된 데에는 언론이 크게 기여했다. 냉철해야 할 언론까지 이성을 잃고 확인되지 않은 내용, 심지어 사생활까지 뒤집으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선동적인 보도 경쟁을 하는 가운데 불확실한 보도내용을 기정사실화하며 대통령이 당장 물러나야 한다고 압박한다. 당연히 물러나야 하는데 대통령이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기자는 대통령의 지시사항에 대해 몰염치하다고 썼고 어떤 신문사설은 대통령을 향해 뻔뻔한 자가당착의 궤변”, “배째라식 도박”, “이런 꼼수”, “부끄러워하고 석고대죄해야 한다라고 썼으며, 한 신문의 논설위원은 대통령을 향해 고개를 뻣뻣이 들고 할 테면 해보라는 적반하장으로 나오고 있으니 후안무치도 이런 후안무치가 없다고 했다. 어떤 칼럼니스트는 대통령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해야 한다고도 했다. 종편방송을 포함한 방송은 이보다 훨씬 심하다. 언론재판이 아니고 무엇인가? 정부만 공정해야 되고 언론은 공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가? 언론을 제4의 권력이라 하는데 언론은 권력을 남용해도 된다는 것인가? 언론의 품위를 어디에도 찾아보기 어렵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사태는 대권경쟁과 맞물리면서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들을 연일 대통령 비난에 경쟁적으로 열을 올린다. 어떤 야당 중진은 대통령을 향해 요구를 받아들이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고 했다. 결국 언론재판이 정치재판인민재판이 되면서 온 사회가 패닉상태다. 대중이 흥분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어찌 광화문 광장에 100만이 나오지 않겠는가? 역사적으로 많은 철학자들은 민주주의가 중우(衆愚)정치로 전락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한국이 그렇게 되고 있는 것은 아니가? 대통령이 물러나고 관련된 몇 사람만 처벌받으면 그 후의 대한민국은 번듯한 민주공화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인가?
 
한 사회의 성숙도는 큰 사건이나 위기가 닥쳤을 때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선진민주국가에서는 사건이나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대응한다. 서구 정신문화의 핵심인 철학을 보면 과학으로부터 철학과 사회과학이 발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합리주의가 기본이다. 법치주의도 바로 합리적인 문제처리 방식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감정이 앞서고 그것이 집단행동이 되어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다. 대통령에게 문제가 있다면 헌법절차에 따라 처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만 혁명적 방법으로 대통령을 강제 퇴진시키려 한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조차도 사회를 안정시키고 국민에게 안도감을 주는 지도자다운 면모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게 해서 대통령이 물러나면 앞으로 대통령을 강제 퇴진시키려는 시도가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고 한국 민주주의는 광장 민주주의로 전락되고 말 것이다.
 
대통령을 단순한 개인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권위가 무너지고 신뢰를 잃으면 국정은 표류된다. 물론 근원적으로 박 대통령의 실책이 크지만 흥분한 상태에서 결판을 낼 일이 결코 아니다. 헌법 철차와 사법절차에 따라 해결되어야 할 문제다. 미국 민주주의가 안정된 것은 대통령직의 권위를 보존하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해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닉슨 사임 후 포드 대통령은 주변의 격렬한 반대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직의 권위와 신뢰를 보존하기 위해 닉슨에 대해 완전한 사면을 결정했다. 그 공로로 포드는 훗날 존 F. 케네디재단으로부터 <용기있는 지도자상>을 받았다. 물론 우리 대통령들이 과오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재직 중이나 퇴임 후에 수난을 당하여 대통령직 자체가 만신창이 되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더라도 대통령 역할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우리는 왜 이 같은 사태를 맞아 차분하게 문제의 본질을 올바로 인식하고 교훈을 바탕으로 근본적인 개선대책을 강구하지 못하는가? 경희대 패스트라이쉬 교수는 이번 사태의 원인은 특정 인물이나 정책보다는 정치문화의 문제라고 진단하고 있다. 그는 한국의 정치문화로 인해 이런 일이 일어났으며 앞으로도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그는 한국이 당면한 가장 큰 위협은 문화적 데카당스(decadence, 퇴락)’ 의 확산이라 했다. 한국사람 대부분은 음식, , 성적 쾌락, 스포츠 같은 오감만족에 여념이 없으며 공동체를 위한 가치는 사라지고 따라서 나라의 미래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고 했다. 텔레비전에 무절제하게 꾸역꾸역 음식을 먹는 장면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서양인들의 눈에 비친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외형만 민주주의 아닌가?
 
