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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해까닥’하나, 걱정스럽다

근래 우리 사회 여기저기서 봇물 터지듯 나오는 ‘적폐 몰이’ 현상을 지켜보아야 하는 한 사람으로 혼란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결코, 필자 하나만의 마음고생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위로보다는 그 참담함이 더 합니다.

얼마 전 우리 사회의 어른 한 분과 환담하는 자리에서 ‘해까닥’이란 표현을 들었습니다. 필자는 어른께 물었습니다. “명예회장님께서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큰 조직을 관리하셨는데, CEO급 중 실망을 안겨준 사람도 있었겠지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인사 대상이 되어 올라오는 사람은 대부분 조직 안에서 오랫동안 성장해왔기 때문에 그리 큰 변수가 안 됩니다”라며 하신 후 “그래도 가끔은 실망스러운 예도 있지요”라고 이어가셨습니다.
필자는 그처럼 실망스러운 사람으로 ‘변질’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어른은 “‘해까닥’하는 결과죠. ‘높은 자리’에 오르면 한층 더 주변을 살피며 조직원을 챙겨야 하는데, 결국 어느 시점에서 ‘해까닥’하는 경우이죠. 다른 말로 하면, ‘그릇’이 못 된다는 뜻입니다”

순우리말인 '해까닥'은 갑자기 얼이 빠지거나 정신이 나간 모양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작금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일고 있는 크고 작은 다양한 ‘해까닥 현상’이 하나같이 자리에 걸맞지 않은 인물의 ‘그릇’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양이 다르지 않고, 서양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스쳐 갔습니다.

‘적폐 운운’, ‘친일파 운운’, ‘파묘(破墓) 운운’하는 소음이 들릴 때마다 가슴에 냉기가 몰려옵니다. 조선 시대 귀인의 영정을 철거하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작가의 ‘친일논란’을 이유로) 안익태(安益泰, 1906~1965) 선생이 작곡한 우리 애국가를 폐기하자는 주장도 들려옵니다. 선생이 1942년 베를린교향악단의 지휘자로 일본 제국주의의 ‘만주국 건국10주년’을 위해 작곡하고, 지휘했다는 이유로 말일입니다.

조금은 다른 음악 이야기이지만, 일본의 국가 기미가요 <군주(君主)의 치세 君が代>는 독일인 프란츠 에케르트(Franz Eckert, 1852~1916)가 작곡하여 1880년 11월 일왕 메이지의 생일잔치 때 처음 연주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일본인이 작곡한 것을 프란츠 에케르트가 편곡하였다고 하지만, 당시 ‘일본 실력’이 그에 미치지 못하였을 것이 필자의 생각입니다.
여기서 일본국가인 ‘기미가요’가 아직도 ‘파묘’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註: 프란츠 에케르트는 1901년 조선 땅을 밟은 첫 서양 음악가로, 1902년 ‘대한제국애국가(大韓帝國愛國歌)를 작곡함. 이성낙, 대한제국 군악대와 동티모르 군악대 사이, 자유칼럼, 2016.01.18.).

그런가 하면, 중국 국가인 ‘의용군행진곡’은 원래 국민당 국민혁명군 200사단의 사단가였다고 합니다. 국공내전 후 승리한 공산당이 국가로 지정하였고, 대만은 금지곡으로 지정했습니다. 문화혁명 때 작사가 텐한 (田汉, 1898~1968)이 반당 분자로 낙인찍혀 한동안 가사 없이 연주되다가 1982년 그가 복권되면서 다시 불리게 된 이야기도 전해옵니다. <송원찬 교수의 중국어와 중국문화, 문화일보. 2017.5.15.>

다른 문화권은 어떠할까 생각하여 봅니다. 한 예로 독일 사회는 반유대인 정서와 ’혹독‘하리만큼 거리를 둡니다. 몇 해 전 2016년에 94세 노인을 ‘아우슈비츠’ 수용소 경비원을 지냈다고, 법정에 세웠습니다. 그가 ‘나치 친위대원(SS)’으로 수용소 경비 근무하면서 유대인학살범죄를 방조하였다고, 법정은 고령인 그를 5년의 실형을 내렸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친숙한 거장 빌헬름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angler, 1886~1954)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1908~1989)은 나치 통치하에서 베를린교향악단을 지휘한 경력의 음악인입니다. 히틀러가 동지들과 함께 베를린교향악단을 찾아간 것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두 음악인은 전후에도 ‘나치 전범자’로 부끄러운 ‘손가락질’을 받지 않았습니다.

다른 예가 있습니다. 2019년 봄 화가 에밀 놀데(Emil Nolde, 1867~1956)가 나치 당원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독일 총리실 벽을 장식했던 그의 그림 한 점만 내려놓았을 뿐 다른 ‘아우성’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무렵 필자는 ‘에밀놀데기념관’을 궁금한 마음을 안고 찾아갔습니다. 정치 바람을 맞은 분위기에서 에밀 놀데의 작품이 어떤 영향을 받았을지 살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기념관은 예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붐볐습니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그리고 에밀 놀데. 모두 ‘나치 시대의 상흔(傷痕)’을 가진 인물입니다. 하지만 독일인은 그 누구도 이들 예술가의 생에 흠집을 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근자에 독일 사회를 놀라게 한 사건이 터졌습니다. 독일 중부 지역에 있는 인구 1000명도 안 되는 소도시 헤륵스하임암베르크(Herxheim am Berg)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곳의 신교계 교회당 종신(鐘身)에 ‘ALLES FURS VATERLAND/ADOLF HITLER (모든 것을 조국에 바친다/아돌프 히틀러)’라는 문구와 함께 ‘하켄크로이츠(Hakenkreuz)’가 선명히 새겨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하켄크로이츠는 다름 아닌 나치의 기장(卍)입니다.


 작지만 1000년의 역사의 흔적을 자랑하는 작은 교회가 소유한 그 종은 히틀러 시대인 1934년 제작한 것으로 일명 ‘경찰종 (Polizei Glocke)’이라고 부릅니다. 전쟁 때 적군의 비행기가 출현하면 종을 쳐서 시민들에게 알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종이긴 하여도 히틀러의 ‘흔적’이 남아 있으니 껄끄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지역 교구에서는 비용을 부담할 터이니 그 종을 철거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 주민들의 주장은 달랐습니다. “전쟁이라는 어려운 시기에 경보 기능을 잘해서 많은 주민의 생명을 구했으니 의리상 버릴 수 없다”라는 것이 주민들의 생각이었습니다. 분쟁은 그 지방의 고등행정법원 (Oberverwaltungsgericht)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법원의 판결은 “그대로 존치해도 좋다”였습니다.

작금 우리 사회는 ‘친일 작가 논란’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서 특정 곡을 작곡하고 지휘했다는 이유로, 선전(鮮展)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떨리는 음성으로 당선 소감을 피력했다는 이유로 ‘친일 작가’로 몰아붙이는 풍토는 어리둥절하게 합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새로운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른바 ‘적폐 몰이’, ‘친일파 몰이’, ‘파묘 몰이’를 지혜롭게 풀어야 우리 사회가, 세계가 찬탄하는 문화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어쩌면 지금은 ‘대한민국의 그릇을 키우는’ 과도기에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다른 문화권에서 지금의 우리 사회를 ‘해까닥’한 사회로 보지는 아니할까 심히 걱정되는 요즘입니다.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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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낙 교수(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 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가천대 명예총장, 한국의약사평론가회 회장,
()현대미술관회 회장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등록일 : 2020-09-08 09:31 | 조회: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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