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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부자 나라’를 꿈꾸며(이성낙 자문위원)

바른사회운동연합

프랑스 작가 장레옹 제롬(Jean-Leon Gerome, 1824~1904)의 작품 도록을 보던 중 이집트의 거대 석조 조형물인 스핑크스(Sphinx) 앞에서 말을 타고 있는 나폴레옹(Bonaparte Napoleon, 1769~1821)의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사진 1)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그림 속 나폴레옹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이룩한 초인간적 문화예술품에 경의를 표하는 모습이 아니라 ‘저 큰 돌덩이를 어떻게 하면 프랑스로 가져갈 수 있을까’ 하는 깊은 고민에 빠진 듯했습니다. 실제로 그가 이집트에서 가져온 ‘전리품(戰利品)’들이 오늘날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수장 목록을 더욱 화려하게 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전리품 박물관’은 영국이나 독일의 박물관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해 1900년대 초부터는 아주 다른 양상의 ‘미술품 수집’이 펼쳐집니다. 현대미술에 상대적으로 일찍 눈을 뜬 몇몇 재력가들이 미술 시장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은질산소독용액(Silver nitrate antiseptic solution)’을 개발해 부자가 된 미국인 의사 반즈(Albert C. Barnes, 1872~1951)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1923년 파리에서 발행하는 <몽파르나스(Montparnasse)>가  “반즈가 파리에 나타났다”며 근황을 보도할 만큼 미술계의 유명인사였습니다(Ki ki’s Paris-Artists and lovers 1900-1930, Abrams, 1989). 심지어 이 무렵 피카소(Pablo Picasso)는 “이제 우리는 빵을 다시 사 먹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니, 생활고에 허덕이던 미술가들에게 그는 단비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미술계의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반즈는 미술품을 수집하고, 저 유명한 필라델피아 반즈 재단(Barnes Foundation Philadelphia)을 세웁니다.
 
한편, 반즈보다 앞서 한 러시아 부호의 현대미술품 수집 이야기가 근래 파리 루이뷔통 재단(Fondation Louis Vuitton) 미술관에서 전시한 ‘현대미술의 아이콘-시추킨 컬렉션(Icons of Modern Art-The Shchukin Collection)’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제정러시아 시절 세르게이 시추킨(Sergei Shchukin, 1854~1936)이라는 한 부호가 파리로 여행을 왔다가 현대미술에 눈을 뜨면서 첫 미술품을 구입합니다(1899). 그는 유명한 화상(畵商)이나 당대에 손꼽히는 미술평론가의 도움을 받아가며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마음껏’ 사들였습니다. 그중에는 모네(Claude Monet), 고갱(Paul Gauguin), 마티스(Henri Matisse), 피카소 등의 작품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시추킨은 제정러시아가 몰락하는 1918년까지 18년간 무려 350여 점을 수집합니다.
 
그런데 파리는 물론 세계 미술계조차 시추킨과 그의 소장품에 대해  신기하리만큼 거의 몰랐습니다. 추측하건대 시추킨이 당시 소리 소문 없이 작품을 수집하고는 ‘조용히’ 모국으로 돌아간 데다 러시아 혁명이라는 엄청난 격변을 겪으며 1921년 파리에 정착한 그가 매우 조용한 삶을 살았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아울러 새롭게 등장한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의 이념이 현대미술에 담긴 정신을 받아들이지 않아 그의 수집품이 창고에서 긴 동면(冬眠)에 들어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던 중 1991년대 新러시아시대가 열리면서, 창고에 있던 시추킨의 수집품들이 기지개를 켜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작품은 에르미타주 미술관(상트페테르부르크), 푸시킨 미술관(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모스크바)에 분산 보관 및 전시됩니다. 그나마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공간적 여건이 ‘시추킨’을 만나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했듯 이번에 파리 루이뷔통 재단 미술관에서 자리를 마련해 시추킨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현대미술사의 한 꼭지가 밝혀진 것입니다. ‘저런 작품이 있었네…’ 하는 감탄과 놀라움 속에서 기획 전시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또 다른 예로 일본의 부호 오하라 마코사부로(大原孫三郞, 1880~1943)를 들 수 있습니다. 일본 산업화의 선봉에 섰던 오하라는 1920년대 서양 현대미술에 눈을 떠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930년 구라시키(倉敷)에 최초의 사립 서양 미술관(오하라 컬렉션)을 세우고, 많은 일화를 간직한 마쓰카타 고지로(松方幸次郞:1865~1950) 컬렉션을 주축으로 설립한 우에노(上野) 국립서양미술관으로 일본을 ‘미술 부자 나라’의 반열에 오르게 만듭니다.
 
그렇습니다. 문화예술품을 다른 나라로부터 국가의 힘으로 ‘약탈’하던 ‘나폴레옹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재력 있는 부자들이 문화예술품을 사들여야 하는 시점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부자들이 미술품을 사들이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합니다. 그간 고가 미술품 소장을 놓고 생긴 잡음 때문이긴 하지만, 우리 사회의 정서가 문화예술 강국으로 나아가는 데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어서 빨리 우리도 오늘의 ‘미술 빈국’에서 탈피해 ‘미술 부자 나라’를 후손에게 남겨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합니다.
 
 
[출처 : 자유칼럼그룹 2017.04.04.]
등록일 : 2017-04-06 14:07     조회: 1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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