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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소리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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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도라 도라 도라”

이석구







필자 이석구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전 언론인>



<프리즘> “도라 도라 도라

 

  도라 도라 도라”. 80년전 오늘, 194112월8일 새벽 255(하와이 현지시간 7일 오전 7시55분) 일본 대본영으로 암호가 날아들었다. 하와이 오아후 진주만 미 해군기지를 기습 공격한 일본 비행대로부터 발송된 공습 성공 암호다. 숨죽이고 이를 기다리던 대본영에서는 함성이 터졌다. 암호 도라는 호랑이란 일본 말로 突擊(도츠게키)雷擊(라이게키)의 머리글자를 딴 합성어라 한다


  이 공격은 일요일 아침 선전포고 없이 기습적으로 단행됐다. 무방비 상태의 미국은 엄청난 피해를 봤다. 사망 243, 부상 1178명이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진주만에 정박 중이던 전함, 순양함 등 7척이 침몰 되고 11척이 파손됐다. 항공기 188기가 파괴되고 159기가 손상됐다. 반면 일본의 인명 피해는 전사64, 포로 1명에 불과했다. 항공기는 29기가 격추되고 74기가 손상됐다. 항공모함이나 전함은 피해가 전혀 없었다. 작전에 참가, 어뢰공격을 했던 갑표적(잠수정)4척이 침몰,1척이 좌초되는 피해를 입었다.


  진주만 공격에 나선 일본 연합함대는 항공모함이 주축이다. 항공모함 6, 전함 2, 순양함 3, 구축함 9, 항공기 441, 갑표적(잠수정) 5척으로 구성됐다. 연합함대는 1126일 은밀히 일본을 떠났다. 북쪽으로 항로를 잡아 11일 만에 진주만 서북쪽에서 접근, 서쪽과 남쪽만 바라보던 미국의 경계를 따돌렸다. 이 공격으로 미국 태평양 함대는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특히 공격 개시 9분 만에 전함 애리조나호는 침몰, 1177명이란 막대한 인명피해를 냈다.


  그러나 진주만 공격 시 모항을 떠나 있던 미국의 항공모함 3척은 건재했다. 이는 추후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이 승리, 전세를 역전시키는 발판이 됐다. 또 진주만의 유류기지, 수리 창 등 기반 시설도 건재 했다. 일본이 1,2차 공습으로 전함과 항공기만 파괴하고 서둘러 귀환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이 발 빠르게 공세에 나서는 빌미를 제공했다. 진주만 공격 함대사령관 나구모 주이치 제독은 공습목표가 전함과 항공기파괴라며 3차 공격을 주장하는 참모들의 견해를 묵살했다. 만일 당시 3차 공격으로 유류시설 등 진주만 기반시설을 파괴하고, 진주만으로 귀환 중이던 항공모함을 찾아 파괴했더라면 미국의 반격은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전사가들은 이를 일본의 최대 전략적 실수라고 평한다.


  당시 유럽 정세는 독일이 모스크바 점령을 코앞에 두는 등 추축국이 유리한 형세였다. 그러나 일본은 석유, 철강 등 전략물자 부족으로 전쟁 수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미영 등 서방 진영이 일본의 중국침략에 대해 대일 전략물자 수출 금지란 경제제제 조치를 취한 때문이다. 일본은 진주만 선제공격으로 타격을 받은 미국이 힘을 회복하는 동안 동남아를 점령, 섬들을 요새화하고 평화협상에 나서 조선 만주 대만 등 식민지와 점령지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려 했다. 이는 단기전으로 끝났을 때 가능한 시나리오다.


  그러나 일본의 진주만 기습공격은 미국인들의 분노를 샀다. 2차 대전 참전여부를 놓고 갈라진 미 국론을 참전으로 돌려 놨다. 미국 의회에서 상원은 만장일치, 하원은 3881로 전쟁참가 법을 통과시켰다. 진주만 기습공격 전까지 미국은 "우리한테 직접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괜히 끼어들 필요 없다"라는 주장이 강했다. 진주만 피격은 미국인들의 애국심에 불을 질러 청년들이 앞 다퉈 군 입대를 자원했다.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이 좋은 예다. 그는 예일대에 합격, 징집연기를 할 수 있었지만 가장 위험한 해군조종사에 지원했다. 그의 아버지가 막강한 연방 상원의원이었는데도. 심지어 국회의원들도 군 입대를 자원했다. 린든 B 존슨 전 대통령은 당시 연방 하원의원임에도 해군에 자원입대, 장교로 복무했다.


  진주만 공격 4일 뒤 독일과 이태리도 미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진정한 의미에서 2차 대전이 발발한 셈이다. 미국은 당시 일본 GDP10배나 되는 거인이었다. 2차 대전 기간 중 미국이 건조한 수송선은 25백만t이나 될 정도였다. 일본이 잠자는 거인의 코털을 건드린 셈이다. 일본은 전쟁이 장기전으로 가면 국력차가 엄청난 미국에 질 수밖에 없었다. 진주만 공격은 결과적으로 2차 대전을 조기에 끝내는 단초가 됐다. 우리의 해방도 그만큼 빨라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진주만 공습은 역사상 최장거리의 기습작전이었다. 또 전술적으로 완벽한 일본 제국의 승리였다. 그러나 전략적으로 보았을 때 일본 제국을 패망으로 이끈 결정적인 실책으로 평가된다. 지도자의 혜안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산 증거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미중 대결, 4차 산업혁명,코로나 등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한치 앞을 점치기 어려운 엄중한 시기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곧 이 나라를 5년간 끌고 갈 지도자를 뽑는다. 국민의 올바른 선택이 절실하다.


등록일 : 2021-12-08 16:49     조회: 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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