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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運)도 실력이라고?

필자 : 舒川 박종흡 (성균관대 행정학박사 / 국회입법차장(前) / 공주대 객원교수(前) / 現 수필가 시인)

()도 실력이라고?



필자 : 舒川 박종흡

(성균관대 행정학박사 / 국회입법차장() / 공주대 객원교수() / 現 수필가 시인)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이사 온지도 26년이 되었다.  우리 아파트 상가에는 음식점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중국집이고 다른 하나는 한식집이다. 이들 음식점의 공통점은 두 집 모두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 점이다. 특히 14년 전 집사람이 세상을 뜬 후부터는 맨 날 집에서 밥해 먹기가 지겨워 쩍하면 중국집에 배달을 주문하거나 한식집에 내려가 한 끼를 때우기가 일쑤여서 그간 가족같이 정이 많이 쌓여왔다.


 

  내가 그동안 눈여겨 보아왔던 건, 두 집 내외의 부지런하고 친절한 모습도 그렇지만 이것보다 이 두 집 자식들의 커가는 모습이었다. 중국집에는 아들이 하나 있고 한식집에는 딸이 하나 있다. 내가 오랜 전 중국집 아들을 보았을 땐 초등학교 3,4학년 정도 되었을 것 같다. 어쩌다 중국집에 들르면 부모가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는 와중에 식당 한 구석의 식탁에 앉아 혼자 숙제를 하고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띠었다. 당시 중학생으로 보이는 한식집 딸은 학교에서 오자마자 책가방을 창고에 넣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머니를 돕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그로부터 기간이 많이 흘렀다. 몇 년 전 어느 날 점심을 먹으러 한식집에 들렀다. 늦은 오후여서인지 식당엔 나 외에 사람이 없었다. 그 집 아버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주방 앞 식탁에 머리를 박고 괴로운 듯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라고 근심스럽게 어머니에게 물었다. ‘괜찮아요. 매일 새벽 가락시장에 가서 장 봐 오느라 피곤해서 그래요.’

  잠시 후 후리후리 하고 참하게 보이는 아가씨가 쟁반에 주문한 음식을 담아 와 내 앞에 놓는다. 처음 보는 아가씬데 여기서 일하나 봐요?  아니에요, 저는 이 집 딸이에요.’ , 그 딸이 벌써 이렇게 컸다고? ‘.’

  나는 세월 빠르다는 건 알겠지만 조그마하던 이 집 딸이 이렇게 커서 부모님을 돕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직장에 취직할 수도 있었을 텐데... 가슴이 잠시 멍해 옴을 느꼈다.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일이 생겼다. 그 날은 중국집에 내가 즐겨 먹는 음식인 잡채밥을 시켰다. 십 여분이 지났을까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여니 젊은 친구 하나가 비닐에 싼 음식을 건넨다. 총알 같이 빨리도 왔네, 그런데 처음 보는 친군데, 언제부터 그곳에서 일하나? ‘, 얼마 안 됐어요. 저는 그 집 아들이예요.’ 이 때부터 중국집에 주문하면 아버지와 아들이 번갈아 배달한다.

  작년 가을 어느 날 나는 늘 하든대로 한식집에 들렸다. 전과 다름없이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식사를 끝내고 문을 나서려는 순간 그 집 어머니가 나를 보면서 계면쩍은 듯 말을 건넸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웬 말씀을... 내가 더 감사하지요. 그런데 새삼 왜 그런 말을 해요. ‘우리 집 오늘로 폐업해요.’  나는 식당을 나오면서 이 집도 그놈의 코로나를 견디지 못해 문을 닫는구나 하고 마음이 뭉클함을 느꼈다. 즐겨 찾던 식당 하나가 없어진다는 생각에 기분이 울적해졌다.

  지금, 한식당 내외는 백발이 성성하고 주름이 가득 찬 노인이, 중국집 부부는 초로의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그 집들의 아들과 딸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직업의 귀천을 떠나 부모의 가업을 이어받는 건 미덕임에 틀림없다. 그렇다 손 치더라도 이들이 장차 커서 쥐꼬리만 한 부모의 식당일을 돕는 신세가 되리라고 꿈이나 꾸어 보았을까.

  똑 같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어라 노력하는 데도 왜 어느 집 아이는 잘 나가고 어는 집 아이는 개천의 송사리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제 팔자 제가 쥐고 태어난다는 말도 있지만 한 번쯤은 깊이 되짚어 볼 문제인 것 같다.


 

  문득 몇 년 전 나라를 시끌시끌하게 뒤흔들었던 소위 국정농단 사건 때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내뱉었던 그 말이 떠올랐다. ‘돈도 실력이다.’ 이 말의 속뜻은 돈 많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것도 실력이라는 의미다. 철없는 말이지만 어찌 보면 현 사회실태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출신이나 가문 등이 아닌 실적, 즉 메리트에 따라서 지위나 보수가 결정되는 사회체제를 능력주의(메리토크라시: meritocracy)라고 한다. 영국의 사회학자 M. 영이  영국의 세습제 귀족사회로부터 실력이 지배하는 사회로 이행하는 모습을 가상적으로 그려보면서 붙인 용어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사회적 지위가 혈통이나 재산이 아니라 실력과 업적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원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 돌아가는 꼴을 눈여겨보면 이 능력주의란 게 결국 이상향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느껴진다. 능력의 기초가 되는 교육이나 성장여건이 출발점부터 제한된 사회에서 과연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기회균등의 원칙이 철저히 보장되지 않는 사회라면 이 기회균등이란 것 자체가불평등하기 위한 기회균등으로 전락되는 것은 아닐까.

  능력주의 사회가 설사 실현된다 해도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닌 듯싶다. 승자는 자신의 능력 때문에 승자가 되었다고 할 것이고 패자는 자신의 능력 한계 때문에 패자가 되었다고 정당화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성공자의 자기오만과 실패자의 굴욕감은 사회적 간극을 더 심화시킬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심화된 간극의 공간에 이른바 정치적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릴 것이다.

 

  우리는 능력에 따라 보상을 받는 사회를 공정사회라 한다. 하지만 과연 능력발휘에 행운의 요소는 없었는가? 건강한 사회를 만들려면 성공에 대한 겸허한 자기통찰과 태도가 무엇보다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바위를 굴려 산꼭대기에 올리려 애쓰나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시지프스의 형벌이 우리 어께 위에 놓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등록일 : 2021-03-17 15:56| 조회: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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