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고 싶다"던 文, '과다 노출'.. 사법 방탄·친문 권력 재창출 노려
(2022.08.23.문화일보게재)
■ 허민의 정치카페 - 문재인 ‘퇴임 후 정치’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자기 노출’이 멈추지 않는다. “퇴임 후 잊히고 싶다”던 그였지만 ‘폭풍 SNS’에 몰입하고, 전·현직 의원 등 정치인들의 방문도 꾸준히 이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금 ‘퇴임 후 정치’에 몰두 중이다.
문 전 대통령의 노출은 자신의 집권 5년 기간을 견고하게 지탱해준 친문 팬덤 지지층을 향해 있다. 시기적으로는 윤석열 정부의 집권 초 반부패 전방위 사정 및 여야의 주류세력 교체 시점과 맞물려 있다. 이는 그의 퇴임 후 정치가 한편으로는 자신의 사법 리스크에 대비한 방탄 전략이자 궁극적으로는 친문 권력의 부활을 노린 고도의 정치 행위란 것을 말해준다.
◇자기 노출
문 전 대통령은 임기 말에 여러 번에 걸쳐 “잊힌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 “퇴임 후 정치에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했었다. 하지만 막상 그의 손가락은 쉬지 않는다. 트위터, 페이스북, 심지어는 1020이 주 고객인 인스타그램을 오가며 ‘폭풍 SNS’를 하는 중이다.
그가 현직에서 물러난 후 100일간, 5월 10일에서 8월 17일까지 3개 SNS 계정에 올린 게시물은 인스타 20개, 페북 26개, 트위터 33개 등 79개나 된다. 낙향 후 보름 남짓 이삿짐 정리와 휴식 기간을 가졌던 점을 감안하면 평균 하루 한 번씩 SNS 계정에 글과 사진을 올린 셈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서는 물론, 70세에 이른 연령층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왕성한 활동량이다.
미국의 비평가 겸 작가 웬디 레서는 “글쓰기의 결정적 기술은 글쓴이가 자기 노출을 절묘하게 통제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자기 검열 없는 노출은 정상적 ‘소통’을 넘어 병적 ‘과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에서도 SNS의 영향력과 공적 기능이 커지는 추세에서 전직 대통령의 자기 노출은 그 자체로 정치 행위라는 말이 나온다. 그것이 과다 노출이라면 병적인 정치 행위다.
문 전 대통령의 사저에는 오종식 전 기획비서관, 신혜현 전 부대변인, 박성우 전 연설비서실 행정관 등 청와대 시절부터 함께 해온 메시지·공보팀이 합류했다. 이들이 평산마을 비서팀을 꾸려 보스의 왕성한 손놀림을 돕는 중이다.
문의 퇴임 후 정치를 빛내주는 또 하나의 요소는 정치인들의 줄 방문이다. 문 정부 시절 함께 했던 청와대 인사들,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현직 의원과 당직자들이 앞다퉈 사저를 방문해 인증샷을 올리고 있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는 더 많은 정치인이 양산에 내려가고 문 전 대통령의 메신저임을 자처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법 방탄
문 전 대통령이 맹렬하게 퇴임 후 정치와 사저 정치에 몰두하는 첫 번째 목적은 두말할 나위 없이 사법 리스크 회피에 있다.
문재인 정부와 청와대는 집권 시절부터 ‘청와대 울산시장 하명 수사’ ‘산업부 블랙 리스트’ ‘서해 공무원 피살’ 등 정치·경제·안보 영역을 망라해 숱한 불법 비리·부패 의혹을 받아 왔다. 당시 여당인 민주당은 문 대통령의 임기 말이 다가오자 새 정권의 전 정권 수사를 막기 위해 민형배 의원 위장 탈당, 국회 법사위원 편법 사보임 등 위법·불법적 요소로 가득 찬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을 강행했다.
전 정권을 겨냥한 반부패 사정은 실제 상황이 되는 형국이다. 검찰은 최근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과 ‘귀순 어민 강제 북송’ 사건과 관련해 세종시에 있는 대통령기록관을 압수 수색했다. 두 사건 모두 당시 청와대를 넘어 문 전 대통령을 겨냥하는 성격이 큰 만큼 전 정권 핵심을 향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 전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 회피 행태는 본능적인 것일 수도 있다. 집권 당시 전 대통령 세력은 물론 전전 대통령 세력까지 겨냥해 적폐청산의 칼을 휘둘렀던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자기방어 심리라는 것이다.
