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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소리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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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 열심히 일한만큼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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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남불’과 그 되치기가 주는 희망

이승훈 *바른사회운동연합 공동 대표 * 서울대 명예교수

‘내로남불’과 그 되치기가 주는 희망


(23.02.24_자유칼럼그룹게재)


 절대빈곤에 시달리던 나라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 새로 등장한 주인들이 저마다 나섭니다. 이들의 자유로운 언동은 백가쟁명이라 때로는 진취적 추동력인 듯 역동적이다가 때로는 말세적 무질서로 일탈할 듯 위태위태합니다. 사람마다 거침없이 자기 이익을 요구해대는데 누구 말이 옳고 어떤 의견이 맞는지 판정해 오던 권위는 무너졌습니다. 세상은 전통적 기준을 부정하면서 새 시대를 향해 소용돌이칩니다.


 민주사회의 의사결정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동조자의 숫자로 판가름 나지요. 최종 결정이 날 때까지는 저마다 물러서지 않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소득을 다 써야 겨우 생존하던 시절의 사람들은 모두 덜 거두어 가는 성군을 원했는데 ‘등 따시고 배불러’지면 먹고 남는 여유 재부를 두고 의견이 부딪칩니다. 그러나 백인백색의 이견도 결국 시장 중심의 우파와 복지 중심의 좌파로 나뉘지요. 이념이 같은 사람들은 함께 모여 진영을 이루고 더 많은 지지를 얻기 위해 공동전선을 폅니다. 이들 간 이념 대립은 논쟁을 넘어 혁명과 전쟁 등 대형 유혈사태까지 부르기도 합니다.


 살벌한 대립 속에서도 민주국가의 정치권력은 선거에서 다수가 선출한 정파의 몫입니다. 승리한 정파는 표방 이념을 실현할 통치권을 행사하고 그 위세로 크고 작은 사적 이익도 누립니다. 서로 집권하려고 다툴 터이니 진영 간 대결은 적대적이기 마련이지요. 그러나 모두가 선거를 치르는 절차를 지키고 존중하며 선거 결과에 승복하는 사회의 정쟁은 건강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우파는 독재로 산업화를 이끌었고, 좌파는 이에 맞서 싸워 민주화를 이루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파는 심심찮게 기득권 옹호로 일탈하였고 좌파는 산업화의 성과조차 부정하는 무리수를 저질렀지요. 양측의 공방은 주로 과거의 잘못을 들출 뿐 미래 비전은 천박하여 정쟁 대상조차 되지 못합니다. 옳고 그름을 명분으로 내세우기는 하지요. 그러나 가짜뉴스와 선동으로 내 잘못은 덮고 상대의 잘못만 까발리니 대결이 살벌할 수밖에요. 주인 된 지 얼마 안 되는 국민 상당수는 옳건 그르건 질기게 나가면 이긴다는 생각에 빠져 팬덤을 만들어 몰려다닙니다.


 무슨 재단을 설립하는 데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에게 출연을 부탁하는 일은 ‘미르재단’ 사건 이전까지는 관행이었지요. 자녀의 입시용 스펙을 부정하게 조작하는 일도 대학 입학에 수시가 등장한 이후 널리 퍼진 관행이라더군요. 못살던 시절의 법치는 턱없이 관대하여 일부 탈법을 관행화했지요. 소득과 함께 국민의식이 높아지면 그때마다 관행을 버리든가 합법화하는데, 그 단계에 이르면 버려질 관행을 따랐던 삶은 졸지에 위험에 처합니다. 누구든 작심만 하면 범죄자로 낙인찍기 쉬우므로 미움을 많이 받는 사람은 특히 위험하지요. 같은 짓을 한 다른 사람들은 멀쩡한데 유독 자기만 당한 박근혜와 조국은 매우 억울할 겁니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짧은 시간 내에 적지 않은 탈법적 관행이 수시로 생겼다 사라졌습니다. 절대빈곤을 퇴치한 산업화는 독재의 성과인데 그 때문에 ‘등 따시고 배불러’진 국민이 주인으로 나서서 독재를 퇴치한 민주화는 그 자체가 역설입니다. 역설이 기본인 사회에서 옳고 그름은 힘을 잃습니다. 탈법을 관행으로 알고 살았는데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판정한들 누가 승복하나요? 지난날의 행태를 트집 잡고 반격하는 공방도 ‘내로남불’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모순 속에 혼란스러운 대중은 이기려면 옳기보다 질겨야 한다고 확신하지요. 내 편만 챙기는 팬덤 활동이 곧잘 이성을 잃은 듯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일 겁니다. 


