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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 열심히 일한만큼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사회,
우리가 추구하는 “바른사회”입니다.

청탁 문화에 대한 소고 ( 小考 )

정진태 바른사회운동연합 회원

정진태 바른사회운동연합 회원

청탁 ( 請託 )의 사전적 의미는 청 ( 請 )하여 부탁한다는 의미입니다.
 
청탁은 인간사에서 빈부, 학식의 유무, 권력의 유무, 남녀 성별과 관계없이 떼어 놓을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더불어 사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청탁이 세상을 탁 ( 濁 ) 하게만 하지 않고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러면 세상을 청 ( 淸 )하게 하고 탁 ( 濁 ) 하지 않은 청탁 ( 請託 )이 있을까요? 금방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청탁이란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청탁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수 조건인 나라가 어디 있을까요?
우리 바른 사회 운동 연합이 출범과 동시에 첫 번째 중점 사업으로 추진한 반부패 법치주의 운동인 청탁 금지법 소위 “ 김영란법 “이 2015년 법제화( 法制化 )가 되어 그나마 공직 사회가 많이 맑아졌으나 아직도 많은 분야에서 청탁의 폐해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금융 감독기관 고위 공직자 및 전 현직 국회의원이 그들의 친인척을 금융기관 및 공기업에 부정 청탁을 통해 깜도 안 되는 실력으로 취업을 시켜 수백 명의 젊은이들을 분노케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이들에게 정의로운 사회는 보여주지 못하고 부끄러운 민낯을 보여주다니 잔인하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이처럼 법은 있는데 아직도 청탁의 폐해가 이곳 저곳에서 나타나고 있으니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김영란법도 원래 취지는 부정 청탁을 방지하기 위해 접대 문화를 바꿔보자는 취지로 선물은 주지도 받지도 말고 식사는 각자 지급 ( Dutch Pay )을 원칙으로하여 부정 청탁이 개입할 환경을 없애자는 데에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데 법의 근본 취지는 어디 가고 시작부터 농 수 축산업 및 영세 식당에 피해를 준다는 등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불가피한 경우를 상정해 정한 상한액을 올리자고 숫자만 가지고 논쟁을 벌였습니다. 주객이 전도되고 꼬리가 몸통을 흔든 꼴이 되었습니다. 실행도 해 보기 전에 어찌하면 굴레를 벗어날까 궁리들만 한 것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중국인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상유정책 하유대책 ( 上有政策 下有對策 ) 이란 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위에서는 정책을 수립하고 아래에서는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대책을 세운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실제 현장에서 쓰이는 의미는 위에서 정책을 세우면 아래에서는 그것을 빠져나갈 대책을 세운다는 뜻으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중앙 정부에서 정책을 수립하면 지방 정부에서는 그 정책을 빠져나갈 대책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중국 개방화 초기 지방 정부 고위 관료를 만나면 으례 자랑스레 그 이야기들을 대 놓고 하니 배짱도 보통이 아니며 중국답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김영란법을 생각할 때마다 중국의 상유정책 ( 上有 政策 ) 하유대책 ( 下有對策 )이라는 말과 그 옛날 저에게 그 말을 가르쳐준 중국 어느 지방 공무원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우리의 청탁 문화는 역사도 매우 깊고 우리 곁에 익숙히 다가와 있어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청탁이란 단어와 친인척 (?) 관계인 와이로 ( 蛙利鷺 ) 라는 단어를 아실 겁니다. 알고 보니 요놈이 800년 넘는 역사와 전통을 가진 순 ( 純 ) 우리 것이라네요. 과히 무형 문화재로 등록해도 손색이 없는 귀한 (?) 존재입니다.
 
의미는 뇌물 ( 賂物 )의 다른 이름으로 흔히 쓰이는 말로서 “개구리가 백로를 이롭게 하다.” 라는 의미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유래 ( 由來 )를 알아보니 재미있어 아시겠지만, 다시 적어 보겠습니다.
 
고려 시대 이규보 선생의 유아무와 ( 唯我無蛙 ) 인생지한 ( 人生之恨 ) 즉 “ 나만 개구리가 없으니, 인생이 한탄스럽구나 ”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랍니다. 잠깐 설명을 하자면,
 
고려 의종 때 임금이 홀로 야행 ( 夜行 )을 나갔습니다. 산 중에서 민가를 만나 들어가 보니 이규보의 집이었답니다. 이규보는 집에 들른 행인이 임금인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과거를 3번이나 보았으나 급제하지 못하고 시골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집에 유아무와 인생지한 ( 唯我無蛙 人生之恨 )  이란 글이 있어 임금이 물으니
 
“ 옛날에 꾀꼬리와 까마귀가 노래 시합을 했습니다. 백로가 심판을 보기로 했답니다. 그런데 시합 전날 밤 까마귀가 백로가 좋아하는 개구리를 잡아 뇌물로 주었습니다. 시합에서 당연히 까마귀가 이겼습니다.”

