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로그인 바로가기
문서 자료실 바로가기

바른소리쓴소리

바른소리쓴소리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 열심히 일한만큼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사회,
우리가 추구하는 “바른사회”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바른사회운동연합

(필자 : 박종흡) 성균관대 행정학박사 / 국회입법차장(前) / 공주대 객원교수(前) / 現 수필가 시인

사회적 거리두기

 


(필자 : 舒川 박종흡)

 

나이가 들어서인지 밤잠이 짧다. 아무리 늦게 잠자리에 들어도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 전형적인 노인증세다. 새벽에 눈을 뜬다 해도 딱히 할 일은 없다. 화장실에 첫 인사를 하고는 소파에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기가 일쑤다. TV를 틀고 싶어도 단잠을 자고 있을 이웃집에 혹여 폐가 될까 싶어 감히 리모컨에 손이 가지 않는다.

  먼동이 트기 시작할 무렵이 돼서야 정신이 번쩍 든다. 오늘 아침식사는 뭘 해서 먹지? 밥을 먹어야 하나 아니면 라면을 끓여야 하나. 그것도 아니면 커피 한 잔에 콘프레이크로 간단히 해결해야 하나... 독거노인의 첫 일과는 늘 이렇게 시작된다.

  오늘도 예외 없이 일찍 눈을 떴다.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집안을 서성거리다 창밖을 본다. 한겨울이어서 그런지 새벽녘은 더 캄캄해 보인다.  아파트 건물 틈새로 요 며칠사이 북극발 한파로 꽁꽁 얼어붙은 한강과 눈 덮인 먼 산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다. 불 켜진 집이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아파트에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유독 나만이 잠 못 이루는 별난 노인처럼 느껴져 마음이 씁쓸하다.

  창밖에 전개되는 새벽의 광경에 눈을 굴리다가 바로 밑의 강북도로와 저 멀리 올림픽대로에 번갈아 눈길이 멈췄다. 차등의 불빛행렬이 줄을 잇고 있었다. 이처럼 이른 새벽에 저 차들을 타고 달리는 사람들은 어디를 가고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속을 헤매는 이 시간에 저 사람들은 왜 잠도 안 자고 달리고 있을까. 나의 상상의 날개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평상 시 늘 접하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현실세계가 이 순간 무언가 새로운 시각으로 다가왔다.

  문득 젊었을 때 친구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주고받던 농담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갔다. ‘지가지가 도람사.’ 거꾸로 하면사람도 가지가지가 된다. 그렇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별의 별 사람들이 뒤섞여서 어울려 사는 곳이라는 현실이 바로 그것이다.

  지그시 눈을 감고 우리 주변의 현실세계를 둘러보자. 이 순간 어디에선가 사람이 죽고 있다. 그러나 또 어디에선가는 새 생명이 태어나고 있다. 누군가 잠을 자고 있는 때, 다른 곳에서는 누군가 일을 하고 있다. 수십 년 간 쪽방촌 신세를 못 면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호화주택에서 호의호식하는 사람들도 있다. 추운 날 식구들 끼니를 채우기 위해 새벽녘 인력시장을 헤매다 허탕 질을 하고 헛배를 부둥켜안고 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시간에 일 안하고도 배불리 먹고 사는 사람도 있다.

  쥐꼬리만 한 일용의 양식을 얻기 위해 혹은 학비를 벌기 위해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알바를 하는 젊은이가 있는가 하면 부모 잘 둔 덕에 포르쉐를 몰고 호화에서 술에 젖어 사는 금수저도 있다. ‘정인이처럼 양부모 학대에 시달리다 목숨을 빼앗기거나 일용직 홀엄마가 돈 벌러 나가 집을 비우면 온종일 집안에 갇혀 허기에 시달리는 어린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부모와 행복하게 사는 아이들도 있다.

