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법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제언!
대한민국의 법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제언!
1. 서(序): 법치란 무엇인가?
• 민주주의와 더불어 헌법국가의 양대 축인 법치주의
현대 헌법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기본원리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라는 점은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해방 이후 지난 70여년 동안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온 것과는 달리 법치주의에 대한 관심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 왜 민주주의와는 달리 법치주의에 대해서는 유보적, 소극적인가?
그 원인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여전히 통용될 정도로 법에 대한 불신은 크며, 법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법치보다 덕치를 앞세웠던 유교의 영향, 법이 강자의 도구로 전락했던 일제강점기와 독재시절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 법치 없는 공정과 정의가 가능한가?
그러나 법치 없는 민주주의, 법치 없는 공정과 정의는 실현될 수 없다. 서구의 선진 민주국가에서 민주와 법치를 동등하게 평가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법치 없는 민주주의는 포퓰리즘에 빠지고, 결국 공정과 정의를 깨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갈등, 진영갈등, 빈부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법치를 무시하고 ‘다수의 지배’를 앞세울 경우에는 다수의 독재에 의해 민주주의가 몰락할 위험도 매우 크다.
2. 문재인 정부 5년, 법치의 성적표는?
• 검찰개혁, 사법개혁과 함께 시작해서 적폐청실으로 끌고 나갔던 문재인정부
문재인 정부는 임기 초반부터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에 힘을 실었고, 이를 적폐청산으로 이어나가면서 대한민국의 튼튼하지 못했던 법치를 뿌리째 흔들었다. 양승태 사법부를 비판했지만, 김명수 사법부는 더욱 정권에 굴종했고, 검찰개혁을 통해 탄생된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다가 최근에는 언론사찰로 인해 존폐 논란까지 벌어지고 있다.
• 거대 여당의 입법폭주에 의한 법치의 약화
대한민국의 법치를 더욱 약화시킨 것은 180석 거대 여당의 입법폭주라 할 수 있다. 다수의 힘을 앞세워 공수처법 개정안을 비롯하여 대북전단금지법, 5.18비판금지법, 중대재해법 등이 충분한 논의 및 국민적 합의 없이 여당에 의해 일방적으로 통과되면서 법에 대한 불신이 증폭되었고, 법치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을 더욱 고조시켰다.
•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특히 부동산정책에서 나타나는 법치의 혼란
또한,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한편으로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이념적 소신을 앞세워 실패를 반복하였고, 특히 부동산정책의 경우 시장을 무시한 결과 정책의 실패를 수십 차례 반복하면서 최악의 부동산 가격폭등을 통해 많은 국민들이 좌절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도 내용적으로 정당하지 못한 법률의 제정 및 개정 등으로 법에 대한 불신을 더욱 키웠다는 점이다.
3. 법치를 바로 세우려면...
• 법치의 기본적 전제는 삼권의 실질적 분립이다.
법치의 본질은 법의 객관성과 공정성의 확보에 있으며, 이를 위한 첫 단추가 삼권분립이다. 즉, 법의 제정-집행-판단을 각기 다른 주체들이 담당하도록 함으로써 어느 기관도 법치의 틀 안에서 법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법치의 가장 중요한 기본 전제인 것이다.
• 입법이 입법다우려면
입법의 핵심은 민주성과 책임성이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한편으로는 국민들의 다양한 의사를 수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수렴된 국민의 의사들을 조율⋅조정함으로써 통일된 국가의사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는 입법부인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선거제도와 정당제도라 할 것이다.
→ 법치의 재정립을 위해 –적어도 중요정책에서는- 다수의 일방적인 결정이 아닌 충분한 여야 토론과 국민적 공감대에 기초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 또한, 국민의 의사가 의석수에 제대로 반영되는 선거제도의 개혁은 해묵은 과제이지만, 이를 위한 개혁 시도는 이른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해 왜곡되었다.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 오늘날 선거의 실질적 주체가 정당이라는 점은 널리 인정되고 있다. 문제는 정당이 국민들의 정치불신 내지 정치혐오로 인해 국민 속에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당의 개혁은 민주주의 실현의 중요한 조건임과 동시에 법치 실현의 중요한 전제이기도 하다.
