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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대통령은 '말의 점령자'型..회의발언 70% 독점해 참모들 입 막아

허민 *(現)문화일보 대기자/ 전임기자

尹대통령은 '말의 점령자'型..회의발언 70% 독점해 참모들 입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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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9. 문화일보게재)

 

 

■ 허민의 정치카페 - 대통령과 의사결정 

 

 

 현실 정치에서 대통령의 말은 때로 법보다 강하다. 대통령이 말의 무게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이고, 철저히 조율된 언어를 구사해야 하는 이유이며, 참모들과의 토론 때 의견을 독점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주요 국정 과제를 논의하거나 국가의 전략적 선택을 앞둔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자리라면 더욱 그렇다.

 

 윤석열 대통령은 ‘말의 점령자’다. 여권 핵심 인사에 따르면 그는 워낙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또 말하고야 마는 스타일이다. 8일 휴가를 마친 출근길 도어 스테핑 자리에서 “1년여 전에 정치를 시작했다”고 고백했듯 그는 정치 초짜다. 대선 전 국정 경험이나 훈련 기회를 전혀 갖지 못했던 그의 통제되지 않은 메시지는 국정 운영에 심각한 혼선과 장애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사례가 쌓일수록 국정 지지율은 추락한다.

 

◇술탄의 빈자리

 

 14세기 이후 적어도 500년 이상 광대한 대륙을 경영했던 오스만제국 시절. 제국의 최고 회의체인 ‘디반’의 토론방에 최고 통치자 술탄의 자리는 없었다. 회의장에 모인 정치·종교 지도자들과 현인들이 술탄의 존재를 의식해 토론을 제대로 벌이지 못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다. 눈빛마저 숨겨야 했던 술탄은 회의장 부근의 다른 공간에 머무르면서 옆방에서 논의되는 토론 내용을 경청한다. 토론이 끝나면 술탄은 비로소 디반의 방으로 와 결론을 내린다.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일대까지 광범위한 영토를 개척했던 제국 경영은 이런 훈련 속에서 유지될 수 있었다.

 

 미국의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강조했던 대통령의 과제는 두 가지다. 천하 인재를 모으는 것, 그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도록 해주는 것. 그의 어록 “The buck stops here”라는 말의 참뜻은 대통령이 “모든 결정을 내가 한다”가 아니라 “모든 책임을 내가 진다”는 것이다. 당시 국무장관 딘 애치슨은 “트루먼에게는 리더의 최대 걸림돌인 교만이 없었다”고 했다. 트루먼독트린과 마셜플랜, 한국전쟁 파병 등을 통해 전후 세계 질서를 주도하고 ‘팍스 아메리카나’를 열어젖힌 지도력은 이 같은 의사결정 과정 속에서 탄생했다.

 

 ‘참모는 토론하고 리더는 책임지는’ 이 같은 방식은 조선조에 한때 왕성했던 국정 토론의 장 ‘경연’에서도 확인된다. 왕과 관료와 학자들은 경연에서 국정 과제를 공유하고 합의된 해결책을 도출했다. 경연이 기본적으로 왕이 공부하는 자리였던 만큼 국왕의 독주와 오만에 따른 오류는 피할 수 있었다. 경연에 가장 열의를 가졌던 왕은 세종이었다. 그는 재임 32년간 1898회, 연평균 60여 회씩 배우고 익히면서 조선의 부흥기를 일궈냈다. 경연을 가장 피했던 왕은 임진왜란을 초래한 선조다.

 

◇말의 점령자 尹

 

 윤 대통령은 토론을 주도할 뿐 아니라 가르치려 한다. 경험자들에 따르면 참모들과 함께 하는 수석비서관회의 등 현안 논의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언어를 점령한다. 자리를 비워 표현의 자유시장을 열어놓은 술탄의 배려도, 참모들이 ‘빡세게’ 토론하도록 독려했던 트루먼의 지혜도 통하지 않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 비중이 70%는 될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토론 주도는 왜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첫째, 생산적 토론을 막는다. 대통령의 말은 무겁다. 내뱉는 순간 부처와 관료사회의 가이드 라인이 된다. 참모나 장관이 다른 생각을 밝히기 어려우면 생산적 토론이 될 수가 없다. 둘째, 잘못된 결론을 내기 쉽다. 자신만의 ‘뇌피셜’로 토론을 주도할 경우 합리적 의사결정 가능성은 줄어든다. 국정 경험이 없는 정치 아마추어 출신 대통령이 주도하는 토론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출입기자들과 갖는 도어 스테핑 메시지 관리도 안 되긴 마찬가지다. 잇단 실언에 참모들이 마음을 졸이는 데도 최근 윤 대통령은 ‘예상답변 없는 예상질문’만 요구한다고 한다. 대답은 알아서 하겠다는 태도다. 선진국 정상들이 도어 스테핑 전에 치밀한 각본을 마련하고 ‘웃음 포인트’까지 준비하는 것과 대조된다. 한 참모는 “대통령이 억울한 것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다”고 했다.

