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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소리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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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 정부 유감

바른사회운동연합


필자 :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공정성 시비가 끊이질 않는다. 작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1저자 논쟁으로 시작해 인천국제공항(인국공) 정규직 전환 사태를 거쳐 최근 의대생 국시 구제 논쟁,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병역 논란에 이르기까지 논의가 뜨겁다. 2018년 벽두의 가상화폐 규제 정책, 평창 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 논란은 논쟁의 기원으로 손색이 없다. 당시 청년들은 ‘갑질 정부’에 분개했고, 무너지는 계층사다리에 좌절했다.

공정성은 이번 정부의 국정철학이자 지상목표다. 평등·정의와 함께 나열됐지만, 국민의 삶에 가장 밀접한 가치이기에 단연 시선을 끈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이렇다 보니 국민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본다. 정부가 잘 실천하는지, 말과 행동에 차이는 없는지 작은 부분이라도 감시하고 시시비비를 따진다.

고대 철학자들에게 공정은 곧 정의의 문제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공동생활의 일반원칙인 도덕이나 윤리를 지키는 것을 정의로운 삶의 시작으로 봤다. 권력과 재화를 분배하는 문제 즉, 오늘날 우리가 공정으로 다루는 이슈 역시 정의로움의 관점으로 봤다. 근대철학으로 넘어와 공정성 논의는 구체화한다. 홉스는 ‘시민론’에서 공정성을 차별하지 말라는 자연법의 명령으로 봤다. 빈부격차를 막는 일은 통치권자의 의무가 된다.

대한민국에서 공정성은 어느덧 나라도 두 동강 낼 만큼 뜨거운 감자가 됐다.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뭉개고 무시됐던 가치를 이제는 모든 국민이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한 역사적 전제는 국정농단과 촛불혁명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친박세력이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자 국민은 철퇴를 내렸다. 공정성이 오롯이 민주시민의 시야에 들어왔다.

국정농단과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비하면 고등학생 논문 1저자나 군대 휴가 청탁은 정말 작아 보인다. ‘내로남불’ 정치인이 보면 억울하다 못해 참담한 일일 거다. 하지만 세상이 바뀐 걸 어쩌랴. 안중근 의사도 겁 없이 끌어들일 만큼 미미한 공정성 이슈지만, 성숙한 민주시민에겐 국가를 뒤흔드는 중대사다. 정부가 스스로 공정성에 올인한 만큼 작은 흠결에도 책임을 다해야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정성 하면 ‘분배의 공정성’이 떠오른다. 고대·근대 철학자를 거쳐 현대인에 이르기까지 사회 존립의 근거로 거론된다. 여기에 접근하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개인의 기여와 비례적 보상을 중시하는 형평의 관점이다. 또 하나는 개인의 기여나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는 균등의 관점이다.

조국·추미애 사태의 상징인 아빠·엄마 찬스는 균등의 공정성으로 수렴된다. 우리 사회의 계층 문제, 부의 대물림, 금수저·흙수저 논쟁을 가로지른다. 계층 문제가 곧 공정성의 문제이고, 그 무게 만큼 국민의 멍은 깊어간다. 인국공 사태는 형평과 균등이라는 공정성에 대한 두 개의 시선이 부딪친 경우다. ‘노오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정규직 청년과 부의 대물림을 저격한 비정규직 청년이 강한 파열음을 냈다.

공정성에는 또 다른 축이 있다. 절차의 공정성이다. 최근 두 가지 이슈가 여기에 해당한다. 의대생들의 국시 재응시 논쟁, 추미애 아들의 휴가 복귀 논란이다. 절차의 불공정 앞에서는 부모 찬스도, ‘노오력’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절차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고 법 집행은 엄정해야 한다. ‘법 앞의 평등’이 괜한 말이 아니다.

한국행정연구원의 2019년 ‘사회통합 실태조사’에서 법 집행이 얼마나 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국민의 39.3%가 그렇다고 답했다. 경제 분배의 공정성에 대한 응답 비율 33.2%에 비해 높다. 전년도에 비하면 5.2% 포인트 높아졌다. 법과 절차의 공정성이 조금씩 자리 잡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의대생 국시 재응시 주장과 추 장관 아들 병역 반칙 의혹은 이런 긍정적 변화에 급제동을 걸었다. 의대생, 추 장관 가족 모두 절차의 예외를 강변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분배의 공정성도 함께 얽혔다. 학생 신분으로 정부와 맞붙을 수 있는 의대생의 특권, 전화 민원쯤은 서슴지 않는 정치인 가족과 관계인의 무감증. 국민은 혼란스럽다.

그제 제1회 청년의 날 기념사에서 대통령은 ‘공정’을 37번이나 언급하며 청년들에게 호소했다. 그 37번 안에 어디에도 ‘절차적 공정성’이 훼손되는 현실은 담기지 않았다. 이런 이유에서 대통령의 기념사는 공허하다. 우리가 미래를 우려하는 까닭이다.

[출처: 국민일보]
등록일 : 2020-09-22 17:10     조회: 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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