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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 청년실업, 무역전쟁을 풀어낼 일석삼조의 규제개혁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바른사회운동연합 입법감시위원 이승훈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3D프린팅, 자율주행차, 빅데이터, 지능형로봇, 클라우드, 블록체인, 그리고 5G 통신 등의 신기술이 복합적으로 응용되는 세상에서는 20세기 문명인도 어쩔 줄 모르는 야만인 신세다. 세계는 이미 제4차 산업혁명에 진입하였고 여기서 뒤처지면 야만으로 추락한다. 그런데 첨단기술은 혁신적 변화를 선도하지만, 혁신이 기술개발만으로 완결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 운용의 틀이 새로운 기술을 수용하지 않으면 혁신은 동면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우리의 고도성장을 이끈 재래식 ‘따라잡기’ 전략은 이제 쓸모를 잃었다. 오히려 그 전략에 맞춤형으로 짜놓은 각종 제도와 관행은 새 시대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되어버렸다.
 고령화 시대인데 충분히 건강한 노인도 강제로 은퇴하고, 20대 청년의 숫자는 해가 갈수록 줄어든다. 부양할 노인 인구는 늘어나고, 근로 인구는 줄어드는데도 불구하고 일자리가 없단다. 노인들 부양하노라 젊은이 허리 부러진다던 호들갑은 아직은 헛소리고, 청년실업 해소한답시고 노인 한 명 은퇴시켜 절약한 임금으로 청년 둘을 쓸 수 있다는 셈법이나 난무한다. 이쯤 되면 장수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다.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전쟁은 세계화가 역풍을 맞고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세계화는 선진국 대중의 일자리를 개도국 저임금 인력에게 이전하는 과정이었다. 누적된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선진국의 국민은 세계화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내세우는 정부를 속속 선출하는 중이다. 당분간 세계화는 주춤하고 다자간 국제질서의 근간이 흔들릴 것인데 그 틈을 타서 보호무역이 고개를 들 수도 있다.
 신기술, 고령화, 그리고 다자간 국제질서의 붕괴는 새롭게 부상한 시대의 도전이다. 그동안 살아오던 방식으로는 눈앞에 닥친 새 시대의 뉴노멀을 감당할 수 없다. 전 국민이 현실 인식을 공유하고 함께 지혜를 찾아야 하는 위기다. 모두의 힘을 합하여 노력하고 중구난방의 해법을 조율해야 하는데 현실은 좌와 우로 진영을 가르고 날을 세워 패거리 투쟁 중이다. 그런데 시대적 과제의 해결책은 제쳐놓고 적폐청산과 선거구조정 문제나 놓고 치열하게 다툰다. 언필칭 ‘새 시대’를 내걸지만, 그 본질을 보면 과거 문제를 볼모로 잡고 벌이는 기득권 싸움일 뿐 미래 지향적 시각은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규제개혁은 시대의 요구
 
