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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영의도시산책] ‘지역균형발전’이란 이름의 허상

이건영 *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 미국 노스웨스턴대 도시공학 박사 * 前 국토개발연구원 원장/ 건설부차관

[이건영의도시산책] ‘지역균형발전’이란 이름의 허상


(2023.01.09_문화일보게재)

 

 

 지방에 활력이 없다. 인구는 줄어들고 노령화가 빠르게 오고 있다. 수도권의 산업은 세계 시장에 맞서 첨단화하는데, 지방 도시는 뒤쫓기 벅차다. 아직도 저임금 노동집약적 산업구조가 바탕이다. 일자리를 찾아온 외국인 노동자들만 기웃거린다. 그래서 지방 도시는 서울만 쳐다본다.

 

 서울은 한때 블랙홀이었다. 인구뿐 아니라 행정, 문화, 교육, 산업까지 빨아들였다. 서울은 만원이었다. 그래서 고도성장기에 한동안 수도권 성장 억제 정책을 추진하였다. 대기업의 산업 입지를 통제하고, 건축물 높이를 제한하고, 공공기관 청사를 금하고, 대학생 정원을 억제하였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강력한 규제였다.

 

 21세기 들어 서울 인구는 감소세로 돌아섰다. 1090만명으로 정점을 찍고 그 이후 150만명이 줄었다. 서울과 수도권에 대한 규제도 상당 부분 풀렸다. 수도권을 억누르기보다 지방 발전을 부추겨 균형을 도모하자는 취지였다.

 

 수도권 정책이 다시 뒤집힌 것은 노무현정부 때였다. ‘선거에 재미 좀 보겠다’고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고, 강제적 인구 분산 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실로 기묘한 표(票)퓰리즘 정책이었다. 수도를 휴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전하려 했고, 지방 곳곳 허허벌판에 서울에서 밀려난 공공기관을 수용하기 위한 혁신도시를 건설하게 된다.

 

 지금까지 150여개 공공기관이 수도권에서 지방 각지로 이전하였고, 대략 4만명의 직장이 지방으로 유배되었다. 나는 이 자리에서 혁신도시가 실패한 정책이라고 논한 바 있다(2022년 4월12일자 참조). 그런데 윤석열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수도권에 남은 360여개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겠다고 한다(국가균형발전위원회 발표). 기관에 따라, 또 지역적 특성이나 기업적 측면, 업무 효율성에 따라 입지 요건이 다를 터인데, 이들을 전부 지방 각지로 보내는 것은 참으로 황당한 정책이다.

 

 그동안 이들이 이전하고 비운 자리는 아파트나 다른 기업이 들어와 다시 인구를 유인하는 결과가 되었으니 인구 분산책이 무색해졌다. 과거 1980년대 대대적인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추진한 바 있다. 그러나 업무 비효율을 감당할 수 없어 상당수 기관이 다시 서울로 돌아온 선례가 있다.

 

 아무리 지방이 낙후되었다 해도 지역마다 중앙기관 몇 개와 딸린 식구들을 나눠주어, 그것이 씨앗이 되어 지방 발전을 이루자는 것은 유치한 발상이다. 도로공사가 김천에서, 한국전력이 나주에서, 토지주택공사가 진주에서 그 지역을 위해 무슨 일을 하겠는가? 중앙기관이 특정 지역에 특혜를 베푼다면 배임이 될 것이다. 이름하여 혁신도시, 이념적 정권의 도시 실험일 뿐이다. 아마도 굵직한 정보기업이나 물류산업이 기반산업으로 자리 잡았다면 관련 회사와 종사자 등으로 2차, 3차의 승수 효과가 따라왔을 것이다.

 

 과거 낙후 지역이라는 허허벌판에 도청 신도시라는 걸 만든 적도 있다. 전남, 충남, 경북도청의 경우다. 청사만 호화롭게 지어놓고(특히 경북도청), 도청에 안테나 꽂고 있던 지방 기업이 몇몇 따라갔지만, 기존 도시는 쇠퇴하고 도청 이전으로 새로운 부가가치가 창출된 것이 아니다. 도청사가 도민 곁으로 가야지 왜 외진 곳으로 가는가?

 

 우리는 ‘지역균형’이란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중앙에 집중된 기능을 지방에 골고루 분배해야 균형이 잡힌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구 8만 나주시에 종업원 2만3000명 규모의 한전을 밀어넣고, 국민 돈 900조원을 세계 금융시장에서 굴리는 국민연금공단을 정보 사각지인 전주 변두리로 보냈다. 지방에 엉뚱한 비행장을 만들고 철도를 뚫고 신도시를 건설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큰 것은 작게, 작은 것은 크게 만드는 것이 균형일까? 대도시는 대도시답게, 지방 도시는 지방 도시답게, 농촌은 농촌답게 만드는 것이 균형 아닐까? 고즈넉하고 주변 자연과 어울린 풍광을 보여야 할 혁신도시들에는 고층 청사와 고층 아파트로 뒤덮인 ‘서울스러움’이 넘친다.

 

 전국 곳곳에 흩어진 과학산업단지라는 것도 비슷하다. 첨단, 융합, 테크, 바이오 등 야릇한 수식어가 붙은 십여 군데 산업단지들이 골고루 배당되었다. 과학기술단지는 정보와 지식의 공유, 시너지 효과가 중요하다. 그래서 선택과 집중이 필수다. 그런데 우리는 다발적 점조직이다. 모두 합쳐 봐야 실리콘밸리나 대만의 신주(新竹)단지 하나만도 못하다. 일본은 1970년대부터 전국 15곳에 산발적으로 테크노밸리를 조성하였다가 잃어버린 30년을 보내며 제대로 된 성과가 없다.

 

 지방 발전을 위해서는 공공기관 같은 행정사무 기능보다 경제 기능의 분산이 효과적이다. 지방은 지역 특성에 맞는 도시의 미래상을 그리자. 그동안 수도권이 산업의 창업과 인큐베이터 역할을 독점해 왔다. 이제 지방은 수도권의 산업이나 유턴 기업을 잡을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들 기반산업에서 창출되는 고용과 아웃풋이 관련 서비스업으로 승수 효과를 가져와 지방경제의 틀이 되는 것이다.

 

 문재인정부는 혁신도시 정책을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접었던 듯싶다. 아무리 ‘노무현의 유산’이라 해도 국가 공적 기능의 경쟁력 약화라는 부작용을 무시할 수 없었으리라. 그런데 윤석열정부에서 다시 이를 꺼내 ‘노무현 시즌2’를 추진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좁은 나라에서 인구의 제로섬게임은 지역균형 정책이 빠진 함정이다.


등록일 : 2023-01-10 13:12     조회: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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