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정신 배신하는 정권의 부역자들
필자 : 김종민 변호사 (공동대표, 煎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전국 검사들의 ‘검란(檢亂)’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국 검사와의 대화’로 정국을 소용돌이에 몰아넣었던 2003년 3월 노 정부 첫 검찰 고위간부 인사는 인사권을 이용해 검찰의 정치적 예속을 강화하는 신호탄이었다. 기존 검찰 고위간부들을 숙청하고 친(親)정권 검사들을 요직에 채워 넣으려는 정권의 속셈은 검찰 조직에 ‘새바람을 불어 넣기 위한 서열과 기수 파괴’로 포장됐고 뛰어난 능력과 경륜으로 신망받던 많은 검사장이 인사 칼바람에 사라져 갔다.
당시 민정수석과 민정비서관으로서 검찰 고위간부 인사를 주도했던 문재인 대통령과 박범계 법무장관이 18년 만에 다시 힘을 합쳐 인사와 조직 개편을 단행한다. 임기 말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의 최종 완성을 목표로 대검찰청 검사급 이상 검사의 보직 범위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을 개정해 ‘검사장급 보직의 탄력적 인사’ 차원에서 고검장을 초임 검사장 보직으로 강등시킬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징계처분이나 적격심사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해임·감봉 등 불이익 처분을 받지 않는다는 검찰청법의 신분보장 규정에 정면으로 위반되고 군사독재 시절에도 감히 엄두 내지 못했던 파격적인 수준이다.
노무현 정부는 서열과 기수 파괴의 첫 검찰 고위간부 인사의 이유를, 검찰의 독립과 중립을 지켜내지 못한 검찰 지도부에 책임을 묻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검사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고 못 박은 것에서 보듯 정치권력이 인사권을 놓지 않는 한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은 요원한 문제다. 그 결과가 어떠한지는 문 정권 4년이 생생히 보여준다. 정권 비리를 수사한다는 이유로 현직 검찰총장이 아무런 혐의도 없이 징계 처분으로 쫓겨났고 수사팀은 전격 해체됐다. 서울중앙지검장을 비롯한 친정권 검사들의 ‘빗장수비’로 정권과 관련된 주요 수사는 기약이 없다. 언제든지 좌천될 수 있도록 검사장급 인사규정이 바뀌면 정권의 뜻을 거스르는 어떤 수사도 하기 어렵다.
“검찰의 독립이 없으면 공정함이 없고, 공정함이 없으면 정의도 없다”는 장루이 나달 전 프랑스 검찰총장의 지적은 검찰 독립의 의미를 정확히 말해준다. 검찰 인사와 조직의 독립성 보장이 핵심이다. 프랑스가 2차 세계대전 당시 검찰 정치 도구화의 역사적 경험을 반성하며 1946년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의 검사 인사권을 배제하고 최고사법평의회(Conseil superieur de la Magistrature)의 권한으로 한 것도 그 때문이다. 또한, 검사의 지위와 조직에 관한 사항을 반드시 사전 위헌심사를 거쳐 의회 절대 다수결을 개정 요건으로 하는, 법률보다 상위의 조직법(loi organique)으로 규정하도록 헌법에 명시한 이유이기도 하다.
권력은 남용되기 쉬운 중독이다. 철학자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누구라도 그 과정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문 정권은 검찰과 싸우며 스스로 괴물이 돼 버렸다. 검찰개혁의 미명 아래 군사독재 시절 못지않게 법치주의와 자유민주주의적 규범을 파괴했고 역사를 후퇴시켰다. 셰익스피어는 사극 ‘리처드 2세’에서 “절제를 잃어버릴 때 영국인의 피가 대지를 흥건히 적실 것이며, 후손들은 그 어리석음 때문에 신음하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자제(自制)의 규범이 사라질 때 견제와 균형 대신 정체와 마비가 들어선다.
문 정권의 검찰개혁은 허구임이 드러났다. 만절(晩節)을 보면 초심(初心)을 안다. 정치적 야합까지 불사하며 무리하게 도입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현주소는 무엇을 말해 주는가. 엄정공평 불편부당의 검찰 정신은 오간 데 없고 정권의 부역자로 전락한 일부 정치검사의 권력욕은 검찰을 무너뜨렸다. “나는 법무장관이지만 기본적으로 여당 국회의원”이라는 박 장관의 검찰 직접수사 승인 방침은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도 경험하지 못한 노골적인 정권의 검찰 수사 개입 선언이다.
[출처 :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