설명이 끝나자 임금은 조용히 민가를 떠났습니다. 얼마 후 과거 시험이 있었는데 시제 ( 試題 ) 가 유아무와 인생지한 이었습니다. 물론 이규보가 장원급제를 하였습니다. 여기서 와이로 라는 말이 생겼고 지금까지 뇌물의 뜻으로 전해져 오고 있답니다.
 
돌이켜 보면 수백 년 동안 청탁, 와이로로 인해 득 ( 得 )을 본 사람, 반대로 억울함을 당한 사람이 부지기수 ( 不知 其數 )일 것입니다. 분명 저도 예외 없이 득과 실을 경험한 한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기억에도 명절 때 고향 가는 기차표 한 장 구하기 위해 철도 역에 근무하는 사람을 찾아 부탁하여 차표 한 장 얻은 사람을 만인 ( 萬人 )이 부러워하던 시절이 있었으며, 집 장만을 하려고 은행에 대출을 받으려 하면 연줄 연줄을 찾아 부탁하여 돈을 빌리고 고맙다고 중간에 부탁해준 사람과 은행 대출 담당자에게 소위 코미션이라는 명목으로 일정 비율을 떼어내 사례( 謝禮 )를 해야 돌아가던 세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민원을 처리하려면 “ 급행료 ”라는 것도 있었고요.
 
이런 현실 속에서 자연히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틈은 점점 더 벌어지게 되었으며 이것이 오늘날 금수저 흙수저를 갈라놓은 시발점 ( 始發點 )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데 청탁은 묘한 것이 끼리끼리 뭉쳐서 자기들 세계를 교묘히 구축한 집단들이 모인 곳에서 일어납니다. 최근 한국 보건 사회 연구원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국 사회의 의사 결정이 외부 압력이나 빽에 의해 결정된다는 의견이 3.99점 ( 최고 5점 ), 특정 집단의 이익에 따라서 좌우된다는 3.8점으로 매우 높게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대다수 국민 의식 속에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의사 결정은 불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흔히 우리가 마당발이라는 말을 주위에서 쉽게 듣습니다. 마당발이란 사람들과의 사귐이 많고 폭넓은 사람을 일컫는데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는 주로 청탁 세계의 우두머리로 등장합니다. 우리는 서로 초면 ( 初面 )에 인사를 나눌 때 “ 고향이 어디냐?” “ 어느 학교를 나왔냐 ? “ 묻는 것이 일상화 되어있습니다. 서로 청탁의 세계에서 같이 놀 수 있는지를 탐색하는 첫 번째 통과 의례입니다. 그리고 고향과 출신 학교를 알고 나면 다음 단계로 “ 누구 아느냐?, 누구 아느냐?” 하며 마치 개미가 더듬이를 이용해 먹이를 찾듯 더듬어 가며 서로의 서열과 신분 확인 절차를 밟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보다 많은 인맥을 구축한 사람이 마당발로 등극을 하는 것 입니다.  요즘 저는 학교 동창도 얼굴은 기억이 나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대한민국 인명사전 한 권을 머릿속에 넣고 다니는 마당발의 그 재주가 부러울 따름입니다.
 
청탁 문화 사회에서는 무슨 문제가 생기면 우선 법에 따른 절차를 알아보고 그 절차에 따라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고 우선 사람부터 찾아 나서는 것을 흔히 봅니다. 이는 법치 주의 (法治 主義) 사회가 아니고 인치 (人治)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인치 ( 人治 )에 지배되는 사회는 사람에 의해 결과가 달라지니 예측 불가능한 사회가 되어 모두가 불안하기 마련입니다.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 청탁에 의해 문제를 해결하고 득을 본 소수 얌체족을 제외하곤 말입니다.
 
청탁은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규모가 커져 범죄로 변합니다. 청탁을 주고 받았으니 당연히 거기에 대한 보은 ( 報恩 )이 따르기 마련이며, 서로 주고 받고, 횟수는 점점 늘어나니 규모가 커져 왕성한 번식력을 가집니다. 따라서 한국의 청탁 비리는 대부분 고구마 줄기 형입니다. 그리고 나만 했냐하며 배짱 형이 대부분입니다. 고구마 줄기 형으로 캐도 캐도 끝이 없으며, 나만 했냐 배짱 형이니 누구는 잡고 누구는 놔줄 수도 없어 진퇴양난이니 적당한 선에서 끊고 맙니다. 뿌리가 완전히 뽑히지 않으니 시간이 지나면 다시 살아나는 환생 재발 형이 또 하나의 특징입니다.
 