 사회가 과거사 논쟁에 함몰되어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거나 말거나 미래는 사정없이 닥쳐온다. ‘따라잡기’ 시대에는 정부가 경제개발을 설계하고 고도성장을 주도하였지만, 지금은 정부가 미래를 주도할 때가 아니다. 신기술의 세계는 아직 아무도 가보지 않았다. 기술 전문가도 아닌 정부가 국가경제의 진로를 미리 정할 근거가 도무지 없다. 현재와 같은 불확정 시기에 정부의 역할은 사회의 틀이 새 물결을 수용하도록 바꾸고 각자 마음대로 해보도록 허용하는 것으로 족하다. 창조혁신의 길은 ‘따라잡기’와는 달리 아무도 모르는 새로운 세계를 더듬어 가는 길이다. 자유분방한 발상이 필요하고, 정부는 기득권의 방해를 와해시키는 데 집중하면 된다.
 혁신 투자는 많은 돈을 들이고도 곧잘 실패한다. 모험과 도전이 기본이지만, 성공의 포상과 실패의 응징이 엄정해야 한다. ‘대과 없는’ 안정 운영을 지향하는 공공부문이 나선다면 엄청난 낭비의 도덕적 해이를 피하기 어렵다. 신상품 개발의 창조혁신은 민간부문에 맡기고 정부는 기득권의 반발이나 추스르면 된다. 이제 우리의 민간부문은 ‘따라잡기’에 성공하여 가까스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창조혁신에 뛰어들 수 있게 되었다. 정부의 첫 과제는 그동안 성장을 주도해 온 ‘따라잡기’ 틀을 깨뜨리고, 시대에 맞지 않는 기득권을 통제하는 일이다.
 국가적으로는 어지러울 만큼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인공지능과 5G 통신 등 신기술의 개발 습득이 당면 목표다. 정부는 실리콘밸리와 같은 클러스터의 조성은 지원해야 한다. 신기술 사업이 초기에 당면하는 ‘죽음 계곡(death valley)’을 대비하는 자금지원도 필요하다. 그런데 지원과 평가만 하고 그 운영에는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첨단기술을 엮는 신상품이 무엇일지 누가 알까? 발상이 자유분방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창조혁신 정책의 근본은 자유화고,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규제개혁이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변화를 선도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응이라도 때맞추어야 하는데, 그에 맞는 규제의 정비가 매우 부진하다.
 경제활동을 규율하는 사회 운용의 틀은 각종 법령이 담고 있는 규제체계다. 이 틀은 동시에 그동안 경제활동의 경험을 반영하면서 구축해온 결과물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때그때 틀에 맞추어 활동을 벌이면서도 틀이 부적합하다고 느끼면 시정을 요구한다. 당연히 영향력이 큰 주류의 요구가 실제 시정을 주도한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 어느 사회건 그 사회를 운용하는 틀은 힘센 주류의 이익, 즉 기득권을 존중하는 관성을 가진다.
 기술은 스스로 개발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나라가 개발한 첨단기술을 적시에 수용하기만 해도 새 물결에서 낙오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첨단기술의 신상품은 아직 안전과 환경 문제를 검증받은 바 없으므로 현행 규정으로는 생산 판매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예컨대 아파트 등 대형 건물은 비상 자가발전설비를 갖추어야 하는데 관련 법규는 인정받는 품목을 구체적 리스트로 명시하고 있다. 신기술이 매우 우수한 고성능 저비용의 신설비를 개발하더라도 이 설비는 현행 리스트에 등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비상 자가발전설비 시장에 아예 발을 들일 수조차 없다. 규제가 혁신 상품의 유통을 허락하지 않으면 그 첨단기술은 습득했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새 기술의 산물인 원격의료와 카카오 카풀은 현행법을 고치지 않는 한 불법인데 완강하게 반대하는 기득권 세력 앞에 정부는 꼬리만 사린다. 기술력을 갖추고서도 규제 때문에 국내에서 활동할 수 없는 첨단 사업은 해외로 눈을 돌리게 마련이다. 인공지능 의료 스타트업 ‘루닛’은 결국 중국에서 활로를 찾았고, 서울대 분당병원 원격의료 시스템은 경부선이 아닌 시베리아 횡단철도에서 시험 운전한다. 규제개혁이 지금처럼 지지부진하면 앞으로 더 많은 미래 유망사업이 같은 운명일 것이다.

