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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소리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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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영의도시산책] 아파트숲이 그려놓은 도시 스카이라인 ‘유감’

이건영 *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 미국 노스웨스턴대 도시공학 박사 * 前 국토개발연구원 원장/ 건설부차관

 [이건영의도시산책아파트숲이 그려놓은 도시 스카이라인 유감

 

(2022. 02. 08. 세계일보 게재) 


옛날 어느 시인은 남산에서 한양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게딱지들이 다닥다닥 엎디어 있는 형상이라고 묘사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한양은 분지다. 북한산 앞자락에 납작 엎드린 궁성도 풍수지리에 따라 산세를 거스르지 않도록 높게 짓지 않았다. 서민들의 집은 더 낮아서 고개를 숙이고 문지방을 넘어야 했다. 그래서 한양의 스카이라인은 나지막하게 엎드린 자세였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의 도시들이 아파트 밀림이 되었다. 가로로, 세로로, 길게 줄지어서, 또는 나란히 솟아올라 사방으로 퍼져 나간 아파트들이 즐비하다. 어느 길 양편에 고층아파트가 가로수처럼 늘어선 모습은 실로 가관이다. 병영 같다고도 하고, 성냥갑 세워놓은 것 같다고도 한다. 아파트공화국의 흉물스러운 풍경화다.

 

서울은 만원도시다. 이호철이 서울은 만원이다란 소설을 썼을 때 서울 인구는 고작 350만 정도였는데, 거리마다 인간들이 바글거리며, 버스 한 번 타려면 정류장에 늘어선 버스 행렬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녀야 했다.

 

그 이후에도 서울 인구는 계속 늘어 초만원이 되었다. 언덕바지 삐죽이 솟은 교회 첨탑 밑에 나지막한 집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었다. 소위 마당 깊은 집에 안방에, 건넌방에, 사랑방에, 문간방에 서너 가구가 마당을 가운데 두고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집은 짓고 지어도 끝이 없었다. 버스 타고 변두리 종점에 나가 말뚝 박으면 주거단지가 되고, 복부인이 휩쓸고 가면 도시가 되었다.

 

이탈리아 폼페이의 유적에도 아파트 구조가 있는 것을 보면 서양에서는 아파트의 역사가 오래지만, 우리가 아파트에 길들여지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온돌과 아궁이가 기본구조인 한옥을 쌓아 올리기 힘들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 주택 구조는 아파트가 주류다. 서울 집의 59%가 아파트다. 다세대주택 등 집단주택을 포함하면 85%가 아파트형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아파트를 지으면서 점점 고층화, 고밀화하는 것이다.

 

이제 아파트가 도시 주위의 숲과 산을 가리고, 하늘을 가리고, 우리 마음을 가린다. 도시가 콘크리트벽으로 둘러싸이고, 모든 공간이 벽 속에 갇힌 형상이 되었다. 한강변에 줄지은 아파트 군상은 성벽과 같다. 높이도 같고 모양도 어슷비슷하다. 그렇게 조망권을 독차지하고 있으니, 한강이 자기들 것인가?

 

차를 타고 시골길을 달려보면 논밭 사이로 삐죽삐죽 솟은 것도 아파트들이다. 한적한 시골 구릉지를 깎아지르거나 논두렁에 옹벽을 치고 솟아오른 수십층 아파트군들은 정말 볼썽사납다.

 

1990년대 중반 남산 외인아파트가 남산 경관을 가린다고 폭파한 적이 있다. 이런 낭만적인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산하에 더욱 두꺼운 병풍이 둘리고 탑이 쌓이고 있는 것이다. 건조하고 막막하고 드라이하고 흉하다.

 

프랑스에선 일반적으로 똑같은 디자인의 건물을 허락하지 않는다. 아파트도 그렇다. 그런데 우리 아파트는 붕어빵이다. 높이도 같고, 모양도 같다. 배치된 형태도 어슷비슷하다. 몬트리올의 해비타트67(건축가 무쉬 새프니)이나 코펜하겐의 VW하우스(건축가 비야케 잉겔스) 같은 멋들어진 디자인의 아파트는 찾아볼 수가 없다.

 

왜 그럴까? 건축가들에게 물어보면 건축법, 도시계획법이 하도 까다로워서 그 규정에 따라 설계를 하면 똑같은 붕어빵이 나온다는 것이다.

 

개성에 따라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획일적인 아파트 구조에 우리의 삶이 재단된다. 아파트살이가 곧 우리의 삶의 표준이 되었다. 밀도는 높지만 인간적 접촉의 기회는 별로 없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눈인사만 주고받으며 지내는 이웃. 이름도 직업도 모르는 낯익은 이방인들이다.

 

예전에는 마당이나 골목길에 모여 제기 차며 시시덕거리던 아이들이 방으로 들어가 게임기를 갖고 논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보면 장대 같은 아파트숲을 우리 집이라 하고, 자동차로 가득한 도로를 우리 동네라고 한다. 이런 고밀도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자기 폐쇄적이고 공격적이 된다는 것이 도시심리학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최근 들어 새롭게 재건축을 한 아파트들의 디자인은 조금 달라졌다. 그러나 용적률은 더 높아졌다. 더 고밀화, 고층화하였다. 집 안에서 창밖을 보면 앞 동()의 뒷등만 보인다. 위를 올려다보면 빠끔히 하늘이 보이는데 현기증이 난다. 일조시간도 얼마 되지 않는다.

 

도시의 삶을 도시답게 하는 것은 다양성 아닐까?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기회와, 다양한 거리와 다양한 집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도시이다. 그래서 도시는 수백년간 응고되어온 시간의 자취와 함께, 다양한 스카이라인, 다양한 랜드스케이프를 보여주게 마련이다. 런던의, 바르셀로나의, 샌프란시스코의 스카이라인에는 나름 성장사의 굴곡이 배어 있다. 서울의 어수선한 스카이라인은 그저 급성장한 졸부(猝富)의 흔적이다.

 

우리 주택시장이나 정책이 너무 아파트 일변도로 가고 있다. 그리고 건축가들은 건축법과 규정에 따라 붕어빵을 찍어내어, 우리 도시를 획일적인 틀 속으로 밀어넣는다. 거의 고층아파트로 뒤덮여 있는 신도시 세종시는 도시가 아니다. 그저 아파트숲이다.

 

요즘 대선 경쟁에 나선 후보들도 경쟁적으로 아파트 용적률을 높여서 더 많은 아파트를 공급하자고 나선다. 나는 이런 도시와 후보들에 절망한다.

 

등록일 : 2022-02-08 15:48     조회: 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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