 역사는 인간의 일이라 결국 잘못을 저지르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저지른 잘못을 그대로 반복하면 발전이 없지요. ‘내로남불’은 똑같이 잘못한 주제에 내 잘못은 없는 척 남의 잘못만 들춥니다. 혐오스럽지만 “너도 그랬잖아”라는 반격에 굴복하면 탈법이 관행이던 시절의 체념적 ‘내로남로’로 후퇴합니다. ‘내로남불’의 공방이 오가고 이성을 잃은 팬덤들이 편싸움을 벌이는 현 상황은 이상적 입법 취지와 현실적 탈법 관행이 빚는 모순이 겪어야 할 숙명입니다. 그동안 비겁한 ‘내로남로’가 덮어온 현실의 모순을 뻔뻔한 ‘내로남불’과 그 되치기가 만천하에 공개하는 중이지요. 이전투구에서는 질기면 이깁니다. 그러나 모두가 이 꼴에 식상한데 사람들의 이성이 언제까지나 옳고 그름의 기준을 포기하는 사태를 방치할까요?


 정책 대결도 혼란스럽습니다. 문재인 정부 5년은 박정희 이래의 성장 중심 정책에 맞서서 더 나눌 때 경제활력이 더 강해진다는 주장을 실험하기 위해 대대적 적자재정을 펼쳤습니다. 부동산, 에너지, 재벌, 그리고 노동 등 그동안 좌파 지식층이 주장하던 모든 정책을 거의 마음껏 시도했습니다. 이전 정부가 미처 돌보지 못하던 사각지대를 감싸게 된 것은 좋은 성과입니다. 그러나 2021년 국가 총부채비율은 4년 만에 48.5%포인트나 오른 266.3%에 이르렀습니다. 성장을 무시하고 마구 써대면 어떤 곳간도 거덜 나지요.


 한국 사회는 자기 책임과 이웃 배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 때문인지 정당의 미래 비전은 한마디로 천박합니다. 성장이나 분배를 주장해도 내용 없이 구호에만 그치는 일이 다반사지요. 우파는 문재인 정부 이전까지는 자유를 내세웠다고 강변하나 정부가 기득권 집단에 내린 특혜도 만연하였습니다. 진정한 자기 책임의 시대는 아니었지요.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서 ‘본격적’ 이웃 배려에 나섰으나 큰 성과 없이 배려에 쓸 재원과 잠재력만 탕진한 꼴입니다.


 각자 책임지는 삶이 무엇인지와 이웃을 어떻게 배려해야 할지를 우리는 아직 잘 모릅니다. 옳지 않아도 질기면 이긴다는 생각이 빚어낸 지금의 혼란은 무엇을 모르는지를 배울 절호의 기회입니다. ‘내로남불’식 투쟁을 벌이면서도 ‘내불’을 ‘내로’라고 고집하는 억지에서 벗어나면 내가 져야 할 책임이 보이고, 당시에는 ‘남불’도 ‘남로’일 수 있었음을 인정하면 남을 어떻게 배려해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정치가 위태롭지만 0.73%포인트 격차의 대선 결과도 존중할 정도로 우리의 국민의식은 성숙해 가고 있습니다. 과거 탈법이 관행일 때도 모두가 탈법하며 살았던 것도 아닙니다. 현재의 소용돌이는 좋았던 옛날이 무너진다기보다 나빴던 과거를 벗어던지는 과정입니다. 우리 국민의 집단 이성은 당연히 잘 배워 낼 것입니다.  


등록일 : 2023-02-24 오후 5:30:00     조회: 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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