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을 보는 어두운 심정
필자 : 이성낙 교수(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 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가천대 명예총장, 한국의 •약사평론가회 前 회장
(사) 현대미술관회 前 회장, (재)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얼마 전 국회에서는 여당이 발의한 ‘중대재해처벌법(重大災害處罰法)’이 통과되었습니다. (기업에서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소홀히 해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기업을 형사 처벌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한다는 것, www.anjunj.com) 걱정이 앞선 재개가 허탈해하는 모습에서 그 심각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중소기업 중심의 산업계는 더 ‘겁먹은 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초·중·고등학교 교장들 역시 우려의 목소리를 높입니다. 일선 학교에 행정지도를 시시콜콜하는 광역자치단체의 교육감이 문제가 발생하면, 교장이 책임지라는 것이랍니다. 거기에다 의료계에서는 “의사 생활 못 하겠다”라며 볼멘소리를 쏟아냅니다. 대형 병원의 외과계 의사들은 “수술실 들어가기가 두렵다”라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어느 대학교 총장은 개탄하며 정문 담당 경비원이 일으킨 물의를 해당 대학교 총장이 책임져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 사회 정서라면 의료계는 고대 이집트에 뿌리를 둔 ‘탈리오 법칙(Lex Talionis)’, 이름하여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염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고대의 율법을 연상케 하는 법안이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온 사회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필자는 의료 사고의 경우, 의사가 책임질 부분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누차 소신을 밝힌 바 있습니다.)
“죄(罪)가 있는 곳에 벌(罰)이 따른다”는 말은 동양과 서양,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습니다. 만고의 진리입니다. 그러나 법률 전문가가 아닌 필자 같은 보통 사람도 “법의 정신은 시대성을 초월하지 못한다.” 정도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법이 시대성에 따라 발전하는 게 아니라 먼 옛날로 역행하고 있으니 당혹스러워하는 것입니다.
1956년 즈음의 일로 기억합니다. 옛 산업은행(?) 뒤편, 오늘 롯데백화점(을지로) 자리에 국립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도서관을 둘러보던 중 창가에 쌓인 먼지를 손가락으로 지적했다고 합니다. ‘청소했으면 좋겠다’라는 취지였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당시 각종 일간지에서는 토픽으로 이 사실을 요란하게 보도했고, 결국 도서관장이 물러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에 소수 지성인이 그게 왜 도서관장이 책임질 일이냐며 항의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끝내 묻혀버렸습니다. 요컨대 필자는 작금의 사태에서 반세기 이전의 그런 정서를 경계하는 것입니다.
지난 2015년 유럽에서 비극적인 여객기 추락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사의 자매 회사인 저먼윙스(Germanwings) 소속 항공기(Airbus)가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를 떠나 독일 뒤셀도르프로 향하던 중 알프스산맥에 추락한 것입니다. 이 사고로 탑승객(115명)과 승무원(5명)이 모두 사망했습니다. (2015.03.24.) 그런데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조종사(Co-Pilot)는 당시 정신질환 앓고 있었으며, 담당 의료진이 당분간 비행 금지 조치와 함께 정신과에 입원해 치료를 받도록 처방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부조종사는 이런 사실을 숨기고 비행에 나서 결국은 엄청난 사고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또한 부조종사는 미국에 있는 한 비행 조종사 양성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그 교육기관이 비행 자격증을 발부한 것도 문제였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과 관련해 필자의 관심 사항은 당시 앙겔라 메르켈 총리, 교통부 장관, 루프트한자 대표 중 누구도 그 엄청난 항공 사고에 책임을 지고 자리를 떠난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책임을 진 사람은 담당자에 국한되었습니다. 우리 정서와는 사뭇 다릅니다.
그래서 필자는 이번에 국회를 통과해 형사법으로 명문화한 ‘중대재해처벌법’을 불안한 눈으로 직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법이 거론된 것은 그간 피해자와 그 가족이 받은 상처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을 줄 믿습니다. 물론 충분히 배려할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명분 또한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 달래기’ 차원을 넘어 ‘한풀이’ 해결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은 크게 삼가야 할 일입니다. 이러한 법은 건설 현장을 포함한 크고 작은 산업계, 교육계, 그리고 의료계 등 모든 분야에서 평화로운 여건 조성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조치이기에 어두운 마음을 가누기 힘든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