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질-알곡과 쭉정이
1장. 죽 찬가 (竹 讚歌)
17 세기 조선시대 대표적 문인인 고산 윤선도 (1587- 1671)는 자연의 다섯 친구를 벗으로 삼아 노래하였으니 그들이 바로 오우가에 나오는 물, 돌, 소나무, 대나무 그리고 달입니다.
"내 벗이 몇인가 하니, 물과 돌과 소나무와 대나무라.
동산에 오르니 그것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것 다섯 밖에 또 더하여 무엇 하리"
다섯 친구 중 대나무에 대해서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무도 아닌 거시 풀도 아닌 거시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찌 비었는가?
저러고도 사계절에 푸르르니, 그것을 좋아하 노라"
대나무는 옛 선비들이 즐겨 그리던 사군자, 즉 매란국죽(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의 하나로 군자란 옛 유교에서는 완전한 인격체를 뜻하며, 그 중 대나무는 충절을 나타낼 때 자주 등장하는 옛 선비들이 표상으로 삼은 대표적 식물입니다.
그리고 대나무는 겨울철 매운 추위를 견디는 세 나무를 이르는 세한삼우(歲寒三友) 매, 죽, 송 중 하나이니, 오우가에, 사군자에 세한삼우까지 옛 선비들이 표상으로 삼는 것에 안 끼는 데가 없으니 약방에 감초 격이요 단연 우리 곁에 가까이해야 할 식물 중 으뜸입니다
오늘날에 와서도 성품이 곧고 원칙을 지키는 사람을 “대쪽 같은 사람“으로 표현하고 어릴 적부터 가까이 지낸 변치 않는 친구를 “죽마고우(竹馬故友)“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대나무는 절개, 의리를 나타낼 때 늘 불려오는 식물입니다.
2장. 키질- 알곡과 쭉정이
옛 선비들의 정신적 표상이었던 대나무는 요즘 세대에 와서는 보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면에서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건축, 식기, 장신구, 악기 심지어 무기로도 쓰이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홍콩이나 동남아에서는 건축물에 비계 (Scaffolding) 로 쓰이고, 대나무의 뿌리 ‘죽순’은 식재료로 쓰이며 밥을 넣어 찐 대통 밥, 대나무 젓가락 등 식기 재료에 널리 쓰이고, 죽염과 죽통주에도 쓰인 다니 놀라울 정도입니다.
또한 효자손, 죽부인 등 이런 저런 모양의 대나무 장신구들 그리고 단소, 대금, 피리 등 목관악기에도 그리고 적을 물리치는 죽창과 화살로도 쓰였으니 문무를 겸한 정신 세계의 표상으로, 그리고 끝내는 온 몸을 바쳐 아낌없이 인간 삶의 쓰임새로 몸을 사르는 대나무의 일생을 되돌아볼 때 존경심이 절로 우러납니다.
그 뿐 아닙니다. 대나무는 온실가스의 주범인 이산화탄소의 흡수 능력이 일반 식물의 4 배가 넘는 친환경 식물 이라니 고맙기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런 고마운 대나무의 쓰임새 중 옛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키(Winnow)라는 생활 도구가 있습니다. 농촌에서 추수 후 키질할 때 사용하는 도구로써 곡물을 추수해 이삭을 털어내어 말리고 나서 겉껍질을 벗겨내는데, 이때 섞인 티와 검불을 바람에 날려버리고 알곡을 골라내는 과정을 키질이라고 합니다.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내는 지혜로운 도구가 있었 다니 요즘같이 주위에 알곡과 쭉정이가 섞여 세상을 혼탁하게 하는 시대에 이런 훌륭한 도구를 옛 선조들이 사용한 것에 눈이 크게 떠질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 옛적 어린 시절 기억에 밤에 오줌을 싸 이부자리에 세계지도를 그리면 다음 날 아침 키를 머리에 씌우고 바가지를 들려 동네 집 집을 다니며 소금을 얻어 오도록 한 기억이 있습니다. 키를 머리에 씌운 이유는 알곡을 골라내는 키처럼 알곡이 되어 다시는 오줌을 싸지 말라는 의미에서 그리고 소금을 얻어오게 한 것은 잡귀를 쫓기 위해 그러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성경에도 키질 이야기가 나오는데 기독교에 대림 절(Advent) 이라는 교회 력 절기가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4주전 예수의 탄생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11 월 27 일부터 12 월 24일 까지를 대림절이라 부릅니다. 대림절이 끝나고 예수께서 오셔서 키질을 하셔서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셨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여러분에게 물론 세례를 주지만, 나보다 더 능력 있는 분이 오실 터인데,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소. 그는 여러분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 오. 그는 자기의 타작 마당을 깨끗이 하려고, 손에 키를 들었으니, 알곡은 곳간에 모아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 오.” (누가복음 3:16~17)
동. 서양을 막론하고 알곡과 쭉정이, 검불과 티끌을 고르는데 키를 사용하였 다니, 요즘 같은 혼탁한 세상에 누가 알곡이고 누가 쭉정이이며 티끌이고 검불인지 가리는데 쓸 수 있도록 대나무 키를 다시 소환하는 것이 어떨지, 그리고 “키질 법“ 을 만들어 알곡 만을 골라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가득 채웠으면 좋겠습니다.
2024년 가을걷이 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