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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영의도시산책] 세종시는 정치 제물로 남을 것인가

이건영 *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 미국 노스웨스턴대 도시공학 박사 * 前 국토개발연구원 원장/ 건설부차관

[이건영의도시산책] 세종시는 정치 제물로 남을 것인가


(2022.05.02.세계일보 게재)

 

√ 인구 30만명대의 특별자치시


√ 인구 분산·국토 균형 명분 조성


√ 행정·정책 비효율… ‘길과장’ 속출


√ 반쪽 수도로 전락… 해결 숙제로



 세종시는 2012년에 출범한 특별자치시다. 인구는 30만명대인데, ‘특별자치시’란 모자부터 어울리지 않는다. 노무현정부 때부터 삽질을 시작해 행복도시(행정중심복합도시)라고 불렸다. 가운데 금강이 굽이치고 나지막한 전월산을 안고 있는 분지가 이제는 차츰 도시 모양을 갖춰가고 있다.


 고작 10년 사이에 이만한 도시를 후딱 만들어놓은 것은 우리 도시건설사에 획기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수도권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익힌 노하우 때문이다. 그래서 세종시도 수도권 신도시들처럼 빽빽한 고층아파트 도시가 됐다.


 도시 한가운데 정부청사가 5층 높이로 자리 잡았다. 용(龍) 모양을 형상화했다는 청사는 3.5㎞의 길이로 길고 구불구불하게 굽이친다. 그것을 초고층 아파트들이 성벽처럼 둘러싸고 있는 형상이다. 파격적이랄까, 기형적이랄까. 주변의 산세와 자연경관은 아파트의 벽으로 둘러싸인다.


 왜 세종시를 만들었나? 서울이 과밀하니 새 행정도시를 만들어 인구를 분산시키자는 것이었다. 수도를 국토 한복판에 두면 수도가 우뚝 솟고 나머지 지역이 고루고루 균형하게 될 것이라는 말은 꽤나 근사하게 들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놓은 달콤한 공약이었다. ‘수도권 억제’와 ‘국토 균형’이란 구호는 선거 때마다 표를 모으는 요술지팡이였다.


 그래, 우리도 수도를 새로 만들자. 서울서 고속철도로 고작 한 시간 거리. 미국이나 호주, 캐나다는 옛날 역마차가 다니던 농경시대에도 대도시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새로운 수도를 만들지 않았는가?


 그러나 돌이켜 보면, 참여정부 시절 서울 인구는 정점을 지나 조금씩 줄고 있었다. 그래서 수도권 억제를 위해 시행하던 공장입지 제한, 그린벨트 등 각종 규제를 서서히 풀고, 신도시를 조성하며 수도권 인구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던 때였다. 그런데 갑자기 ‘강제적 인구 소개(疏開)’ 쪽으로 방향을 튼 것부터 앞뒤가 안 맞는다. 슈퍼 갑(甲)인 행정부가 옮기면 민초 을(乙)들이 주르르 따라 나서고, 정부에 안테나를 꽂고 있는 기업들도 줄줄이 세종시로 향할까? 국가주의에 빠진 정치인들이 꾼 신기루였다.


 실제로 수도권에서 세종시로 이주한 고용인은 고작 1만7000명(2021년)과 그 일부의 가족들이다. 정부는 값싸게 매입한 논밭 자리에 고밀도 아파트숲을 계획해 원가를 낮췄다. 여기에 적당히 투기 바람을 불어 넣어 인근 대전이나 청주 시민들이 ‘집’을 찾아 몰려오도록 했다. 공무원들에게 특혜분양이란 아파트를 나눠주자 프리미엄이 붙어 팔려 나갔다. 결과적으로 세종시 인구 대부분은 주변 도시에서 ‘빨대효과’로 온 사람들이다.


 행정기능의 이전은 인구 유발 전·후방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발상부터 빗나간 정책이었다. 그런데 수도권 인구분산이라고? 숟가락으로 바닷물이 떠지겠는가?


 세종시에 유배된 공무원은 하루하루 고역으로 벼슬값을 치른다. 이들 상당수는 서울서 출퇴근한다. 수많은 통근버스가 새벽부터 줄이어 서울 지역 곳곳에서 출발하고 밤이면 돌아온다(청사 통근버스는 지역민들의 항의로 작년 말 폐지됐다). 월요일에 출근하고 그곳에서 기러기 생활을 하다 주말에 돌아오는 ‘이산가족’도 많다. 도시란 삶과 만남과 즐김의 터인데, 세종시는 권력과 의자와 콘크리트만의 건조한 도시가 됐다.


 행정이란 책상머리에 앉아 볼펜 굴리는 자리가 아니다. 안건 하나하나마다 관계 부처와 협의하고, 관계 기관 및 국회와 논의하고, 전문가의 자문을 받고 또 기업 등 민원인과 소통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정부 부처는 세종에, 의사결정을 하는 청와대와 국회는 서울에, 그리고 정책을 집행하는 공공기관들은 전국 곳곳의 혁신도시로 분산돼 있다.


 경제부처가 과천에 모여 있던 시절, 언젠가 부총리는 이렇게 탄식했다. “집무시간 중 3분의 1은 국회와 국무회의로 보내고, 3분의 1은 남태령 고개에서 허비하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은 고작 3분의 1입니다.” 지금은 물론 더 많은 시간을 길에 버리고 있다.


 장관들은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국무회의를 열고, 실무 국과장들은 장관들보다 더 많이 협의 차, 결재 차 서울로 오간다. 길국장, 길과장이라 불린다. 아예 협의나 자문 절차가 생략되기도 한다. 정보, 소통, 시간이 바로 경쟁력인 오늘날, 이 같은 비효율을 계속 무시할 것인가?


 수도 이전이란 것도 황당한 정치적 산물인데, 반만 이루어져 더 황당해져 버렸다. 그러나 지금 세종시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소모적이다. 세종시는 불가역적이다. 이미 20조원이 넘는 돈이 투자됐다.


 그렇다면 청와대를 비롯해 국회, 외교부 등 중앙기관을 모두 세종시로 옮겨서 명실공히 세종시를 수도로 만드는 것이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일 수는 있다. 비효율성도 많이 줄어들 것이다. 이미 세종시 원안에는 수도 기능을 위한 토지가 확보돼 있다. 그런데 그동안 정부는 위헌 타령만 하며 서울에서 청와대 중심 통치를 하는데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다음 주에 출범하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용산에서 집무를 시작한다. 영구적인지 임시인지 아직 밝힌 것은 없다. 행정기관들이 세종시에 떨어져 있으므로 ‘청와대 정부’가 ‘용산 정부’로 바뀔 것이다. 국회는 세종분원을 만든다지만 높은 분들은 여의도에 앉아 있고 보좌관 몇 명 분원에 파견할 것이다.


 정치 흥정으로 태어난 세종시는 아직도 우리에게 숙제로 남아 있다.


등록일 : 2022-05-03 16:29     조회: 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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