알아야 면장도 한다는 말이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의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어떻게 대통령직을 수행해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고 대통령이 된 것 같다. 김영삼 대통령은 퇴임 후 나는 중학생 시절부터 대통령이 되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대통령에 대해 알려고 노력했지만 막상 대통령이 되고 나서 대통령의 역할에 대해 5분의1도 몰랐던 것 같다. 나라가 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하고 나서 대통령이 되려고 한 것이 오류였던 것 같다고 후회했고,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박근혜 대통령은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되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민주화 이후 30년이 가까워 오지만 그 동안 모든 대통령에게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일어났고, 그 때마다 우리사회는 감정이 앞서서 대통령만 비난했고 근본적인 문제 진단과 처방이 없었기 때문에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아마추어가 갑자기 큰 회사의 사장이 된다면 회사를 제대로 이끌어 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회사보다 몇 십 배 더 어렵고 복잡한 정부를 이끌어가는 대통령의 자리에 아마추어가 앉는다면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
 
미국의 대통령학 전문가 리처드 뉴스타트는 대통령직은 아마추어가 앉을 자리가 아니다라고 했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거나 대통령이 된 사람은 대통령의 역할을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 과거 대통령들의 경험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전직 대통령들은 비난만 했지 그들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청산과 차별화에 바빴다. 고졸 학력에 불과하지만 10명의 위대한 미국 대통령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트루먼은 대통령이 전임자들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배운다면 그의 대통령직은 훨씬 쉬워질 것이다. 모든 실책의 원인은 무지에서 비롯된다. 대통령은 무엇보다도 미국역사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고 했다. 1970년대 영국 총리를 지낸 헤롤드 윌슨은 지도자가 성공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사의식이라 했다. 우리 정치인들은 대체로 역사의식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의 자리가 매우 위험한 자리라는 것을 몰랐던 것 같다.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자리로 인식한 것 같다. 까딱하면 비참한 구렁텅이로 빠질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이라고 해고 법 앞에 예외가 될 수 없다. 더구나 대통령은 수많은 사람들의 주목과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기 때문에 조그마한 잘못도 결코 그대로 넘어갈 수 없다. 그처럼 대통령의 자리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자리다.
 
트루먼은 대통령의 자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대통령이 된 후 호랑이 등에 탄 것 같아서 계속 달려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것 같았다.” 미국 남북전쟁 직전 대통령이었던 제임스 뷰캐넌의 고문 에드윈 스탠턴은 뷰캐넌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지금 화산 위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당신이 누워있는 곳과 그 주변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어 언제 폭발할지 모릅니다.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머지않아 종말을 고하고 말 것입니다.” 존슨 대통령은 대통령의 자리는 감옥살이보다 더 어려운 자리라고 했다.
 
왕조시대에도 권력의 위험에 대한 경고는 그치지 않았다. 명나라 태조 주원장(朱元璋)은 이같은 경고를 남겼다. “천하의 일을 생각하니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천하를 다스리는 일은 마치 실타래를 만지는 것과 같다. 실오라기 하나라도 잘못 얽히면 민중의 분란이 일어난다. 두려워하지 않으면 작폐가 일어나고 백성들에게 재앙이 닥친다.”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잘 모르더라도 그의 전문 보좌관들은 잘 알아야 하고 또한 대통령의 실책을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44명 중 변호사 출신이 26명이나 되지만 거의 모든 대통령들은 법률고문을 두었다. 미국의 대통령학 전문가들이 경고하듯이 대통령 보좌관들은 대통령이 위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막아야 한다.
 