  어디 이뿐이랴. 살림이 유복하지만 자식이 귀하여 애타는 집이 있는가 하면 자식은 많지만 가난에 허덕이거나 자식일로 바람 잘 날 없는 집도 있다. 부모가 구두쇠 노릇을 하면서 모은 돈을 자식이 탕진하는 집이 있는가 하면 가난하면서도 자식만은 올바르게 키운 집도 있다. 자식이 출세하여 기뻐하는 집도 있지만 자식이 똑똑하지만 디딤돌이 없어 재능을 펼 길이 없는 집도 있다.

  사람 사는 모습은 이렇다 손치고 사람의 모습은 또 어떤가. 이 또한 가지각색이다. 쩍하면 화를 내는울뚝별이 있는가 하면 양의 눈처럼 순한 사람도 있다. 돈키호테 같은 벽창호가 있는가 하면 칸트나 괴테 같은 사색파도 있다. 참새 같이 작은 가슴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독수리 같이 강한 심장을 가진 사람도 있다. 여우처럼 꾀 많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처럼 미련스럽게 걸어가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 세상일이나 인간사가 다 그렇다. ‘보름달 뜨는 날은 구름이 자주 끼고, 꽃이 활짝 피면 바람이 불어댄다.’는 어느 옛 시인의 말처럼 우리네 삶의 현실은 자연의 이치와 유사한 점이 많다.

  오늘날의 인류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지 약 3만 년 전이라고 추정한다면 인간은 이 긴 세월 동안 이렇게 살아온 것이다. 환경에 적응 못하여 지구상에서 사라진 동물이 많음을 생각한다면 인간의 생존은 기적 중의 기적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된 데는 어느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을까. 너무 고차원적이고 복잡한 명제인지라 1차방정식 밖에 모르는 나에게는 언뜻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단지 단순한 발상만이 머릿속을 맴돈다.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공동체를 영위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의지와 샘물 같은 의식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아담 스미스가경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지배된다.’ 라고 했듯이 이 의지와 의식은 사회 속의 인간을 지배하는보이지 않는 손이다. 헤겔의 변증법 논리인 정반합(正反合)의 법칙으로 설명한다면 이 보이지 않는 손이 현실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여  새로운 상태로 전환케 하는 동인인 셈이다.

  우리 인간은 모두가 한 방향으로만 가지는 않는다. 때로는 마주보고 달려오는 기차처럼 충돌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전쟁이다. 그러나 이 전쟁은 비단 무력의 충돌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가치나 신념의 충돌도 있고 생활양식이나 문화의 충돌도 있다. 빈부의 충돌 역시 오랜 인간의 전쟁이다. 권력을 둘러싼 정치적 편가르기와 몰지각한팬덤현상도 충돌의 한 단면이다.

  우리는 서로가 극()과 극에 마주 서서 줄을 잡아당기고 있는 양상인 지도 모른다. 불행하게도 오늘의 현실은 그 줄이 고무줄이 아니고 쇠줄이 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만치 양극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 코로나 전염병으로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이다. 그런데 서두에서 주책없이 우리 사회의 상반되는 삶의 현실을 늘어놓았듯이 코로나사태 훨씬 이전부터 원초적인 사회적 거리두가 있었던 건 아닐까. 가슴에 손을 대고 생각해 볼 일이다.

 

  이 글에 마침표를 찍으려는 오후, 마침 밖에서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 가지마다 핀 눈꽃이 탐스럽다. 코로나 블루에 젖은 이 몽상가의 마음에 조금은 평온이 찾아오는 듯싶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소멸되어 정상생활을 되찾는 때가 하루 빨리 오기를 조용히 기도해 본다.

  사람과의 거리는 2m, 마음의 거리는 0m!' 어느 공원에 걸린 플래카드 표어가 내 가슴속을 어지럽게 맴돈다.

등록일 : 2021-01-28 15:15    조회: 903
Copyright ⓒ 바른사회운동연합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