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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소리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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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 열심히 일한만큼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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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영의도시산책] 광화문광장을 시민에게 돌려주자

이건영 *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 미국 노스웨스턴대 도시공학 박사 * 前 국토개발연구원 원장/ 건설부차관

[이건영의도시산책] 광화문광장을 시민에게 돌려주자

 

(2022.03.21. 세계일보게재)

 

풀과 나무 환상적이었던 광장

돌바닥 천지 정치 광장변해

   √ 시장과 정권 바뀔 때마다 실험

 √ 역사·특색 간직 쉴 공간되길

   

 도시 광장은 멋들어진 랜드마크다. 유럽 도시들이 갖고 있는 광장들은 대개 성당이나 시청을 중심으로 고만고만한 건물들에 둘러싸인 열린 공간이다. 모양새나 성격은 달라도 밀라노의 두오모광장, 브뤼셀의 그랑플라스, 런던의 트래펄가광장은 모두 인상 깊다. 광장 주변으로 퍼진 크고 작은 골목길을 둘러보면 정취가 넘친다. 이들 광장은 시장(市場)이 서고, 축제나 집회가 열리는 곳이었다. 자연발생적인 공간이라 도시마다 나름의 역사와 특색이 있다.

 

 서울의 광장은 어떤가? 예전에는 여의도광장이 있었다. 세계에서 제일 큰 광장이었다. 탁 트인 아스팔트광장이었다. 여기서 노태우·김영삼·김대중 대통령 후보들이 100만 인파를 모아 놓고 쩌렁쩌렁 열변을 토했다. 정치적인 행사나 군사 퍼레이드가 가끔 열렸지만, 보통 때는 하루 종일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천국이었다. 나는 늘 궁금했다. 이 광장, 왜 만들었을까?

 

 권위시대의 상징 같던 이 여의도광장이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아스팔트 바닥이 흙으로 변했다. 물이 흐르고 수목이 우거져 여의도의 멋진 오아시스가 되었다.

 

 여의도광장이 없어지자 시위 장소가 서울광장이나 광화문광장으로 옮겨졌다. 서울광장은 예전엔 분수와 조각이 있는 여섯 갈래 로터리였다. 도로가 사방으로 통했다. 그 도로를 막고 잔디를 깔았다. 겨울에는 스케이트 링크가 들어선다. 영화 속 낭만적인 장면처럼 햇볕이 쨍한 여름날 잔디밭에서 선탠을 하고 겨울에는 스케이트 타라고?

 

 광화문광장은 더 이상한 모습이 되었다. 이곳은 조선시대 육조(六曹) 거리였고, 얼마 전까지도 정부기관 청사들이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어서 관아가(官衙街) 분위기였다. 이곳 식수대를 양쪽으로 넓히고 돌바닥을 깔아 광장을 만들었다. 오세훈 전임 서울시장 때였다.

 

 이후 이곳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온갖 시위와 집회가 끊이지 않는 장소가 되었다. 광장이 정치의 볼모가 되었다. 요즘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돌바닥이 썰렁하지만, 그 전에는 주말이면 정치행사로 뒤덮였다. 분향소, 시위본부, 단식 등을 위한 야영텐트, 차일, 여기저기 만들어진 가설무대. 정치 구호가 담긴 지저분한 현수막과 포스터. 꽹과리와 확성기의 쩌렁쩌렁한 소음. 광장은 하루 종일 온갖 시위로 난장판이었다.

 

 대통령을 꿈꾸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광화문광장 재개조안을 만들었다. 차도를 미국대사관 쪽으로 몰아붙이고, 광장은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붙여서 넓혔다. 돌바닥에는 촛불 무늬가 물결치고 선큰 플라자에는 세월호 기억공간을 만들어 분노의 곡소리를 담았다. 이렇게 광화문광장이 민주 성지로 태어나도록 설계되었다. 투시도를 보면 광화문에서부터 세종로네거리까지 하얗고 넓은 돌바닥으로 덮여 있다. 볼품없고 위세만 흐르는 베이징의 텐안먼광장이나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에서 무슨 영감을 얻은 것일까?

 

 박 전 시장은 꿈을 이루기 전에 불미스러운 사고로 퇴장했다. 그러자 박 전 시장 사단은 새 시장이 취임하기 직전 전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했다. 불도저가 광화문 바닥에 대못을 쾅쾅 박는 요란한 소리를 들으며 오세훈 시장은 취임하였다. 그동안 수백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되었다. 오 시장은 결국 공사를 묵인했다.

 

 광화문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오는 7월에 선보일 광장의 투시도를 보면 햇빛만 가득한 돌바닥광장이다. 아파트 단지 조성하듯 어린이 물놀이터, 분수터널, 나무 등이 모퉁이에 추가되었지만, 디자인도 볼품없고 개념도 없는 정치공간이다. 역사성을 복원한다고 문화와 예술을 핑계 대지만, 국가 상징거리라는 이 넓은 광장은 시대착오적이다.

 

 5월에 취임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기겠다고 공약하였다가 용산으로 방향을 돌렸다. 광화문의 정부서울청사는 새로 선보일 광장 돌바닥에 섬처럼 놓여 있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광장에서 신도들을 내려다보며 강복하고 소통하는 교황의 모습을 보면 짠한 감동을 느끼지만, 한편 성난 시위대에 포위된 황당한 모습도 연상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광장은 더 이상 소통의 장소가 아니다. 광장민주주의는 포퓰리즘의 자기합리화다. 선동적이고, 군중심리를 자극한다. 과거 광장엔 인민재판이 열리고 단두대가 설치되고 화형식이 벌어졌다. ‘촛불이 자극한 광장문화가 서초동·광화문으로 갈라진 편 가르기 아니었나? 우리나라는 정치과잉 상태다. 국회에도, 거리에도, 술집에도 정치가 넘친다. 광장의 정치를 의사당 안으로 끌어들여야 하지 않을까?

 

 나는 예전의 광화문 풍경이 좋다. 약간 때 묻고 약간 엉성하고 약간 어긋나도 좋다. 광화문광장에서 정치색은 빼고 시민에게 돌려주자. 나는 젊었을 때 광화문 인근에 살아서 매일 그 옆을 지나다녔다. 식수대 폭이 좁았지만 나무가 무성했고, 특히 가을 은행나무는 환상적이었다. 돌바닥광장이 아니라 풀과 나무로 채워진 공간으로 넓히면, 그늘이 있고 쉴 장소가 된다. 광장이 아니라 공원이 된다. 서울광장도 잔디밭이나 스케이트 링크를 없애고, 로터리 형식의 교통 시스템으로 환원하자.

 

 시장이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수고 만들고 다시 부수고 만드는 디자인 실험은 이제 그만두기 바란다.

 

등록일 : 2022-03-22 14:03     조회: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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