정중규 정치평론가는 페북 글을 통해 “잊히겠다던 사람이 SNS 활동에 적극 나선 건 재임 기간 (자행된) 각종 권력형 비리에 대한 사정의 칼날이 본인을 향하고 있음을 동물적 본능으로 직감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지지자를 결집해 운명의 그날을 대비해 생사를 건 공중전을 치르려 준비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권력 재창출
친문 세력의 권력투쟁 욕구는 천부적이다. 이들은 스스로 김대중-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진보 정치의 정통 계보를 잇는 유일 세력이라고 생각한다. 열광적인 친문 팬덤에 포위된 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정치를 벌이는 두 번째 목적은 결국 친문 기득권의 확대 재생산과 그 종착지로서의 권력 재창출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 집권과 더불어 여당을 친윤(친윤석열) 중심으로 구조조정 중이고, 야당인 민주당은 이달 말 전당대회를 계기로 당의 중심이 친문(친문재인)에서 친명(친이재명)으로 급속히 재편 중이다. 여야가 모두 주류세력 교체를 겪는다는 건 친문 세력이 권력 재창출을 위해 두 개의 권력을 넘어야 한다는 걸 말한다. 하나는 윤석열 정부라는 현재의 권력, 또 하나는 차기 당·대권에 바짝 다가선 이재명 중심의 미래 권력.
문 전 대통령은 퇴임 때 “내가 다시 한 번 대통령 할까요”라고 능청스럽게 말했다. 농담으로 치부됐지만 속마음을 털어놓은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권력투쟁에 능한 친문은 이재명 의원이 당 대표가 된 이후 사법 리스크로 몰락할 때를 기다려 문 전 대통령을 앞세워 친문 권력 재창출을 꾀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여야 정치권에서도 문 전 대통령의 왕성한 자기 노출을 권력 의지와 연결짓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 전직 대통령이 휴가 간다며 물놀이하는 사진과 일정까지 SNS에 올리는 경우는 없었다. 수도권 출신의 민주당의 원로 정치인은 “퇴임 후 낙향한 전임 대통령이 잊힌 삶을 살겠다고 했지만, 실은 후일을 내다보고 강력한 사저 정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출된 잊힘
전직 대통령이 자기를 세상에 부단히 노출하면서 동시에 ‘잊힌 삶’을 살겠다고 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그건 벌거벗고 도심 한가운데서 시위하면서 ‘잊어달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없다.
전직 대통령의 노출은 정치적이다. 열광적인 팬덤을 갖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문 전 대통령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문 전 대통령은 지금 지지층을 향해 자신을 사법 리스크로부터 지켜달라고, 친문의 영광을 재현하는 일에 동참해달라고 끊임없이 호소하는 중이다.
■ 세줄 요약
자기 노출 : 문재인 전 대통령이 왕성한 ‘자기 노출’ 중. ‘폭풍 SNS’를 하거나 정치인들의 줄 방문을 받는 등 ‘퇴임 후 정치’를 하는 것. 하지만 자기 검열 없는 과다 노출은 정상적 ‘소통’을 넘어 병적 ‘과시’가 될 수 있음.
사법 방탄 : 문이 사저 정치에 몰두하는 첫 번째 목적은 사법 리스크 회피. 현재 윤석열 정부의 반부패 사정이 시작됨. 재임 시 전직 대통령들에게 적폐청산의 칼을 휘두른 문의 퇴임 후 사법 리스크 회피는 본능적인 것.
권력 재창출 : 여야가 모두 주류세력 교체 중임. 문이 퇴임 후 정치를 벌이는 두 번째 목적은 친문 기득권의 확대 재생산과 권력 재창출임. 전직 대통령이 자기를 부단히 노출하면서 ‘잊힌 삶’을 살겠다는 건 불가능함.
■ 용어 설명
‘자기 노출’(self-disclosure)은 개인의 신상에 관한 감정·생각 등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심할 경우 자기과시(self-display)나 자기현시 같은 병적 증상이 될 수 있음.
‘웬디 레서’(Wendy Lesser)는 미국의 비평가 겸 작가이며 예술 분야 저널 ‘The Threepenny Review’의 창립 편집자. 절제된 문체로 건축가 루이스 칸의 전기를 써 ‘마필드 상’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