청와대에는 법조인 출신이 비서실장으로 있었고 민정비서실에는 수석비서관과 비서관이 모두 법조인 출신이었는데 그 동안 무얼 했는가? 아마도 법률은 잘 알았지만 민주국가의 대통령실의 권한과 한계를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것은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검찰 조사에 의하면 대통령이 법을 위반했다는데 그 동안 청와대 율사들은 무엇을 했다는 것인가? 사건에 연루된 대통령 보좌관 출신들은 하나 같이 대통령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지시면 헌법과 법률, 민주적 절차에 어긋나더라도 맹목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인가? 근본적으로 민주국가의 대통령실 운영의 기본조차 모르는, 대통령을 보좌할 자격이 결여된 사람들이다. 선진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받고 교수까지 지냈지만 민주국가 운영의 ABC와 대통령의 권한과 한계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던 것이다. 왜냐 하면, 그는 그 같은 것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필자가 미국에 체류할 당시 아들이 미국 고등학교 1학년(우리의 중학교 3학년에 해당)에 다녔는데 민주시민과목(Civics) 수업에서 대통령의 책임과 역할, 참모진의 역할 등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었다. 예를 들면, 쿠바 미사일 위기에 관한 책들을 읽고 대통령 참모로서 대통령에게 건의할 방안들을 검토하여 가장 좋은 방안을 제시하라는 숙제를 제출한 후 교실에서 그 문제를 토론하였고, 그 다음 숙제는 폴란드에서 바웬사의 집권으로 소련의 무력 개입 가능성이 높은데 대통령 참모로서 건의할 방안을 검토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치학과 대학원에서도 없는 수업이 미국 고등학교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고등학교 교육목표는 성숙한 민주시민을 육성하는 것이지만 과연 우리 고등학교는 어떤가?
 
불분명한 공사(公私) 구분과 경직된 직장문화
 
박근혜 대통령이 왜 그렇게 행동했으며 그것이 왜 제도적 장치에 의해 방지되지 못했는가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이다. 필자는 공사(公私) 구분을 분명히 하지 못했다는 것과 비민주적인 직장문화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최순실은 박근혜 대통령의 의형제라는 말이 있지만 두 사람은 몇 십 년 간 가까운 관계였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그 같은 개인적인 관계를 유지했고,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에서는 대통령의 사적인 부분으로 판단하고 묵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한국의 직장문화는 전반적으로 비민주적이며, 청와대는 물론 군대,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일수록 그것이 심한 편이다. 지시를 받으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매우 경직된 풍토다. 보다 근본적으로 한국문화는 비민주적인 요소가 많다. 말하는 것부터 높임말을 쓰고 예절 면에서도 전통적인 요소가 많이 남아 있다. 가정, 학교, 직장, 사회에서 비민주적인 생활이 체질화되어 있는데 청와대에 들어가서 민주적으로 행동하기를 기대할 수 없고 더구나 청와대의 경직된 직장문화에서는 더 더욱 비민주적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 백악관에서는 대통령과 참모진들이 친구처럼 서로 퍼스트 네임(first name)을 부르며 스스럼없이 의견을 주고받는다. 그것은 그들이 몇 십 년 동안 살아오면서 익숙한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또한 직위에 관계없이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1970년대 필자가 미국 대학원 시절의 수업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점심시간이었는데 네모난 탁자 주변에 둘러앉았는데 한 쪽에 앉은 교수는 탁자에 발을 올리고 세미나를 주도하고 학생들은 너도 나도 탁자에 발을 올려놓고 우유와 감자튀김을 먹으며 자유분방하게 의견을 말하고 있었다. 한국 같으면 그런 학생은 쫒겨 났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면, 민주적인 문화에서는 높임말도 없고 상급자에 대한 까다로운 행동규범도 없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하는 것이 생활 속에 체질화되어 있는 것이다.
 
원로 헌법학자가 방송대담에서 헌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되풀이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헌법이 무엇인지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수많은 법률에 대해 모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헌법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규정했을 뿐 그 정신이 교육되고 홍보되고 우리의 모든 생활 속에서 체질화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껍질만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더구나 민주적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민주시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되는 것이라며 민주시민교육과 훈련을 체계적으로 시키는데 우리는 이를 등한시해왔던 것이 아닌가?
 
민주주의는 법치주의라고 하지만 우리는 민주주의도 법치주의도 전혀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헌법과 법률은 사법기관과 법조계의 관심사항일 뿐이다. 보통사람들은 법을 위반했을 때 법과 마주친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해 제대로 교육받고 훈련 받지 않았으며, 가정, 학교, 직장, 지역사회에서 민주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았다. 그랬던 사람이 대통령과 대통령 참모진이 되고 각종 선출직이 되었을 때 과연 민주적으로 행동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민주국가에서는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고 각종 선출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치인들은 제왕적 대통령을 없애야 한다며 내각제 또는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주장한다. 민주주의 기본 인프라가 안 되고 있고 그래서 정치풍토가 비민주적인데 헌법만 바꾸면 해결될 수 있을까? 아무리 어렵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민주주의의 기본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지름길이라 확신한다.
 
등록일 : 2016-11-30 13:05     조회: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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