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영향평가를 실시하자!
필자 : 박수철 바른사회운동연합 사무총장>전 국회법제사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입법영향평가를 실시하자! 우리는 지금 ‘법률의 홍수’, ‘입법만능주의’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권위주의 정권하에서는 국회가 정부제출 법률안을 통과시키는 정도의 입법기능을 수행한다고 하여 ‘통법부’라는 오명을 받았지만,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점차 국회의 입법기능이 제자리를 찾아 갔고, 의원발의 법률안이 급증하면서 지난 제20대 국회 이후로는 오히려 국회의 입법기능에 우려의 목소리가 점증하고 있다. 특히 거대정당이 국회를 지배하면서 두드러진 ‘입법폭주’ ‘입법독점’ ‘과잉입법’ ‘불균형입법’으로 상징되는 입법양태에 대해서는 입법권을 위임한 국민의 질책도 따르고 있다. 예컨대 최근에 입법된 ‘임대차 3법’은 대화와 타협, 숙의를 바탕으로 최적의 법률을 만들어야 하는 의회주의를 무시한 채 거대여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대표적인 사례이지만,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부동산대책으로 내세운 이들 입법조치가 오히려 부동산시장에 혼란을 초래하여 이제 ‘임대차 3법 폐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을 얻고 있는 역설적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입법과정은 물론 입법 내용까지 중대한 실책, 즉 ‘입법의 오류’가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더하여 국회가 ‘포퓰리즘법률’ ‘규제법률’을 양산하고 있다는 ‘입법남발’의 심각성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구체적 통계를 살펴보자. 제21대 국회 4년 중 1년 4개월여가 지난 2021년 10월 15일 기준 국회에 접수된 법률안은 총 12,521건으로, 의원발의 법률안이 폭증했던 제20대 국회 4년 동안 접수된 법률안 총 24,141건의 52%에 이르고 있고, 12,521건의 법률안 중 의원발의 법률안은 11,674건으로 93%를 넘고 있으며, 정부제출 법률안은 390건으로 3%, 위원회안은 457건으로 4%에 불과하다. 증가하고 있는 의원발의 법률안이 절대적 우위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사실을 보여준다. 제21대 국회 출범 후 1년 4개월여 동안 가결된 법률안은 1,051건이고, 제20대 국회 출범 후 1년 4개월여 동안 가결된 법률안은 765건으로 같은 기간 비교로 볼 때 제20대 국회보다 제21대 국회에서 무려 37%가 증가했다. 국민의 법생활을 규율하는 법률수도 많아졌다. 2021년 10월 15일 기준 유효한 법률수는 1,547개로, 2012년 5월 31일 기준 1,240개보다 300개 넘게 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입법 관련 통계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각자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 있다. 우선, 국회가 입법활동을 활발히 한 결과물로 보거나 우리 사회가 갈등요소를 해소하면서 전반적으로 고도화 되는 현상을 반영한 입법 산물로 보아 긍적적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도 접근할 수 있다. 그렇게 많은 입법수요가 있을 만큼 우리 사회에 문제가 있는지에 의문이 들 수 있다. 또한 그동안의 입법활동에도 불구하고 유엔(UN)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작성한 세계행복보고서를 한국개발연구원(KDI)경제정보센터가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18∼2020년 평균 국가행복지수는 OECD 37개국 가운데는 35위로 나타났는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2012년 5월 발표한 우리나라 국가행복지수는 36개국 가운데 24위로 오히려 후퇴한 측면이 있고,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에서 발표한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은 2012년 22위에서 2020년 23위로 소폭이지만 하락했다. 