                규제개혁의 효과는 일석삼조

 신기술을 개발하고 규제개혁을 통하여 상품화하면 일단 4차 산업혁명의 새 물결에 동참한다. 그런데 이 도약은 동시에 고령화와 무역장벽에 대비하는 효과도 거둔다. 첨단 정보통신기술에 토대를 둔 신기술이 주는 새 일거리는 바로 청년 일자리다. 구직을 포기하고 방구석에서 게임에 몰두하는 청년들이 신나게 달겨들 일거리다. 이 일거리를 활성화하고 재래식 일자리는 일하고 싶은 노인에게 맡기면, 청년실업 문제를 풀면서 연금 지출을 줄일 수 있다. 엄청난 규모의 청년 일자리를 규제로 막아놓고 청년실업의 해법을 딴 곳에서 찾으니 딱하기 짝이 없다.
 자국민의 일자리를 지키는 보호무역은 전통산업에 국한한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나라가 4차 산업혁명에서 낙오하지 않으려고 경쟁하는 시대다. 첨단기술의 신상품을 개발하고 표준을 선도하면 세계 각국이 환영하므로 시장은 얼마든지 있다. 국경을 넘는 협력과 제휴에 선도적, 또는 최소한 대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면 보호주의로 회귀하는 흐름 속에서도 기회는 많다.
 규제개혁은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의 선도국으로 우뚝 서는 데 필수적인 조치이고, 고령화와 청년실업의 문제를 푸는 효과적 대책이며, 보호무역시대의 무역장벽을 무력화하는 절호의 전략으로서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둔다. 그런데 원격의료와 카카오 카풀 사태에서 보는 것처럼 규제개혁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규제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대과없이’ 지나고 있는 지금이 편하다. 검증되지 않은 신상품을 리스트에 포함하여 유통을 허가했다가 사고라도 나면 비난 여론의 희생양이나 될 뿐이다. 한 건 해도 상은 주지 않으면서 탈만 나면 책임이나 추궁하는데 규제개혁에 적극적일 공무원은 없다. 신상품에 시장을 빼앗기는 기득권도 음으로 양으로 부추긴다. 공무원과 기득권은 규제 유지의 유인을 공유하므로 규제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대통령의 잇단 채근도 소용없다.
 기득권과 공조해 온 공무원 조직은 윗선, 때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사고의 책임을 떠맡아 주고 챙겨야 비로소 규제개혁에 손을 댄다. 중국의 메신저 공룡 <텐센트>는 인터넷전문은행 <위뱅크>를 설립하여 놀랄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창업 당시 은행들은 비금융권 기업인 <텐센트>의 은행 창립이 불법임을 들어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그러나 중국정부의 리커창 총리는 정보통신기업의 강점을 이해하였기에 기득권층의 반대를 내리누르고 <위뱅크> 설립을 허가하도록 지시하였다. 이렇게 시작한 탓에 <위뱅크>가 실패하더라도 관련 공무원들이 책임질 일이 없다. 자유화는 매우 미흡한 중국이지만 최고 지도층이 책임을 떠안고 시대착오적 기득권은 가차 없이 잘라내기에 신기술 수용에서 앞서간다. 우리는 지금 은산분리를 내세워 정보통신기업이 인터넷전문은행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대기업이 은행을 행여나 사금고로 쓸까봐 새 시대 첨단은행을 가장 잘 운영할 주체를 그 사업에서 배제하는 중이다.

             규제개혁의 이익은 기득권을 보상하고도 남아

 디지털 시대로 진입하는 길목에서 버리기 너무 아까운 아날로그 기득권에 연연한 탓에 세계 제일이던 소니(Sony)가 후발주자 삼성에게 덜미를 잡힌 것이 불과 20년 전이다. 4차 산업혁명의 홍수가 결국 쓸어 가버릴 구시대 유물을 기득권으로 부둥켜안고 있다가는 아차 하는 순간에 낙오자가 되고 만다. 사람들은 기득권을 내려놓고, 관료는 현행 규제에 대한 집착을 포기함으로써 4차 산업혁명의 신상품이면 무조건 유통이 가능하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
 최근 시작하기로 한 ‘규제 샌드박스’제도는 매우 긍정적이다. 그러나 금융 등 몇 업종에만 적용할 일이 아니라 과감하게 그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업의 선정도 신청 안건 대부분을 허용할 정도로 매우 포용적이어야 한다. 미지의 미래는 문제가 생기면 그때그때 보완한다는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
 규제개혁과 반드시 함께 가야 할 조치는 위축될 기득권에 대한 보상이다. 재래식 구사업의 운명은 신기술 사업과의 경쟁에 맡겨두어야 하지만 구사업자도 신사업에 참여할 길을 터주면 좋을 것이다. 예컨대 카풀의 경우에는 택시업자가 카풀사업에 지분 참여하도록 할 수 있다. 또는 업종 전환비용을 파격적으로 너그럽게 지원할 수도 있다. 신기술 수용으로 얻는 사회적 이득은 이 지원을 감당하고도 크게 남는다. 급변하는 시기의 개혁은 불가피하게 마찰을 불러오는데 그에 따른 피해를 외면하는 개혁은 성공할 수 없다. 개혁에 역행하지 않는 피해보상은 반드시 제공하면서 대처하는 것이 옳다.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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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교수
 
녹색성장위원회 공동위원장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한국가스공사 사장
現 바른사회운동연합 공동대표

등록일 : 2019-03-25 12:57 | 조회: 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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