그럼 청탁이 만능인 사회에서 혜택을 보는 집단은 누구일까요? 의심할 바 없이 가진 자, 배운 자, 권력 자들입니다. 기득권 층이요 사회 지도층이란 말입니다.
 
기득권 층들은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에서 지도자로서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든 주역들입니다. 그런데 왜 젊은 세대들은 그들을 존경하기는 커녕 경원 시 하고 비난하는 것일까요?
 
삼포 ( 三抛 ) 세대를 만든 주범이라서 ?  금 수저 흙 수저로 나뉜 불공정한 사회를 만든 죄인이라서? …… 젊은 세대에게는 오늘날 자기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나쁜 세대로 인식될까 걱정됩니다. 이대로 간다면 노 ( 老 ) 소 ( 少 ) 간,  부자 ( 父子 ) 간,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영원히 대화의 자리가 닫혀 버리지않을까 우려됩니다.
 
이 간극을 좁히는 방법으로 공정 사회를 만들고 청탁 문화를 근절시키는 시민운동을 제안해 봅니다.
 
아시겠지만 영국에서는 크리켓이라는 경기가 축구와 더불어 국가 대표 스포츠로 유명합니다. 야구와 유사한 경기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경기입니다. 그런데 영국에서 “ It’s not cricket .” 라고 하면 공정하지 못하다 즉 “ It’s not fair. “ 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시민이 공공 기관 민원 창구에서 일을 보다 공정치 못하다 생각하면 “ It’s not cricket. “ 하고 항의합니다. 그러면 모든 창구 직원들이 바짝 긴장하며 즉시 책임자가 달려와 불만을 제기한 고객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정부는 모든 시민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할 의무가 있는데 공정하지 못한 일이 있다니 정부가 직무 유기를 한 셈으로 당연히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포츠를 통해 정정당당함과 공정성을 배우고 그를 통해 사회 정의를 지켜 나가는 나라 정말 부러운 선진국입니다. 모든 일은 공정하게 처리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묵묵히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영국 시민들, 공정치 못하면 “It’s not cricket.” 라는 말 한마디로 경종을 울리는 사회…………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 약 400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꽤 많은 숫자입니다. 하지만 이 속에는 민간 부문이 빠져 있어 ( 사립 학교 교원 및 언론인 등 일부는 포함되어 있지만 ) 내 일이 아닌 남의 일 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민간 부문에서는 시민 운동을 통해 문화를 바꿔 보면 어떨까요? 
이왕 시작한 운동이니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 모두 힘을 합쳐 차제에 청탁의 문화를 바꿔 보자는 겁니다.
 
위에 언급한 대로 우리 사회 지도자이며 부정 청탁 세계의 주인공(?)인 소수를 위해 노블레스 오블리주 ( Noblesse Oblige )의 뜻을 살려 “당신은 지도자 이십니다.” 라는 구호를 외쳐보면 어떨까 제안해 봅니다.
 
“ 당신은 이 나라의 지도자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존경합니다. ” ( Noblesse ) “ 대신 당신은 공정해야 하며, 부정한 청탁을 하지 말아 주십시오. ” 하는 책임( Oblige )을 시민 사회의 이름으로 부여 해 보자는 것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부문의 지도자급 인사가 부당한 청탁이나 지시를 하면 정중하게 “선생님은 이 나라의 지도자이십니다.” 라는 말 한마디로 경종 ( 警鐘 )을 울리고 부끄럽게 만드는 시민운동을 벌리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영국에서의 “ It’s not cricket.” 라는 말 한 마디처럼 말입니다. 부정 청탁에 대해 공공 부문에는 ‘김영란법’ 민간 부문에는 ‘지도자 외침 운동’으로 힘을 합쳐 청탁 문화를 바꾸어 봅시다.
 
우리가 살아온 이 땅은 앞으로 우리 자식들이 살아갈 땅입니다. 우리는 얼마 안 있으면 떠날 사람들이니 자식들 불편하지 않게 우리가 헝클어트린 땅 청소라도 하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냐고요? 우리는 이 나라의 지도자였었으니까요 ………….
 
“ 갔다 와서 하시겠다고요? ”
“ 인생은 왕복 차표를 발행하지 않습니다. 일단 출발하면 다시 돌아올 수 없습니다. ”
 
불란서 노벨상 수상 작가 로맹 롤랑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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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태 (바른사회운동연합 회원)
 
() 독일 ZF Lemfoeder GmbH 한국 사장
() 현대자동차그룹 중국 지주회사 총경리
저서: 금지(禁止)된 고백(告白)
등록일 : 2018-07-17 13:33     조회: 1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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