입법 관련 통계에 대한 평가는 달리 할 수 있지만, 입법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공동체의 행복을 증진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며, 사회 갈등을 해소하고, 국가경쟁력을 높이는데 있다는 점에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많은 법률을 양산하는 입법활동보다 입법의 목적을 실현하는 ‘좋은 법률’을 만드는 입법활동이 중요하다는 점에 이론이 없을 것이다. ‘실패한 입법’은 국민 세금으로 충당되는 입법비용을 증대시키지만, ‘성공한 입법’은 국민행복과 국가경쟁력을 제고하는 결과를 낳는 것도 자명하다. 그렇다면 ‘좋은 법률’ ‘성공한 입법’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의회주의에 충실하려는 입법자의 태도, 입법종사자의 탁월한 능력과 풍부한 식견, 정교한 법률안 심의과정과 입법절차는 필수 요소이다. 그리고 익숙한 용어는 아니지만 입법영향평가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법률 제·개정이나 폐지에 따른 과정·내용 등에 대하여 사전 또는 사후에 객관적·체계적으로 분석하는 행위를 입법평가라고 하는데, 입법평가의 한 유형으로 입법이 미치는 효과나 결과 또는 잠재적 영향을 객관적·중립적으로 예측·분석·평가하는 입법영향평가가 있으며, 미국을 비롯해 독일과 영국·프랑스 등 다수의 국가들은 2000년대부터 영향평가를 도입해서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회에 법률안 제출 시 비용추계 자료 제출 또는 첨부, 조세특례 관련 법률안에 대한 조세특례평가 자료의 제출, 법령 제·개정 추진 시 성별영향평가 실시, 법령 등에서의 부패영향평가 실시, 정부 법령안 입법과정에서의 규제영향분석 등 일부 입법영향평가 요소를 활용하고 있으나, 위원회 의결로 비용추계 자료 제출을 생략할 수 있고, 부패영향평가나 규제영향분석은 정부입법과정에 제한되어 운영되고 있는 등 뚜렷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국회에 제출하는 모든 법률안에 대해 입법영향평가를 전면적으로 도입하면 다음 몇 가지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첫째, 법률안의 남발을 억제할 수 있다. 의정활동 평가를 염두에 두고 법률안 발의 실적을 높이기 위해 벌어지는 ‘묻지마식 발의’ ‘품앗이 발의’ ‘청탁발의’의 설자리가 좁아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국회에 제출되는 법률안수가 줄어들면서 임기만료에 따라 폐기되는 법률안수도 적어지게 될 것이다. 둘째, 포퓰리즘법률이나 규제법률의 양산을 견제하는 유효한 기제가 될 수 있다. 법률안의 내용을 객관적·중립적 입장에서 평가하게 되면 선거를 의식한 선심성 법률안, 현실을 도외시한 명분적 법률안, 특정 집단이나 대상을 특혜나 불이익을 주는 기울어진 법률안, 국가권력의 과도한 개입을 초래하는 침해적 법률안이 드러나게 되고, 이들 법률안에 대한 국민의 감시와 비판이 뒤따르게 되면 부지불식간 이런 법률안들을 입법하려는 시도를 방지할 수 있다. 셋째, 법률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다. 입법영향평가를 통해 입법필요성과 입법 내용의 타당성·실효성·집행력 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은 법률안의 입법가능성을 낮추게 되면 입법만능주의에 기인한 지속적 법률 증가 현상을 차단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넷째, 입법의 질을 높일 수 있다. 법률안의 제출단계에서 입법 내용의 타당성·실효성·집행력 등이 검증된 입법 가능한 법률안이 제출되고, 그런 법률안이 입법과정을 통해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지게 되면 ‘좋은 법률’ ‘품질 높은 법률’을 입법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다섯째, 입법비용을 줄일 수 있다. 입법영향평가를 통해 타당성·실효성·집행력 등이 없거나 적다고 분석되는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는 입법행태가 정착된다면 그 법률안의 심사에 투입될 인적·물적 비용이 감축되고, 그에 상응하는 입법비용만큼 국민의 세금부담은 덜게 된다. 여섯째, 입법에 대한 사후책임을 물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 입법영향평가에서 입법필요성과 입법내용의 타당성·실효성·집행력 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입법을 강행하여 ‘정책 실패’로 이어진 경우에 유권자 등 국민이 그에 따른 정치적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국민행복을 증진하고, 국가경쟁력 향상에 기여하며, 입법품격을 높일 수 있는 입법영향평가를 본격적으로 고안하여 조속히 법적·제도적으로 구축할 것을 제안한다.
바른사회운동연합 | 2021-10-18 | 조회 838