• 법치행정이 제대로 되기 위하여
집행의 핵심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법집행작용의 효율성이다. 이는 행정편의주의와 구별되는 인권보장의 효율성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정부 부처들을 위한 효율성이 아니라 국민에게 봉사하는 효율성이며, 이를 행정편의주의와 엄격하게 구분하기 위해 법치행정의 원칙이 특별히 강조될 필요가 있다.
→ 이를 위해 한편으로는 주먹구구식 행정이 아닌 행정의 전문화가 필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 부처 간의 손발을 제대로 맞추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와대 정부가 종식되고, 내각이 실질적인 행정의 중심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 사법부가 공정한 재판을 통해 법치의 최후 보루가 되려면
사법의 본질은 공정한 재판이다. 이를 위한 필수적인 전제가 사법부의 독립성 및 중립성이다. 예컨대 대통령에 종속된 사법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은 사법부에서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근 뚜렷해지고 있는 사법부의 대통령에 대한 종속은 근본적으로 개혁되어야 하며, 진정한 사법부의 독립 하에서만 사법부가 인권보장 및 법치 수호의 실질적인 최후 보루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사법부의 실질적인 독립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를 위해서는 사법행정회의 등에 의한 외부적 간섭보다는 일단 대통령의 인사권부터 축소 내지 삭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4. 인치가 아닌 법치, 사람보다 제도가 우선이다!
• 법치의 시작과 끝은 집권자의 자의를 배제하는 것이다.
법치(法治)는 인치(人治)의 대립개념이다. 즉, 사람의 지배가 아닌 법의 지배를 지향하는 것이며, 보다 정확하게는 권력자의 자의(恣意)에 의한 지배를 배제하려는 것이다. 민주국가에서 국민에 의해 선출된 국민의 대표자가 집권자가 되지만, 국민의 대표자도 권력을 오⋅남용할 수 있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 충분히 검증되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권력을 오⋅남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법치의 시작이자 끝이다.
• 국민과의 소통은 반대자, 비판자와의 소통이 핵심이다
최근의 대통령들에 대해 소통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지 않은 대통령이 없으나, 결국 지지층과의 소통에만 신경썼을 뿐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국민과의 소통은 반대자, 비판자와의 소통이며, 이를 뒷받침하여 소수의 반대자라 하더라도 억울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 법치 역할이다.
• 법치를 통해 근본가치를 다수의 오류로부터 지켜내는 것이 포퓰리즘 방지의 최선책이다
법치는 다수의 횡포로부터 소수자의 인권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또한, 법치는 인류 역사를 통해 검증된 근본가치들, 예컨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 및 이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핵심적 요소들, 예컨대 국민주권, 대의제, 복수정당제, 권력분립, 사법부의 독립 등이 어떤 경우에도 침해되지 않도록 한다. 이를 통해 포퓰리즘이 다수의 목소리를 앞세워 근본가치를 침해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5. 결(結): 민주와 법치의 두 바퀴가 인권보장의 헌법국가를 이끌어간다
• 민주 없는 법치는 강자의 도구가 되기 쉽고, 법치 없는 민주는 맹목이 된다.
민주와 법치는 헌법국가를 이끌어가는 두 개의 바퀴와도 같다. 어느 한쪽으로 헌법국가가 제대로 발전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민주주의가 결여 내지 약화된 상태의 법치라면 국민의 의사와 이익이 법 속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여 강자의 도구로 전락하기 쉽다. 반대로 법치 없는 민주주의는 시시각각 바뀌는 여론 내지 다수의 변덕에 따라 옳고 그름이 혼돈에 빠지게 될 우려가 매우 크다.
• 민주와 법치의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살려야 한다.
법치를 강화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려는 것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양자는 상호 보완적이다. 민주와 법치가 함께 발전할 때, 양자의 시너지 효과가 크게 나타날 수 있으며, 민주와 법치가 튼튼하게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 2022-01-28 | 조회 13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