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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소리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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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 열심히 일한만큼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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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된다”와 “해봤어?”

이승훈 *바른사회운동연합 공동 대표 * 서울대 명예교수

“하면 된다”와 “해봤어?”

 

(2023.02.03_자유칼럼그룹게재)

 

 아침에 총소리가 요란하더니 정규 프로 대신 ‘혁명 공약’이 방송을 탔지요. 그 시절 한국은 인구의 70%가 농촌에 거주하고 100달러도 안 되는 1인당 GNP는 농업 생산에 40% 이상을 의존했지요. 그 가난하던 나라의 2022년 GDP가 1조9천억 달러로 세계 10위랍니다. 국력으로는 순위가 더 높은 세계 6위라고도 하네요. 이 엄청난 변화를 살면서 직접 보고 경험한 축복은 동서고금을 통해 우리나라 우리 세대만이 누린 특권일 겁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즐겁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개발 정책은 불안하고 의심쩍었기에 신뢰가 가질 않았습니다. 와우아파트 붕괴, 광주(廣州) 대단지 폭동, YH무역 폐업 사태, 그리고 대형 산업체들의 부실화 등 눈에 보이는 사건은 급증하는 외채가 드리우는 불길한 예상과 맞물려 매 순간이 불안했지요.


 그런데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전력 공급을 확대하면서 포항제철이 성공하고 대형 조선소와 자동차 공장이 등장하였습니다. 석유화학산업이 합성수지를 생산하고 전자산업이 반도체와 가전제품을 생산합니다. 헐벗은 민둥산에 울창한 삼림이 들어섰고 홍수와 가뭄에 속수무책이던 하천도 잘 정비되었습니다. 불과 30여 년의 세월이 보여주는 기적의 성취입니다. 사실 박정희는 기회 있을 때마다 조국 근대화를 거론하였고 개발 사업을 착수할 때마다 그 계획의 일환임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사업계획이 너무 터무니없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국내 차량 대수가 얼마라고 고속도로를 까는가, 우리 기술력으로 세계적 규모의 제철소를 감당할 수 있는가, 이미 선진 열강이 시장을 완전히 선점한 자동차 시장에 우리가 끼어들 틈이 있는가 등등 되지도 않을 일에 외국에서 빚낸 돈을 때려 넣는 사업들이 결국 망국의 지름길일 것이라고 우려하는 반대가 빗발쳤지요. 경륜도 없는 군부가 총칼로 탈취한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근대화라는 명분을 들먹일 뿐이라는 의구심도 컸습니다. 국민을 설득하려고 박정희가 내세운 구호는 ‘하면 된다’였는데 그때마다 또 되지도 않을 무모한 사업을 벌이려는구나 라는 반발도 만만치 않았지요.


 박정희가 “하면 된다”라는 구호로 산업화를 독려할 때 정주영은 “해봤어?”라는 말로 직원들을 질책했습니다. 두 말 모두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지를 담고 있고, 실제로 두 분 모두 엄청난 일을 해냈지요. 현대그룹에서 임원으로 퇴임한 친구는 재직 시에 수시로 회장이 말도 안 되는 지시로 볶아대는 통에 죽겠다는 소리를 자주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하면 안 될 일을 “해봤어?”라고 닦달한다는 거지요. 그러던 친구가 언젠가는 야단맞는 세월을 견디고 지내보니 신기하게도 영감님 말대로 되어 있더라고 감탄하더군요. 전체 사업계획을 알고 있는 회장과 그중 한 꼭지만 책임진 임원의 차이로 보였습니다. 전체 시스템의 작동을 모른 채 한 부문의 작동만 보면 회장 지시가 말도 안 된다고 느껴지겠지요.