 

 결국 문제는 말을 점령하는 대통령의 통제되지 않는 입이다. 아무리 메시지 전략을 세워봤자 실행이 담보 안 되는 것이다. 물론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윤 대통령에게는 술탄의 지혜를 더해주는 현인들도, 트루먼의 경륜을 풍부하게 하는 인재들도, 세종의 독주를 막아주는 책사들도 찾기 힘들다.

 

◇의사결정의 모델

 

 국가 경영을 위한 의사결정 설명 모델엔 3가지가 있다. 합리적 행위자 모델, 조직과정 모델, 그리고 관료정치 모델이 그것이다. (그레이엄 앨리슨 & 필립 젤리코, ‘결정의 본질’)

 

 합리적 행위자 모델. 의사결정 주체는 최고 지도자로 수렴되는 국가 혹은 정부라는 관점을 갖고, 조직 구성원은 이 목표를 공유하며 합리적 결정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참여자들은 전략적 목표를 극대화하는 대안을 채택하려 한다. 국가 전체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는 공감대가 강하며 이해관계 충돌은 거의 없다.

 

 조직과정 모델. 정부나 국가를 반(半)독립적인 조직들의 집합체로 보고, 조직 내부 운영 절차에 의해 국가 정책을 결정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모델이다.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조직들은 서로 다른 목표를 갖고 결정 과정에 임하므로 갈등이 불가피하지만, 이를 결정 과정의 ‘합리적 제약’으로 간주한다.

 

 관료정치 모델. 국가 운명이 구성원 간 경쟁·타협·조정·연합·지배 등 정치적 게임에 달렸다고 본다. 개개인 참여자 간의 정치적 거래의 결과가 결국 해결책이 된다는 관점이다. 참여자 개인은 자신이 지닌 정치적 자원을 적극 활용하지만 정치적 게임의 규칙을 지키며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한다.

 

 

 국가 운명을 가를 전략적 선택, 대통령의 결정, 최고 지도자의 메시지는 이들 각 층위에서 ‘밀당’을 벌이는 모델들의 유기적 총합으로 설명될 수 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의사결정 속에서 전략적 목표를 극대화하려는 고뇌도, 조직 상호 간의 합리적 제약에 대한 이해도, 정치적 게임 규칙에 따른 경쟁·타협·조정도 엿보기 힘들다는 건 비극이다.

 

◇국정 동력 살리려면

 

 취임 석 달 만에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20%대로 떨어졌다. ‘지지율의 법칙’에 따르면 국정 동력 상실을 막으려면 적어도 35%가 필요하고, 안정적 국정 동력을 확보하려면 55%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지금은 국정 동력 붕괴 수준이다. 윤 대통령이 국정 동력을 회복하려면 말의 점령 욕구를 버리고, 더 배우고 익히면서 철저히 조율된 메시지를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용어 설명

 

‘디반’은 오스만제국(1299∼1922) 시절 궁정회의. 국가 최고 행정·사법기관으로 최상의 지위를 누림. 제국의 전성기인 술레이만(1494∼1566) 대제 시기에는 일주일에 네 번 소집됨.

 

‘결정의 본질(Essence of Decision)’은 그레이엄 앨리슨과 필립 젤리코가 쓴 ‘쿠바 미사일 위기’ 극복 사례연구. 케네디 미 행정부 시절의 의사결정 과정을 분석하는 세 가지 모델을 제시함.

 

■ 세줄 요약

 

술탄의 빈자리 : 오스만제국의 최고 회의체인 ‘디반’에 최고 통치자 술탄의 자리는 없음. 자유토론을 위한 배려임. 역사 속의 트루먼이나 세종도 ‘참모는 토론하고 리더는 책임지는’ 의사결정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함.

 

말의 점령자 尹 : 대선 전 국정 경험이 전혀 없었던 윤은 회의 발언 70%를 독점하는 ‘말의 점령자’로 알려짐. 토론을 주도하고 참석자들을 가르치려 함. 이는 생산적 토론을 막고 잘못된 메시지로 국정 혼선을 부를 수도.

 

의사결정의 모델 : 윤의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진 상황이어서 국정 동력 회복이 시급. 윤 주변엔 현인도 책사도 찾아보기 힘듦. 윤이 욕심을 버리고 토론에서 배우면서 타협·조정하는 의사결정의 모델을 만들어야.


등록일 : 2022-08-10 13:55     조회: 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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