 박정희와 정주영 사이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끝낸 정주영은 막 시작한 자동차 조립사업에 전념할 계획이었답니다. 고속도로까지 뚫렸으니 자동차 산업의 수익성도 한결 좋아졌지요. 그런데 고속도로 건설에서 정주영의 유능함을 눈여겨본 박정희가 수만 톤급 대형 선박을 건조하는 조선소를 건설해 보라고 권하더랍니다. 선박 건조에 전혀 무지한 정주영은 큰일 났다 싶었지요. 초대형 중공업에는 엄청난 투자가 필요한데 생각도 해보지 않은 조선 사업에 덥석 뛰어들었다가는 자동차 사업을 위해 모아두었던 자본마저 모두 날릴 판이었지요.


 박정희가 요구한 사업계획서 대신에 정주영은 왜 당시 한국이 조선업에 착수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보고서를 준비했더랍니다. 그러나 브리핑 차트 첫 페이지를 본 박정희는 보고를 중단시키고 부총리에게 새 업자를 물색하고 현대에 제공하던 대출을 모두 중단하고 회수하여 새 사업자에게 돌리라고 지시했답니다. 더 큰일 난 정주영은 싹싹 빌고 조선 사업을 떠맡았다지요. 이상은 오원철 전 경제수석한테서 들은 말입니다.


 당시 박정희는 알고 정주영은 몰랐던 일이 포항종합제철 건설이었습니다. 포철 역시 기술과 자금 때문에 월드뱅크나 서독 정부가 협조를 거부하는 가운데 일본의 협력을 겨우 얻어내어 막 시작한 사업이라 성공 여부가 불투명했지요. 그런데 일단 철강재를 생산하기 시작하면 판로가 있어야지요. 박정희는 조선 사업을 선박 건조만이 아니라 철강재의 판로로 보았기에 꼭 필요하였고 이를 고려할 필요가 없는 정주영은 선박 건조의 수익성만 걱정했던 겁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박정희는 철강과 플라스틱의 양대 소재 산업을 중심축으로 삼는 산업 건설을 구상하였던 것 같습니다. 1960년대 농경 중심의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 고속도로를 뚫고 제철소를 세우고 석유화학 단지를 건설하여 제조업에 소재를 공급할 체제를 갖춥니다. 그러면서 조선소, 자동차 공장, 전자 공장, 그리고 기계공장 등이 들어서도록 유도하면 엄청난 규모의 산업화가 눈에 잡힙니다. 산업 강국 건설은 20년이면 성공하기에 충분한 기간이었을까요? 서로 물고 물리는 유기적 관계 속에서 추진해야 하므로 마스터플랜이 없었다면 불가능합니다. 외국인들은 한강의 기적이라고 말하지요. 너무나 터무니없이 엄청난 구상이라 믿지 못하는 국민을 향해 “하면 된다”라고 외쳐댄 박정희는 무척 고독했을 겁니다.


 독재자 박정희는 1962년 5월부터 1979년 10월까지 17년 3개월간 집권하였습니다. 그의 구상을 극히 일부 사람들만 공유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에 8년만 재직하였다면 한강의 기적이 가능했을까요? 물론 유신만 하지 않았더라도 1975년까지는 집권했을 것이고 본인은 물론 육영수 여사의 피격도 면할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너무 가난했고 그의 구상과 추진력은 너무 위대했습니다. 중간에 손을 놓고 물러나기가 쉬웠을까요? 욕 들을 소리지만 그의 독재를 마냥 비난만 하기도 어렵네요.


 나는 대학생 때 3선개헌을 반대하다가 취업도 못 하고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꾼 전력이 있습니다. 88올림픽 때까지만 해도 산업화의 성공을 반신반의했었습니다. 쌀값 급등이 쌀 소비 때문이라는 정부 주장에 농촌의 공급 능력 강화로 대처하라는 함석헌 옹의 반박을 적극 지지했습니다. 산업강국을 추구한 박정희의 원대한 구상은 너무 터무니없어서 아예 들어보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박정희는 “하면 된다”를 외치면서 정말 고독했을 것 같습니다.  


등록일 : 2023-02-06 오전 9:00:00     조회: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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